
서울 생애최초 매수 16년 만에 최고 다시 시작된 청년층 ‘영끌’
8월 생애최초 매수 9346건, 1년 새 66.1% 급증
전월세난 집값 상승 불안 겹치며 서울 외곽으로 수요 이동
서울 주택시장에서 생애 처음 집을 사는 무주택자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지난 8월 서울에서 매매 등기를 마친 집합건물 가운데 절반 이상을 생애최초 주택 매수자가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생애최초 매수자도 9000명을 넘어서며 6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중저가 주택의 가파른 가격 상승과 전월세난, 향후 입주 물량 감소에 따른 공급 부족 우려가 한꺼번에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집값이 더 오르기 전에 집을 사야 한다는 불안이 커지면서 2020년 부동산 상승장에서 나타났던 청년층의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매수세가 6년 만에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11일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집합건물의 생애최초 매수자 소유권 이전 등기 신청은 총 9346건으로 집계됐다. 집합건물에는 아파트를 비롯해 연립·다세대주택과 오피스텔 등이 포함된다.
지난해 같은 달 5628건과 비교하면 1년 만에 3718건, 66.1% 급증했다. 건수 기준으로는 부동산 시장이 과열됐던 2020년 8월 1만2318건 이후 6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더 눈에 띄는 대목은 전체 거래에서 생애최초 매수가 차지하는 비중이다. 지난달 서울 집합건물 거래 1만7371건 가운데 생애최초 구입자의 비중은 53.8%에 달했다. 거래된 집 두 채 가운데 한 채 이상을 생애 처음 집을 장만한 사람이 사들였다는 의미다.
이는 법원이 관련 통계를 전산으로 공개하기 시작한 2010년 1월 이후 16년 만의 역대 최고 기록이다.
비싼 강남 대신 도봉 관악 노원 첫 매수자들이 외곽으로 향했다
생애최초 매수세가 서울 전역에서 똑같이 나타난 것은 아니다. 매수자의 발길은 상대적으로 가격 진입 장벽이 낮은 중저가 주택 밀집 지역으로 집중됐다.
고가 주택에 대한 대출 문턱이 높아지면서 자금 여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청년층과 무주택 실수요자가 서울 외곽으로 눈을 돌린 것으로 분석된다.
증가세가 가장 두드러진 곳은 도봉구다. 도봉구의 생애최초 매수 건수는 지난해 8월 129건에서 올해 8월 248건으로 92.2% 급증했다.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관악구도 같은 기간 193건에서 369건으로 91.2% 증가했다. ‘노도강’의 대표 지역인 노원구는 305건에서 577건으로 89.2% 치솟았다.
강북구 역시 133건에서 246건으로 85.0% 늘었다. 중랑구는 153건에서 274건으로 79.1% 증가했다. 서울에서도 상대적으로 주택 가격이 낮은 지역을 중심으로 생애최초 매수자가 빠르게 늘어난 셈이다.
결국 서울을 떠나기보다는 대출이 가능한 가격대의 주택을 찾아 외곽으로 이동하는 수요가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아니면 못 산다”규제가 오히려 무주택자 발걸음 재촉
시장에서는 생애최초 매수가 급증한 배경 가운데 하나로 규제에 따른 역효과를 지목한다.
정부가 서울 전역을 규제지역으로 묶고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확대하면서 갭투자나 전세를 낀 주택 매수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자, 무주택 청년층을 중심으로 ‘내 집 마련의 막차를 놓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졌다는 것이다.
일반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도 생애최초 주택 구입자 등을 대상으로 한 정책금융에 대한 관심은 이어지고 있다.
자금 조달 여건이 달라지면서 매수 대상도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상대적으로 고가 주택이 많은 지역보다 15억원 미만 주택이 밀집한 동북권과 서남권 외곽으로 실수요자의 발길이 몰리고 있다.
