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 서구 주얼리 리폼공방 ‘연주얼리’ 여화연 작가 |
대전 서구의 어느 주택가 골목길. 번잡한 대로에서 한 걸음 벗어나 조용한 골목을 걷다 보면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듯한 공간 하나를 만나게 된다.
오래된 물건에서 느껴지는 온기와 세월의 흔적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는 엔틱한 분위기의 주얼리 공방 ‘연주얼리’다. 화려하게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공간 자체가 오랜 시간을 말해주는 듯했다. 그곳에서 작업에 몰입해 있던 여화연 작가를 만났다.
기자를 맞이한 그의 모습에서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말 한마디 한마디는 차분했고, 작품과 재료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오랜 시간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깊이가 있었다.
무엇보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손은 자연스럽게 작업물을 살피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아, 이 사람은 정말 오래 작업해온 작가구나’라는 인상을 준다.
연주얼리는 단순히 주얼리를 사고파는 공간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버리기 아까운 물건을 다시 살려주는 곳이고, 누군가에게는 세상을 떠난 가족을 기억하게 하는 작은 기념품이 되며, 또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마음을 지켜주는 특별한 물건이 되어주는 공간이었다.
![]() ▲ 사진 = 대전 서구 주얼리 리폼공방 '연주얼리' |
“처음부터 리폼을 하려고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여기까지 왔죠.”
여화연 작가와 주얼리의 인연은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서울에서 섬유공예를 전공한 그는 결혼 후 대전으로 오게 되면서 전문적인 작가 활동을 계속 이어가기 어려웠다.
대신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고 싶다는 마음으로 미술학원을 열었고, 아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성장해 독립하기까지 20여 년 동안 미술교육 현장을 지켰다.
그러던 어느 순간, 아이들이 하나둘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나면서 작가에게도 새로운 시간이 찾아왔다. 그동안 아이들을 위해 살아왔다면 이제는 자신을 위한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었다. 그때 취미로 시작한 것이 주얼리였다.
원래 재료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그는 미술 작업을 하면서 다양한 소재를 접해왔다.
가죽과 은, 원석, 실 등 여러 재료를 조합해 팔찌와 브로치를 만들었고 직접 착용하고 다녔다.
특별히 판매를 목적으로 만든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주변의 반응이 예상 밖이었다.
“어디서 샀느냐”, “이런 건 처음 본다”, “나도 하나 만들어 달라”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처음에는 친한 친구들에게 하나씩 만들어주던 일이 친구의 친구에게까지 알려졌고, 그렇게 주문이 조금씩 늘어났다. 결국 ‘이왕이면 새로운 직업으로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공방을 열었다. 대전 둔산동에서 시작한 주얼리 공방은 그렇게 10년의 시간을 지나왔다.
▲ 사진 = 연주얼리 |
평범한 수선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이야기에 맞춰 다시 디자인하는 일
처음 공방에서는 직접 만든 주얼리를 판매하고 원데이 클래스도 진행했다.
학교 특강을 나가기도 했고, 특수아동을 위한 비즈 작업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시도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고장 난 주얼리를 들고 찾아오기 시작했다.
“이거 고칠 데가 없는데 혹시 고쳐주실 수 있느냐”는 부탁이었다.
작가에게는 간단한 작업이었지만 일반인에게는 어디에서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그렇게 작은 수선에서 시작된 일이 어느 순간 ‘리폼’이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됐다.
오래된 주얼리를 바라보는 작가의 방식은 조금 달랐다.
단순히 끊어진 줄을 연결하거나 부속품을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이 물건을 어떻게 하면 지금의 사람에게 어울리게 다시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오래돼 보이는 목걸이는 새로운 디자인으로 바꾸고, 착용하지 않는 팔찌는 전혀 다른 형태로 재구성했다.
![]() ▲ 사진 = 연주얼리 |
특히 유품 리폼은 연주얼리만의 특별한 작업으로 자리 잡았다.
가족이 세상을 떠난 뒤 남겨진 주얼리는 아무리 작은 물건이라도 쉽게 버릴 수 없다. 오래된 원석이나 보석에는 지금은 구하기 어려운 색감과 품질이 남아 있는 경우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 안에는 가족과 함께했던 시간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한 고객은 많은 양의 유품을 가져와 리폼을 부탁했다.
모두를 그대로 활용할 수는 없었기에 작가는 그중 적절한 소재를 골라 약 20개의 주얼리로 다시 만들었다.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포장해 가족들이 나눠 가질 수 있도록 했고, 영국에 있는 증손녀에게도 목걸이 하나를 보냈다.
물건 하나가 가족을 연결하는 기억의 끈이 된 순간이었다.
▲ 사진 = 연주얼리 |
“주얼리는 결국 사람에게 맞아야 해요. 몇 밀리미터의 차이도 중요하죠.”
리폼 작업에서 작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맞춤’이다.
단순히 예쁜 디자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의뢰인의 나이와 취향, 평소 스타일, 착용 목적까지 세심하게 살핀다.
같은 디자인이라도 젊은 사람이 착용할 때와 나이 든 사람이 착용할 때의 느낌은 다르고, 강렬한 색을 좋아하는 사람과 차분한 색을 선호하는 사람에게 같은 결과물을 내놓을 수도 없다.
주얼리는 특히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든다. 목걸이 길이가 불과 0.5cm만 달라져도 착용했을 때의 인상이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작업 과정에서 치수와 마감, 내구성을 꼼꼼하게 확인한다. 다시 끊어지거나 늘어나지 않도록 마지막 손질까지 세심하게 챙기는 이유다.
