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경은 교수의 요리에세이 『오늘도 핑크 한스픈』 19화. 칼질 하나에도 이유가 있었다

익숙한 칼질에도 원리가 있었다, 감으로 해오던 요리를 처음부터 다시 배우다

재료의 두께와 불의 세기, 양념의 순서까지 작은 차이가 한 접시의 완성도를 바꾸다

엄마에게 물려받은 손맛에 정확한 기술을 더하며 나만의 요리를 찾아가는 경은이의 성장 이야기

 

 

 

19화. 칼질 하나에도 이유가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요리를 해왔다.

가족의 밥상을 차렸고, 아이에게 음식을 만들어주었고, 냉장고에 남은 재료만으로도 제법 근사한 저녁을 완성할 줄 알았다.

 

그런데 제대로 요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이상한 경험을 했다.

분명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씩 낯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나를 당황하게 했던 것은 칼질이었다.

‘아니, 내가 지금까지 칼을 얼마나 잡았는데.’

속으로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양파를 썰고, 당근을 채 썰고, 무를 나박나박 써는 일은 오랫동안 해온 일이었다.

그런데 수업에서는 칼을 잡는 자세부터 다시 배웠다.

 

재료의 두께를 맞추고, 손가락의 위치를 확인하고, 칼이 내려오는 방향까지 신경 써야 했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칼질을 할 줄 알았지만, 왜 그렇게 썰어야 하는지는 충분히 알지 못했다는 것을.

어릴 때 엄마에게 요리를 배울 때는 이유를 묻는 일이 많지 않았다.

 

엄마가 당근을 썰면 나도 비슷하게 썰었고, 엄마가 무를 큼직하게 자르면 그 모양을 따라 했다.

“엄마, 이건 왜 이렇게 썰어?”

가끔 물어보면 엄마는 대답했다.

 

“그래야 맛있지.”

그 말이면 충분했다.

 

엄마가 하는 대로 따라 하면 대체로 맛있는 음식이 완성되었으니까.

하지만 전문적으로 배우는 요리는 조금 달랐다.

모양 하나에도 이유가 있었고, 순서 하나에도 원리가 있었다.

 

나는 그때부터 엄마의 부엌에서 배웠던 감각에 새로운 설명을 붙이기 시작했다.

수업 시간에 당근을 썰면서 처음으로 두께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늘 하던 대로 썰면 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어떤 것은 두껍고, 어떤 것은 얇았다.

가만히 놓고 보면 제법 비슷해 보였지만 나란히 줄을 맞춰놓으니 차이가 드러났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설명을 듣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같은 팬에 들어가는 재료라도 두께가 다르면 익는 속도가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얇은 것은 먼저 익고, 두꺼운 것은 아직 단단하게 남을 수 있었다.

 

그 순간 아주 오래전의 볶음밥이 떠올랐다.

어떤 날에는 당근이 유난히 딱딱했고, 어떤 날에는 채소가 너무 물러졌던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단순히 불 조절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칼질에서 이미 차이가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부터 나는 도마 앞에 서는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

빨리 써는 것보다 일정하게 써는 것에 집중했다.

당근 한 조각을 내려놓고 다음 조각의 두께를 살폈다.

 

조금 두꺼우면 다시 잘랐고, 모양이 일정하지 않으면 옆에 놓고 비교했다.

처음에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걸 언제 다 썰지?’

혼자 속으로 투덜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 보였다.

 

어제는 제각각이었던 채소가 오늘은 조금 더 가지런해졌다.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이상하게 즐거웠다.

 

예쁜 것을 좋아하는 내 성격이 이런 순간에도 나타나는 것 같았다.

칼질을 배우면서 재료마다 어울리는 모양이 있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같은 무라도 국에 넣을 때와 생채를 만들 때의 모양은 달라야 했다.

오랫동안 끓일 재료인지, 짧은 시간에 익힐 재료인지에 따라서도 손질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양파를 가늘게 썰어야 할 때가 있고, 큼직하게 썰어야 맛과 식감이 살아나는 음식도 있었다.

 

그동안 나는 대부분 완성된 음식의 모습을 떠올리며 칼질했다.

이제는 조금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어떻게 익힐 것인지.

어떤 식감을 남길 것인지.

다른 재료와 얼마나 잘 어울리게 할 것인지.

 

칼을 잡기 전에 생각해야 할 일이 이렇게 많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처음에는 전문적인 조리법이 조금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용어도 낯설었고, 정확하게 기억해야 할 기준도 많았다.

하지만 하나씩 배우다 보니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기분이었다.

 

막연히 맛있다고 느꼈던 음식에도 이유가 있었다.

같은 재료라도 어떻게 손질하고 조리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나는 점점 더 궁금해졌다.

