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처음 이름 앞에 붙은 타이틀
사람은 가끔 자신의 이름이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을 만난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데 그 앞에 새로운 호칭이 붙어 있을 때가 그렇다.
나는 오랫동안 그냥 심경은이었다.
세 딸 중 둘째딸 경은이였고, 누군가의 아내였으며, 아이에게는 엄마였다. 가족에게는 매일 밥을 차려주는 사람이었고,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기억되었다.
그런 내 이름 앞에 처음으로 전문 요리인으로서의 타이틀이 붙었을 때, 나는 한동안 그 이름을 바라보았다.
‘심경은.’
그렇게 수없이 불러왔던 내 이름인데 새로운 호칭 하나가 더해지니 조금 다르게 보였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어색했다.
정말 내가 이런 이름으로 불려도 되는 사람인가 싶기도 했다.
그러다가 문득 웃음이 났다.
오랫동안 좋아했던 일이 마침내 내 이름 앞에 작은 자리를 만들어준 것 같았다.
처음부터 이런 날을 꿈꾸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릴 때 나는 그저 요리가 좋았다. 엄마가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면 괜히 옆에 가서 기웃거렸고, 학교가 끝나면 냉장고 문을 열어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핑크색 리본과 꽃무늬 그릇을 좋아했고, 음식 하나를 만들어도 예쁘게 담고 싶었다.
그때는 요리하는 사람에게 어떤 타이틀이 붙는지 잘 알지 못했다.
누가 인정해주지 않아도 좋았고, 상을 받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냥 내가 만든 음식을 누군가 맛있게 먹으면 그것으로 행복했다.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참 단순했다.
계란말이가 예쁘게 말리면 기분이 좋았고, 엄마가 맛있다고 한마디 해주면 하루 종일 행복했다.
그런 작은 즐거움이 오래 이어져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도 요리는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아침을 차리고, 저녁을 준비하고, 가족의 입맛을 생각했다. 냉장고 속 남은 재료로 새로운 음식을 만들었고, 때로는 같은 반찬을 다른 그릇에 담으며 작은 즐거움을 찾았다.
그 시절의 나는 내 요리에 특별한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그냥 집밥이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이었고, 가족이 함께 먹는 저녁이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평범한 시간에도 나는 계속 배우고 있었다.
어떤 재료가 잘 어울리는지, 어떻게 해야 음식을 더 맛있게 만들 수 있는지, 누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매일 살피고 있었다.
생활은 내가 처음 다닌 요리학교였고, 가족의 식탁은 가장 오래된 실습실이었다.
다시 전문적으로 요리를 배우기로 결심했던 날도 기억난다.
그때의 나는 설렘만큼 두려움도 컸다.
‘지금 시작해도 될까?’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이미 늦은 것은 아닐까?’
수없이 스스로에게 물었다.
하지만 결국 앞치마를 다시 묶었다.
모르는 것은 배우면 되었고, 부족한 것은 연습하면 되었다. 처음부터 능숙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렇게 다시 학생이 된 나는 익숙했던 요리를 전혀 다른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칼질 하나에도 이유가 있었고, 불을 조절하는 순간에도 원리가 있었다.
엄마에게 배웠던 손맛에 정확한 이론과 기술을 더하면서 조금씩 자신감을 얻었다.
처음에는 그저 수업 내용을 잘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새로운 조리법을 익히고, 실습하고, 틀린 부분을 다시 확인했다. 잘되지 않는 날에는 집으로 돌아와 같은 음식을 다시 만들어보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연습이었을지 모르지만 내게는 꽤 특별한 시간이었다.
가족을 위한 저녁이 아니라 나 자신의 성장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마 앞에 서 있는 시간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오늘 무엇을 먹을지 생각했다면, 이제는 오늘 무엇을 더 배울 수 있을지 생각했다.
그 작은 변화가 좋았다.
물론 공부가 언제나 즐거웠던 것은 아니다.
수업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면 다시 생활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족을 돌봐야 했고, 집안일도 해야 했으며, 다음 날의 일정도 준비해야 했다.
몸이 피곤한 날에는 책을 펼쳐놓고 한참 동안 같은 페이지를 읽기도 했다.
어떤 날은 마음처럼 요리가 되지 않아 속상했다.
‘왜 이렇게 안 될까?’
혼자 도마 앞에서 한숨을 내쉰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다시 생각했다.
나는 이 일을 좋아해서 시작했다.
잘하기 위해 배우는 것이고, 배우는 동안 실수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다음 날이면 다시 칼을 잡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보였다.
예전에는 감으로만 알았던 것을 말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재료의 두께를 일정하게 맞추는 이유를 알았고, 조리 순서에 따라 맛과 식감이 달라지는 이유도 이해했다.
