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세계 요리 여행은 드넓은 태평양의 섬들, 폴리네시아로 향한다. 오늘의 주인공은 화려한 고기요리도, 달콤한 열대과일 디저트도 아니다. 얼핏 보면 보랏빛 또는 회백색의 걸쭉한 죽처럼 보이는포이(Poi)다.
특히 Hawaii의 전통 음식으로 잘 알려진 포이는 맛보다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알고 먹을 때 더욱 특별해지는 음식이다.
포이의 주재료는 하와이어로칼로(kalo)라고 부르는 토란이다.
토란의 알뿌리를 쪄서 익힌 뒤 전통적으로 나무판 위에 놓고 돌로 만든 도구를 이용해 반복해서 찧는다. 여기에 조금씩 물을 더하면 부드럽고 끈기 있는 반죽처럼 변한다.
재료는 놀라울 만큼 단순하다.
토란과 물.
하지만 하와이 원주민들에게 칼로는 단순한 농작물이 아니었다.
하와이의 전통 창세 이야기에는 인간과 칼로가 가족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세계관이 담겨 있다. 전승에서는 하와이 사람들의 조상과 칼로의 기원을 형제 관계로 설명하기도 한다.
때문에 칼로를 재배하고 포이를 만들어 먹는 행위에는 땅과 조상, 가족을 존중하는 의미까지 담겨 있었다.
포이가 태어난 배경에는 섬이라는 환경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태평양의 작은 섬에서는 오늘날처럼 다양한 식재료를 쉽게 구할 수 없었다. 바다를 건너 식량을 가져오는 것도 어려웠기 때문에 사람들이 직접 재배할 수 있고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작물이 중요했다.
습지에서도 잘 자라는 토란은 이런 환경에 적합했다.
폴리네시아 항해자들이 새로운 섬으로 이동할 때 토란을 비롯한 중요한 작물들을 함께 가져갔고, 이 작물들은 새로운 정착지에서 사람들의 생명을 지탱했다.
하와이에서는 토란을 재배하기 위해 물을 끌어들인로이(loʻi)라는 습지 농경지가 발달했다. 사람들은 물의 흐름을 관리하고 공동으로 밭을 돌보며 토란을 길렀다.
즉 포이 한 그릇이 만들어지기까지는 농사부터 공동체의 협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포이를 만드는 과정 역시 혼자만의 일이 아니었다.
잘 익힌 토란을 오랫동안 찧어야 했기 때문에 가족과 공동체가 함께 음식을 준비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포이는 생선과 돼지고기, 해조류 등 여러 음식과 함께 식탁에 올랐다.

포이에는 또 하나 흥미로운 특징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맛이 달라진다.
갓 만든 포이는 비교적 부드럽고 은은한 맛을 내지만 며칠이 지나 자연 발효가 진행되면 산미가 강해진다. 사람들은 취향에 따라 신선한 포이를 먹기도 하고 발효되어 새콤해진 포이를 즐기기도 했다.
냉장고가 없던 시대에 이런 자연적인 변화는 음식문화의 일부였다.
먹는 방법도 재미있다.
포이는 농도에 따라 과거에 원 핑거 포이(one-finger poi), 투 핑거 포이(two-finger poi) 등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손가락 하나로 떠먹을 만큼 되직한지, 두 손가락을 사용해야 할 정도인지에 따라 농도를 설명한 것이다.
오늘날의 식사예절과 비교하면 낯설지만, 음식을 손으로 나누어 먹던 전통적인 식문화가 그대로 반영된 표현이다.
19세기 이후 하와이 사회가 급격하게 변화하면서 전통적인 토란 농업과 포이 문화 역시 큰 영향을 받았다. 서구식 식생활이 확산되고 토란 재배지가 줄어들면서 포이는 한때 예전보다 식탁에서 멀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하와이 전통문화와 토착 농업을 되살리려는 움직임과 함께 칼로와 포이의 가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젊은 세대가 전통 방식으로 토란을 재배하고 포이를 만드는 법을 배우는 활동도 이어지고 있다.
포이는 세계적인 미식의 기준으로 보면 매우 소박한 음식이다.
화려한 향신료도 없고 복잡한 소스도 없다.
그러나 바로 그 단순함 속에 태평양 섬사람들의 삶이 담겨 있다.
먼 바다를 건너 새로운 섬에 정착했던 사람들, 물길을 만들고 토란을 심었던 농부들, 가족이 둘러앉아 토란을 찧던 풍경 그리고 음식을 통해 조상을 기억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 그릇 안에 이어져 온 것이다.
포이는 단순히 토란을 찧어 만든 음식이 아니다.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사람들이 땅을 일구고 가족을 먹이며 세대를 이어온 ‘생명의 음식’이다. 때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는 요리는 가장 화려한 음식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과 가장 가까이 있었던 음식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