‘그럼 내가 지금까지 만들어온 음식도 조금 더 맛있게 만들 수 있겠네.’

 

그 생각을 하니 배움이 즐거워졌다.

불을 배우는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오랫동안 가스레인지 앞에 서 있었다.

 

센 불과 약한 불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전문적인 조리에서는 단순히 불을 크게 켜고 작게 줄이는 것보다 더 많은 판단이 필요했다.

 

팬을 얼마나 달구었는지, 재료에 수분이 얼마나 있는지, 어떤 결과를 원하는지에 따라 불을 사용하는 방법이 달라졌다.

고기를 구울 때와 채소를 볶을 때는 같은 방법을 사용할 수 없었다.

 

재료의 겉면을 노릇하게 익히고 싶은지, 속까지 부드럽게 익히고 싶은지에 따라서도 조리 과정이 달라졌다.

나는 그동안 불을 사용해왔지만 이제는 불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수업에서 채소를 볶다가 너무 일찍 팬을 뒤적였다.

잘 익히고 싶어서 계속 움직였는데 오히려 생각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그때 알게 되었다.

요리에서는 손을 많이 움직이는 것이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기다려야 했다.

팬의 열이 충분히 전달되도록 두어야 할 때도 있었다.

 

그 순간 엄마가 떠올랐다.

어릴 때 냄비 뚜껑을 자꾸 열어보던 나에게 엄마는 늘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그 말이 다시 들리는 것 같았다.

 

엄마의 손맛과 내가 배우는 조리 원리가 서로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요리에서 순서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새롭게 배웠다.

 

어릴 때는 재료만 모두 넣으면 비슷한 맛이 날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같은 재료라도 무엇을 먼저 넣느냐에 따라 음식의 향과 식감이 달라졌다.

 

마늘을 언제 넣는지.

채소를 어떤 순서로 볶는지.

소스를 처음부터 넣을지, 마지막에 넣을지.

그 작은 차이가 음식 전체를 바꾸기도 했다.

 

나는 수업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날 배운 내용을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평소 자주 만들던 음식에 적용해보았다.

 

이전과 같은 재료로 만들었는데 결과가 조금씩 달라졌다.

그것이 신기했다.

 

정확한 계량을 배우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엄마의 부엌에는 계량컵이 없었다.

엄마는 손끝으로 간을 맞추었고, 나는 오랫동안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랐다.

 

그런데 전문적인 요리에서는 정확한 기준이 필요했다.

소금 몇 그램.

간장 몇 밀리리터.

재료와 양념의 비율.

 

처음에는 모든 것을 하나하나 계량하는 일이 조금 번거롭게 느껴졌다.

그런데 정확한 계량으로 여러 번 만들어보니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내가 만든 음식의 맛이 왜 달라졌는지 비교할 수 있었고, 무엇을 조절해야 하는지도 조금 더 분명해졌다.

그렇다고 엄마의 손맛이 틀렸다는 뜻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전문적인 조리 원리를 배울수록 엄마의 손맛이 얼마나 오랜 경험에서 나온 것인지 새삼 느껴졌다.

 

엄마는 수많은 반복 속에서 재료의 상태를 판단하고 양념의 양을 조절하는 감각을 익혔던 것이다.

나는 그것을 이제 이론과 기술로 배우고 있었다.

 

서로 다른 길에서 출발한 두 가지 지식이 내 안에서 만나기 시작했다.

엄마의 손끝과 교실의 계량컵.

나는 둘 다 소중했다.

 

손맛은 요리를 살아 있게 만들고, 정확한 기준은 그 맛을 다시 만들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공부를 할수록 이전에 만든 음식들이 떠올랐다.

 

‘그때 왜 그렇게 되었는지 이제 알겠네.’

그런 순간이 자주 찾아왔다.

 

한때는 단순히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던 음식도 사실은 적절한 조리 조건이 맞아떨어진 결과일 수 있었다.

반대로 아무리 신경 써도 원하는 맛이 나오지 않았던 음식에는 놓친 이유가 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되니 실패를 바라보는 마음도 달라졌다.

이제는 음식이 마음처럼 나오지 않아도 막연히 속상해하는 대신 무엇이 달랐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작은 노트 하나를 마련했다.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적고,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은 따로 표시했다.

 

칼질에 관한 내용.

불 조절.

조리 순서.

양념의 비율.

그리고 실습하면서 내가 자주 실수했던 부분.

 

노트를 채우다 보면 이상하게 뿌듯했다.

어릴 때는 예쁜 그릇을 모으는 것이 좋았다면, 이제는 새로운 지식을 하나씩 쌓아가는 일도 좋아지고 있었다.

 

배움이라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었나 싶었다.

