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세계 요리 여행은 '아프리카의 지붕'이라 불리는 고원지대의 나라 Ethiopia로 향한다. 오늘의 주인공은 붉고 걸쭉한 소스 속에 닭고기와 삶은 달걀이 들어 있는도로 왓(Doro Wat 또는 Doro Wot)이다.
에티오피아 음식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가장 먼저 그 강렬한 색깔에 놀란다. 새빨간 국물 때문에 무척 매워 보이지만, 한입 먹어보면 단순한 매운맛이 아니다.
매콤함 뒤에서 양파의 단맛과 버터의 고소함, 여러 향신료의 복합적인 향이 차례로 올라온다.
도로 왓의 이름은 매우 직관적이다. '도로(Doro)'는 닭을, '왓(Wat 또는 Wot)'은 걸쭉하게 끓인 스튜를 뜻한다. 말 그대로 에티오피아식 닭고기 스튜다.
하지만 조리법은 이름만큼 단순하지 않다.
도로 왓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 가운데 하나는 의외로 양파다.
많은 양의 양파를 아주 잘게 다진 뒤 기름을 거의 사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천천히 볶아 수분을 날린다. 시간이 지나면 양파는 갈색으로 변하며 깊은 단맛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에티오피아 요리의 상징과도 같은 향신료베르베레(Berbere)가 들어간다.
베르베레는 고추를 중심으로 여러 향신료를 배합한 혼합 향신료다. 가정과 지역에 따라 배합이 다르지만 고추와 생강, 마늘, 호로파, 카다멈 계열 향신료 등이 사용될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재료가 있다.
니테르 키베(Niter Kibbeh)다.
버터에 향신료를 넣어 천천히 정제해 만든 에티오피아식 향신 버터로, 도로 왓 특유의 깊고 고소한 풍미를 만들어준다.
이렇게 완성된 진한 소스에 닭고기를 넣고 오랫동안 끓인다.
그런데 마지막에 예상 밖의 재료가 등장한다.
바로 통째로 삶은 달걀이다.
삶은 달걀에 살짝 칼집을 내 소스 속에 넣으면 붉은 양념이 달걀 표면에 스며든다. 그래서 도로 왓 한 접시에는 닭고기와 함께 붉게 물든 달걀이 빠지지 않는다.

왜 하필 달걀일까?
여기에는 에티오피아의 오랜 종교문화가 연결돼 있다.
Ethiopian Orthodox Tewahedo Church의 전통에서는 한 해 동안 여러 차례 금식 기간을 지킨다. 금식 기간에는 육류와 달걀, 유제품 등을 피하는 전통이 있다.
긴 금식이 끝나는 부활절과 크리스마스 같은 중요한 축일이 찾아오면 가족들은 다시 고기와 달걀을 이용해 풍성한 음식을 준비한다.
이때 특별한 날의 식탁에 오르는 대표적인 음식 가운데 하나가 도로 왓이다.
따라서 도로 왓은 단순히 비싼 닭고기를 넣은 음식이 아니라 기다림이 끝나고 가족이 다시 풍성한 식사를 함께 나누는 축하의 음식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도로 왓을 먹을 때는 숟가락과 포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에티오피아의 대표적인 발효 납작빵인제라(Injera)다.
커다란 인제라를 접시처럼 펼쳐놓고 그 위에 도로 왓과 여러 반찬을 올린다. 사람들은 인제라를 손으로 조금씩 뜯어 스튜와 닭고기를 감싸 먹는다.
식사를 계속하다 보면 아래에 깔린 인제라에도 도로 왓의 진한 소스가 스며든다. 마지막에 양념을 흠뻑 머금은 인제라를 먹는 것도 특별한 즐거움이다.
여기서 에티오피아 식문화의 중요한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한 접시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가족과 친구들이 커다란 인제라 주위에 둘러앉아 각자 앞에 놓인 음식을 먹는다. 때로는 상대방에게 음식을 직접 먹여주는구르샤(Gursha)라는 풍습도 있다.
인제라에 고기와 소스를 싸서 가족이나 손님의 입에 넣어주는 행동으로, 친밀함과 환대를 나타낸다.
즉 도로 왓 한 접시는 음식인 동시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도로 왓의 정확한 탄생 연도를 특정하기는 어렵다. 어느 요리사가 어느 날 개발한 음식이라기보다 에티오피아 고원의 오랜 닭고기 조리법과 향신료 문화, 종교적 금식과 축제의 전통이 세대를 거치면서 오늘날의 형태로 발전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래서 도로 왓의 진짜 주재료는 닭고기만이 아니다.
오랫동안 볶아야 하는 양파에는 시간이 들어 있고, 금식 뒤에 먹는 닭고기에는 기다림이 들어 있으며, 커다란 인제라를 함께 나누는 식탁에는 가족과 공동체가 들어 있다.
매콤한 닭고기 스튜 한 그릇이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아왔다. 도로 왓은 음식을 함께 먹는다는 일이 단순히 배를 채우는 행위를 넘어 신앙과 축하, 환대와 가족의 기억까지 나누는 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에티오피아의 특별한 음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