음식을 접시에 담을 때도 단순히 예쁘게 보이는 것보다 음식의 특징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핑크색을 무조건 사용하지 않는 법도 배웠다.
음식에 어울리는 색을 찾고, 적당한 여백을 남기고, 필요한 장식만 더했다.
그렇게 한 접시를 완성할 때마다 내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어느 순간부터는 단순히 요리를 배우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어졌다.
내가 익힌 기술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고, 그동안 쌓아온 경험을 객관적으로 확인받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전문적인 요리인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처음에는 조금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일을 이제는 나의 전문 분야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누군가의 엄마나 아내라는 이름 외에, 내가 노력해서 만들어낸 나만의 이름을 갖고 싶었다.
처음 내 이름 앞에 새로운 타이틀이 붙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그동안의 시간이었다.
어릴 때 엄마 옆에서 나물을 무치던 순간.
꽃무늬 접시에 음식을 담고 행복해하던 소녀.
가족이 돌아오기 전에 저녁을 준비하던 젊은 날.
아이가 잘 먹기를 바라며 음식을 작게 썰던 시간.
다시 학생이 되어 새로운 조리법을 배우던 날.
그 모든 장면이 마음속을 지나갔다.
어쩌면 타이틀 하나는 짧은 단어에 불과하지만, 그 이름을 갖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이름 앞에 붙은 타이틀이 처음에는 낯설었다.
누군가 새로운 호칭으로 나를 부르면 잠깐 고개를 돌려야 했다.
‘아, 나를 부르는 거구나.’
그러고 나면 괜히 웃음이 나왔다.
한편으로는 조금 조심스러웠다.
이름 앞에 붙은 호칭은 다른 사람에게 나를 소개하는 말이기도 했지만, 앞으로 어떤 자세로 요리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이름을 가볍게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처음에는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기뻤다.
지금까지 해온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을 돌보면서도 배움을 포기하지 않았던 시간, 피곤한 몸으로 책을 펼쳤던 밤, 마음처럼 되지 않는 음식을 여러 번 다시 만들었던 날들이 떠올랐다.
그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작은 수고들이 하나씩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기쁨이 조금 가라앉고 나자 새로운 생각이 찾아왔다.
‘이제는 이 이름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야겠구나.’
그때부터 타이틀의 무게가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전문적인 요리인이 된다는 것이 단순히 음식을 잘 만드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조리기술은 중요하다.
재료를 제대로 이해해야 하고, 위생과 안전을 지켜야 하며, 일정한 품질의 음식을 완성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것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요리를 하는 사람에게는 음식을 대하는 태도도 중요하다.
재료를 소중하게 여기고, 먹는 사람을 생각하고, 잘 모르는 것은 계속 배우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타이틀을 얻었다고 해서 공부가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배워야 할 것이 더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잘하는 사람을 보면 그저 부러웠다.
정확한 칼질을 하는 사람.
아름다운 플레이팅을 완성하는 사람.
복잡한 요리도 능숙하게 만들어내는 사람.
그런 모습을 보면 나도 언젠가 저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조금 달라졌다.
잘하는 모습을 부러워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사람이 얼마나 오랫동안 연습했을지 생각하게 되었다.
완성된 한 접시 뒤에 얼마나 많은 실패와 반복이 있었을지 떠올렸다.
나 역시 그 과정을 지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나는 타이틀보다 앞치마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무리 좋은 호칭이 있어도 조리대 앞에서 해야 할 일은 달라지지 않았다.
재료를 씻고, 손질하고, 조리하고, 맛을 확인해야 했다.
완성된 음식을 접시에 담을 때도 마지막까지 신경을 써야 했다.
누군가의 입에 들어갈 음식이라는 사실은 언제나 같았다.
이름 앞의 호칭이 바뀌어도 음식 앞에서는 여전히 성실해야 했다.
어느 날 평소처럼 음식을 만들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처음 요리를 좋아했던 이유가 뭐였지?’
생각해보니 답은 아주 간단했다.
누군가 맛있게 먹는 모습이 좋았기 때문이다.
예쁜 그릇에 음식을 담는 순간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내 손으로 무언가를 완성했다는 사실이 행복했기 때문이다.
그 마음은 전문적인 요리인이 된 뒤에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마 앞으로도 놓치지 말아야 할 마음일 것이다.
나는 나만의 요리 스타일도 계속 만들어가고 싶었다.
엄마에게 배운 한식의 따뜻함.
가족의 식탁에서 익힌 생활의 지혜.
아이를 키우면서 알게 된 먹이는 마음.
전문적인 공부를 통해 새롭게 익힌 조리기술.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변하지 않은 나의 핑크빛 취향.
그 모든 것이 내 요리에 함께 담겼으면 했다.