물론 늘 즐겁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시간 안에 음식을 완성해야 할 때면 마음이 급해졌다.

 

평소에는 잘하던 칼질도 긴장하면 자꾸 틀어졌고, 순서를 외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실습을 시작하면 머릿속이 하얘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잠깐 속상했다.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왜 안 되지?’

하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오래 실망하지 않았다.

 

한 번 더 연습했다.

다음에는 조금 더 천천히 움직였다.

실수가 반복되면 이유를 찾아봤다.

 

그러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잘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틀리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실수를 살피고 고쳐가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재료를 바라보는 눈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냉장고를 열고 무엇을 만들 수 있을지부터 생각했다.

 

이제는 재료의 성질도 생각하게 되었다.

수분이 많은 채소인지.

오래 익혀야 부드러워지는 재료인지.

짧게 익혀야 식감이 살아나는지.

 

같은 요리라도 재료의 상태에 따라 조리 방법을 조금씩 바꿔야 했다.

나는 그 과정에서 요리가 참 섬세한 일이라는 것을 느꼈다.

 

재료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그 재료가 가진 맛을 충분히 끌어내기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요리를 배우면서 나는 때로 작은 과학자가 된 기분이었다.

 

하나의 조건을 바꾸고 결과를 확인했다.

같은 재료로 다른 방법을 시도해보고, 익히는 시간이나 조리 순서를 조절해보았다.

 

그리고 결과를 비교했다.

생각보다 맛이 크게 달라질 때도 있었고, 기대했던 만큼 차이가 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 모든 과정이 공부였다.

나는 더 이상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하는 데서 만족하고 싶지 않았다.

 

왜 그런 결과가 나오는지 알고 싶었다.

그 이유를 알아야 다른 음식에도 응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플레이팅을 배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릴 때부터 나는 예쁜 것을 좋아했다.

 

핑크색 리본과 꽃무늬 그릇을 좋아했던 마음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문적으로 배우기 시작하면서 아름다움에도 원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색의 조화와 대비.

음식의 높낮이.

접시 위의 여백.

시선이 머무는 위치.

그릇과 음식의 균형.

 

그동안 막연히 예쁘다고 느꼈던 것들에 하나씩 이름이 붙었다.

나는 특히 여백이 좋았다.

 

어릴 때는 접시를 가득 채우는 것이 풍성하고 예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비워두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음식 사이에 공간이 있어야 각각의 재료가 살아났고, 접시 위의 중심도 분명해졌다.

가끔은 마지막 장식 하나를 더하는 것보다 이미 올려놓은 것을 하나 덜어내는 편이 더 나았다.

 

그것도 꽤 중요한 발견이었다.

예쁘게 만드는 일에는 더하는 기술뿐 아니라 덜어내는 기술도 필요했다.

 

공부를 할수록 내 요리는 조금씩 달라졌다.

가족에게 음식을 만들어줄 때도 예전과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재료를 손질하면서 조리 후의 모습을 떠올렸고, 불을 켤 때는 원하는 식감을 먼저 생각했다.

 

음식이 완성되면 맛을 확인하고, 마지막에 접시를 골랐다.

하나하나가 이전보다 조금 더 분명해졌다.

그렇다고 갑자기 모든 음식이 완벽해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실패하는 날도 있었고, 기대했던 맛이 나오지 않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무엇을 바꿔야 할지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의 식탁을 차려온 시간은 내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전문적인 조리 공부는 그 경험을 다시 이해할 기회를 주었다.

 

나는 그 사실이 참 고마웠다.

만약 조금 더 일찍 공부했다면 지금보다 기술을 빨리 익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활 속에서 요리를 오래 해왔기 때문에 새롭게 배우는 것들이 더 깊이 와닿는 순간도 있었다.

 

 

 

 

 

배우는 즉시 떠오르는 경험들이 있었고, 이론을 설명할 수 있는 생활 속의 사례도 많았다.

다시 학생이 되기 전에는 내가 부족한 것을 채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공부를 할수록 새로운 것을 채우는 일만큼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는 일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손에 쌓여 있던 경험을 다시 꺼내고, 그 안에 전문적인 지식을 더했다.

 

오랜 시간 감으로 해왔던 요리에 하나씩 이유를 붙였다.

그 과정은 마치 흩어져 있던 퍼즐 조각을 맞추는 일 같았다.

처음에는 서로 상관없어 보이던 조각들이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갔다.

 

어느 날 실습을 마치고 조리대를 정리하다가 도마를 한참 바라본 적이 있었다.

그날 썰었던 재료들은 이미 음식이 되어 접시 위에 놓여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재료를 썰기 위한 도구라고 생각했던 도마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그곳에서 오늘의 음식이 시작되었다.

