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세계 요리 여행은 수천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Indonesia로 향한다. 오늘의 주인공은 짙은 갈색의 소고기에 코코넛과 향신료의 풍미가 깊숙이 밴 렌당(Rendang)이다.
렌당을 처음 보면 국물이 거의 없는 소고기 조림처럼 보인다. 하지만 만드는 과정을 알고 나면 생각이 달라진다.
렌당은 끓이고, 졸이고, 다시 볶아내듯 익히는 긴 시간의 음식이다.
그 뿌리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서부의 미낭카바우(Minangkabau) 문화와 깊이 연결돼 있다. 미낭카바우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소고기와 코코넛밀크, 고추와 여러 향신료를 함께 조리해 렌당을 만들어왔다.
렌당이 탄생한 배경을 이해하려면 먼저 열대기후를 생각해야 한다.
냉장고가 없던 시대에 덥고 습한 지역에서 고기를 오래 보관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기를 오래 익히고 수분을 줄이며 향신료를 사용하는 방법을 발전시켰다.
렌당의 조리법은 바로 이런 환경에 잘 맞았다.
커다란 냄비에 소고기와 코코넛밀크를 넣는다. 여기에 고추와 마늘, 생강, 갈랑갈, 레몬그라스, 강황잎 등 다양한 향신재료를 더한다.
처음에는 분명 국물이 넉넉하다.
그러나 약한 불에서 몇 시간 동안 계속 저으며 익히면 놀라운 변화가 시작된다.
코코넛밀크의 수분이 서서히 증발하고 기름이 분리된다. 양념은 점점 농축되면서 고기에 달라붙고, 마지막에는 고기가 진한 갈색을 띠며 풍미가 극도로 깊어진다.
그래서 제대로 만든 렌당은 국물이 거의 남지 않는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렌당은 사실 완성되는 과정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과 이름으로 즐겨진다. 국물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을 때는 비교적 촉촉한 형태이고, 더 오래 조리해 수분이 거의 사라지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짙은 색의 렌당이 된다.
즉 렌당의 핵심 재료 가운데 하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인 셈이다.
하지만 미낭카바우 사람들에게 렌당은 단순한 보존식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전통적으로 렌당은 결혼식과 명절, 종교 행사, 귀한 손님을 맞이하는 자리처럼 중요한 순간에 등장한다. 많은 양을 만들려면 오랜 시간 불 앞에서 냄비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함께 준비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렌당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공동체의 일이 됐다.
렌당에는 재료마다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미낭카바우의 문화적 해석도 전해진다.
소고기는 공동체의 지도자나 어른을, 코코넛은 지식인을, 고추는 종교 지도자를, 여러 향신료는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람들을 상징한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각각의 재료는 혼자서는 렌당이 될 수 없다.
오랜 시간 한 냄비에서 서로 섞이고 조화를 이루어야 비로소 완성된다.
음식이 공동체를 닮은 것이다.
렌당의 역사에는 미낭카바우 사람들의 이동 문화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에게는 고향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경험과 부를 쌓는 '메란타우(Merantau)'라는 전통이 있었다. 사람들이 수마트라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렌당의 조리법도 함께 퍼져 나갔다.
그 과정에서 말레이반도와 인도네시아 여러 지역에 다양한 형태의 렌당이 자리 잡았다.
오늘날에는 쇠고기뿐 아니라 닭고기나 오리고기, 간 등을 이용한 렌당도 만들어진다. 지역과 가정에 따라 향신료의 배합과 조리시간 역시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서두르면 제대로 된 렌당을 만들기 어렵다는 것이다.
센 불로 빠르게 졸이면 코코넛밀크가 타거나 고기가 충분히 부드러워지지 않는다. 약한 불에서 오랫동안 기다리면서 수분이 사라지고 양념이 고기에 스며드는 시간을 견뎌야 한다.
빠르고 간편한 음식이 넘쳐나는 오늘날 렌당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한 접시의 짙은 갈색 고기에는 몇 시간 동안 냄비를 저었던 사람의 노동과 가족을 위해 음식을 준비했던 시간, 그리고 음식을 오래 보존해야 했던 조상들의 생활 지혜가 함께 들어 있다.
렌당은 단순히 오래 끓인 소고기 요리가 아니다. 불과 코코넛, 향신료 그리고 기다림이 만나 완성되는 음식이다. 냉장고가 없던 시대의 생활 지혜에서 출발한 한 냄비가 오늘날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요리가 됐다는 사실은 음식의 역사가 얼마나 흥미로운지를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