집을 사고 싶어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더 늦으면 서울에서 집을 살 기회 자체가 줄어들 수 있다는 불안이 매수 결정을 재촉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세도 월세도 버겁다 “차라리 이자 내고 내 집 산다”
청년층을 매매시장으로 밀어 넣는 또 다른 요인은 임대차 시장의 변화다.
대출 규제 강화와 보유세 등 세 부담 증가로 전세 매물이 귀해지면서 임대차 시장은 빠르게 월세화·고비용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전월세 가격까지 오르자 무주택 실수요자 사이에서는 “차라리 은행에 이자를 내더라도 내 집을 갖는 편이 낫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집을 샀다고 해서 주거비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전월세 부담을 피해 매매시장에 진입했더라도 대출을 이용했다면 매달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한다. 집값 상승에 대한 불안을 피하기 위해 주택을 매입했지만, 이후에는 장기간 이어지는 원리금 상환이라는 또 다른 부담과 마주하게 된다.
주거비 압박
전월세 부담이 커질수록 매수와 임차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무주택자의 고민은 깊어진다.
상환 부담
주택 구입에 대출을 동원했다면 매수 이후에도 매달 원리금을 갚아야 한다. 금리와 대출 규모에 따라 가계가 체감하는 부담도 달라진다.
생활의 여력
주거비와 대출 원리금을 감당하면서 생활비를 지출하고 저축까지 이어가야 한다. 내 집 마련에 성공했다는 안도감과 별개로 가계의 현금흐름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문제가 남는다.
결국 청년층의 고민은 “집을 살 수 있을까”에서 “산 뒤에도 계속 감당할 수 있을까”로 옮겨가고 있다.
다만 이 같은 세 가지 항목은 청년층의 주거 부담을 설명하기 위한 편집상 요약이다. 개별 생애최초 매수자의 부채나 소득을 조사한 결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전월세 가격의 지속적인 상승과 집값 추가 상승에 대한 불안 심리가 30대의 영끌 내 집 마련을 다시 부추기는 모습이다. 시장의 패닉 바잉을 근본적으로 잠재우려면 체감 가능한 도심 주택 공급이 빠르게 실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6년 만에 돌아온 ‘영끌’ 결국 관건은 공급 신뢰
이번 생애최초 매수 급증은 단순히 거래량 증가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집값 상승에 대한 두려움과 전월세 부담, 대출 규제, 공급 부족 우려가 동시에 작용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특히 매수세가 도봉·노원·강북·중랑·관악 등 상대적으로 중저가 주택이 많은 지역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대목이다. 서울에 거주하려는 실수요는 여전하지만 자금 조달 능력에는 한계가 있는 청년층의 현실이 거래 통계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어서다.
문제는 매수 이후다. 대출을 최대한 활용해 주택을 구입했다면 향후 금리와 소득 변화에 따라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대출을 받는다면 가계의 소비와 저축 여력까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시장 안정의 열쇠는 결국 공급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택 공급에 대한 신뢰가 약해질수록 무주택자는 현재 가격보다 미래의 가격을 먼저 걱정하게 된다. “오늘이 가장 싸다”는 불안이 시장을 지배하기 시작하면 실수요자까지 매수 경쟁에 뛰어들 가능성이 커진다.
2020년 부동산 상승장에서 한국 사회가 경험했던 ‘패닉 바잉’의 출발점도 이 같은 불안이었다.
6년이 지난 지금, 생애최초 매수 통계가 다시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치솟는 집값과 규제의 틈바구니에서 청년 세대는 다시 빚을 짊어지고 내 집 마련에 나서고 있다.
서울 외곽으로 번지는 생애최초 매수 행렬이 안정적인 실수요 회복으로 이어질지, 또 다른 ‘영끌’의 시작이 될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무주택자의 공급 불안을 잠재울 만큼 구체적이고 체감할 수 있는 주택 공급 신호가 나오지 않는다면, 서울의 상대적 중저가 지역을 향한 생애최초 매수자의 발걸음은 쉽게 멈추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문의 : 031-563-2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