 

칼질이 일정해야 조리 과정이 안정되고, 재료를 제대로 이해해야 원하는 맛을 만들 수 있었다.

한 접시의 완성도는 마지막 플레이팅에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음식을 만드는 첫 순간부터 완성의 방향이 정해지고 있었다.

그때 문득 삶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결과가 먼저 보였다.

누군가 멋진 요리를 완성하면 그 접시만 바라보았다.

 

그 사람이 얼마나 오랫동안 기본을 연습했는지, 얼마나 많은 실수를 고쳤는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알게 되었다.

 

아름다운 접시 하나 뒤에는 수없이 반복한 작은 동작들이 있었다.

정확한 칼질.

적절한 불 조절.

재료를 이해하는 눈.

끊임없이 맛을 확인하는 습관.

그리고 마지막까지 집중하는 마음.

 

어떤 것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이제 기본을 반복하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어제보다 조금 더 정확하게 썰고, 지난번보다 조리 순서를 잘 기억하고, 오늘 만든 음식을 다시 평가해보는 과정이 좋았다.

누군가 보기에는 사소한 변화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분명한 성장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쌓인 작은 변화들이 언젠가 내 요리를 완성할 것이라는 믿음도 생겼다.

지금 학생들에게 요리를 가르칠 때면 나는 가끔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린다.

 

칼을 잡고 긴장하던 모습.

익숙한 음식도 다시 배우며 신기해하던 모습.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궁금해서 노트에 적던 모습.

 

그래서 학생들이 질문하면 반갑다.

“교수님, 이건 왜 이렇게 썰어요?”

그런 질문을 들으면 나는 가능한 한 이유를 설명해주려고 한다.

 

그냥 외우는 것보다 이해하는 것이 오래 남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말한다.

 

“빠르게 하는 것보다 정확하게 하는 것이 먼저예요.”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면서 해보세요.”

“모양만 따라 하지 말고 재료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보세요.”

 

말을 하다 보면 가끔 웃음이 난다.

한때 칼질을 다시 배우는 것이 조금 억울했던 내가 이제는 칼질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인생은 참 재미있다.

그때 어렵게 배웠던 것들이 이제는 누군가에게 전해줄 수 있는 지식이 되었다.

 

나는 아직도 요리를 할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

아는 음식이라고 해서 늘 똑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재료의 상태도 다르고, 조리 환경도 다르고, 먹는 사람의 취향도 다르다.

 

그래서 익숙한 음식 앞에서도 가끔 멈춰 생각한다.

‘오늘은 어떻게 만드는 것이 좋을까?’

그 질문이 남아 있는 한 나는 계속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칼질 하나에도 이유가 있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조금 번거롭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작은 이유들이 모여 음식의 맛을 만들고, 식감을 만들고, 한 접시의 아름다움을 완성한다는 것을.

 

그리고 내 인생에도 비슷한 시간이 있었다.

엄마 옆에서 부엌을 기웃거리던 어린 시절.

가족을 위해 밥상을 차리던 젊은 시절.

 

아이를 키우며 매일 같은 질문을 반복하던 시간.

다시 앞치마를 묶고 학생이 되었던 날.

 

그 모든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도마 앞에 서면 서두르지 않는다.

 

재료를 한번 바라보고, 어떤 음식으로 완성할지 생각한다.

그리고 칼을 잡는다.

 

톡, 톡, 톡.

도마 위에 일정한 소리가 울린다.

하나씩 썰어놓은 재료들이 가지런하게 놓인다.

 

나는 잠깐 손을 멈추고 바라본다.

예전보다 조금 더 정확해진 칼질.

예전보다 조금 더 깊어진 생각.

 

그 속에서 내 요리도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이제 나는 음식을 만드는 방법뿐 아니라, 왜 그렇게 만들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경은의 한마디

“요리를 잘한다는 것은 손이 빠른 것이 아니라, 작은 동작 하나에도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일이다.”

 

오늘의 핑크 한스푼

오늘은 늘 하던 요리 하나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세요.

당근을 썰 때는 왜 그 두께로 써는지 생각해보고, 팬에 재료를 넣을 때는 왜 그 순서로 넣는지 살펴보세요.

 

국을 끓인다면 양념을 넣는 순간에 따라 맛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생각해보세요.

평소에는 별생각 없이 하던 작은 동작 하나에도 분명한 이유가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익숙한 일에 새로운 질문 하나를 더하는 것.

그 질문이 오늘의 요리를 조금 더 맛있게 만들고, 내일의 나를 조금 더 성장시켜줄지도 모릅니다.

 

 

 

 

작성 2026.09.24 22:37 수정 2026.09.24 22:38

RSS피드 기사제공처 : 미식1947 / 등록기자: 심경은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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