전통적인 한식의 기본을 소중하게 여기면서도 나만의 색과 감성을 더하는 사람.
그것이 내가 만들어가고 싶은 요리인의 모습이었다.
새로운 타이틀을 얻은 뒤에는 다른 사람에게 내가 아는 것을 나누는 일에 대해서도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처음 공부를 시작했을 때처럼 용기가 부족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요리를 좋아하지만 자신이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다시 배우고 싶어도 시작을 망설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내가 배운 것을 전해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나 역시 처음부터 전문가였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지금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가끔 그때의 마음이 떠오른다.
처음으로 새로운 호칭이 붙은 내 이름을 바라보던 순간.
기쁘면서도 어색했고, 뿌듯하면서도 조금 두려웠던 순간.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마 조금 놀랄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학생이 되어 다시 공부하는 것도 낯설어했던 사람이 이제 누군가를 가르치는 자리에 서 있으니 말이다.
삶이라는 것은 참 신기하다.
어느 날은 배우는 사람이었다가, 어느 날은 자신이 배운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
그렇다고 이제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나서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생이 질문하면 정확하게 설명하고 싶었고, 새로운 조리법이 나오면 직접 이해하고 싶었다.
내가 알고 있는 방법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요리는 계속 변하고, 식문화도 달라지며, 새로운 기술도 끊임없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전문적인 요리인이라는 이름은 배움을 끝냈다는 표시가 아니라 앞으로도 배우겠다는 약속에 가까웠다.

나는 내가 가진 타이틀을 생각할 때마다 어린 경은이를 떠올린다.
핑크색 리본을 좋아하던 아이.
엄마 옆에서 부엌을 기웃거리던 아이.
학교가 끝나면 냉장고부터 열어보던 아이.
그때의 나는 미래에 어떤 호칭을 갖게 될지 알지 못했다.
그저 요리가 좋았고, 예쁜 것이 좋았다.
지금 돌아보면 그 작은 취향이 내 인생을 참 먼 곳까지 데려왔다.
어쩌면 좋아하는 마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타이틀을 얻은 날보다 더 중요한 날이 있다면 그다음 날일 것이다.
기쁨을 충분히 느끼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날.
다시 앞치마를 꺼내고, 조리대 앞에 서서 음식을 만드는 날.
그날의 요리가 어제보다 조금 더 좋아졌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고 해서 매일 특별한 음식을 만들 필요는 없다.
하지만 평범한 음식 하나를 만들더라도 정성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는 이제 내 이름 앞에 붙은 호칭을 조금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 안에는 내가 해온 노력과 앞으로 감당해야 할 책임이 함께 들어 있다.
그 이름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도 거기에 머물고 싶지는 않다.
더 배우고, 더 연습하고,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
누군가에게 내 음식을 대접했을 때 그 사람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기쁨도 계속 느끼고 싶다.
언젠가 어린 시절의 나에게 이 모든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네가 그렇게 좋아하던 요리를 계속했더니, 어느 날은 사람들이 네 이름 앞에 새로운 호칭을 붙여주더라.”
아이는 아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을 것이다.
“그럼 이제 요리 엄청 잘해?”
나는 웃으며 대답하고 싶다.
“아직도 배우고 있어.”
그리고 한마디를 더할 것이다.
“그런데 예전보다 훨씬 재미있어.”
처음 이름 앞에 붙은 타이틀.
그것은 내가 요리를 좋아했던 시간에 대한 작은 대답이었고, 앞으로 더 성실하게 요리하라는 새로운 약속이었다.
나는 그 이름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름 앞에 붙은 말보다 내 손으로 만드는 음식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사람들이 내 타이틀을 기억하기보다 내가 만든 한 끼의 따뜻함을 오래 기억해준다면 좋겠다.
그것이 내가 바라는 요리인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순간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오랫동안 좋아했던 한식이 내 이름 앞에 더 깊은 의미로 자리하게 될 시간.
다음 이야기에는 그 특별한 날의 마음을 담아보려고 한다.
경은의 한마디
“타이틀은 내가 걸어온 시간을 인정해준 이름이지만, 그 이름의 가치는 앞으로 내가 만드는 음식으로 채워가야 한다.”
오늘의 핑크 한스푼
오늘은 지금까지 내가 노력해서 이루어낸 일 하나를 떠올려보세요.
누군가에게 인정받았던 일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낸 일, 오래 연습해서 능숙해진 일,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일이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작은 칭찬을 건네보세요.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어.”
그동안의 노력을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도 그 마음을 이어가는 일 역시 소중합니다.
내가 걸어온 시간을 인정하고 앞으로의 나를 응원하는 마음을 한스푼 더해보세요.
오늘의 작은 성취가 내일의 새로운 시작이 되어줄지도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