그에게 리폼은 단순한 수선이 아니라 ‘사람에게 맞춰 다시 디자인하는 작업’이다.
▲ 사진 = 연주얼리 |
섬유공예에서 배운 감각, 다양한 재료가 만나 연주얼리만의 색이 되다
여화연 작가의 작업이 다른 주얼리와 다른 지점도 여기에 있다.
그는 주얼리만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다. 섬유공예를 공부했고 오랜 시간 미술을 가르치며 수많은 재료를 다뤄왔다. 한 가지 재료에만 갇히지 않는 경험은 자연스럽게 연주얼리의 독특한 디자인으로 이어졌다.
때로는 주얼리에 단추를 사용하기도 하고, 일반적으로 예상하기 어려운 소재를 섞기도 한다. 마스크 착용이 일상이던 시기에는 밋밋한 마스크 줄에 강렬한 색을 더해 작은 부분에서 경쾌함을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재료에 대한 이해와 색채 감각, 공예적 경험이 함께 작동하는 것이다.
그는 “연주얼리는 뭔가 독특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많다고 했다.
남들이 흔히 생각하지 않는 소재를 주얼리에 적용하고 서로 다른 재료를 조합해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내는 것이 자신만의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 사진 = 연주얼리 |
누군가에게는 장신구였지만, 누군가에게는 마음을 지키는 물건이었다
연주얼리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주얼리가 단순히 몸을 꾸미는 물건이라는 생각에서 조금씩 멀어진다.
한 심리상담 전문가는 매년 연말이면 연주얼리에 수십 개의 주얼리를 주문한다.
상담을 마친 내담자들에게 선물하기 위해서다. 마음이 힘든 사람들에게 너무 화려한 색이나 강한 디자인은 부담스러울 수 있기에 그해의 분위기와 내담자들의 상황을 고려해 색과 디자인을 함께 고민한다.
작가가 여러 샘플을 준비하면 상담가와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 뒤 새로운 제품을 만든다.
상담이 끝난 뒤 작은 주얼리 하나를 건네받은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상담가 역시 주얼리가 가진 힘을 느꼈다고 한다.
여화연 작가에게도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주얼리가 단순히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장신구를 넘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와 안정감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또 한 번은 젊은 배달업 종사자가 공방을 찾아왔다. 사고로 손을 다친 뒤 공방 주변을 몇 차례 서성이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온 그는 ‘십자가가 들어간 팔찌’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디자인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은 없었다.
다만 일을 할 때 착용할 수 있는 십자가 팔찌를 원했다. 작가는 오닉스를 사용해 그의 손목에 정확히 맞는 팔찌를 만들었다.
이후 그 고객은 다시 공방을 찾아와 일을 할 때 팔찌를 착용하면 마음이 조금 안정되는 것 같고, 자신을 지켜주는 수호신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작가에게는 오래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 자신이 만든 작은 물건 하나가 누군가에게 그렇게 특별한 의미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 ▲ 사진 = 연주얼리 |
온라인으로 이어진 인연, 이제는 전국에서 주얼리가 찾아온다
코로나19는 연주얼리의 작업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사람들의 움직임이 줄어들면서 온라인 소통의 필요성을 느낀 작가는 인스타그램과 네이버 블로그, 페이스북 등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온라인 활동을 쉬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다시 꾸준히 작업 기록을 올리고 있다.
특히 최근 몇 개월 동안 매일 아침 작업한 내용과 리폼 과정을 기록하면서 고객들의 반응도 달라졌다. 이제는 대전 지역을 넘어 전국에서 주얼리를 택배로 보내오는 고객들도 있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작가에게 귀한 진주 목걸이나 가족의 유품을 택배로 보낸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작가는 더욱 정확하고 꼼꼼하게 작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맡긴 주얼리의 개수를 정확하게 확인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모습으로 완성됐는지를 고객과 상세하게 소통한다.
신뢰는 결국 결과물에서 나온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
▲ 사진 = 연주얼리 여화연 작가 작업 모습 |
10년을 지나온 공방, 이제는 누군가에게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연주얼리는 현재 전체 작업의 70~80%가량이 리폼으로 이뤄질 정도로 리폼 전문 공방의 색깔이 뚜렷해졌다.
해외여행에서 구입했지만 줄이 약해진 주얼리, 오래 사용해 늘어난 묵주팔찌와 염주, 더 이상 착용하지 않는 오래된 목걸이까지 다양한 물건이 작업대 위에 오른다.
최근에는 공방의 규모를 조금 줄여 이전했다.
한때는 10년을 끝으로 공방을 정리할 생각도 했다. 하지만 지난 시간 동안 만났던 사람들과 그들이 리폼된 주얼리를 받아들고 기뻐하던 모습을 떠올리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이건 누군가가 계속 이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컴퓨터가 대신하기 어려운 일, 사람의 손으로 직접 만지고 사람마다 다르게 맞춰주는 공예적 작업이라는 점에서 리폼의 가치를 다시 바라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원데이 클래스에도 힘을 싣고 있다.
최근에는 한 젊은 고객이 시어머니의 오래된 목걸이를 가져왔다. 긴 목걸이를 새로운 목걸이와 팔찌로 나누어 만들고 싶다는 의뢰였다.
작가는 고객이 직접 팔찌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고 자신은 목걸이 작업을 진행했다. 마지막 마감은 직접 꼼꼼하게 손질했다.
멀리서 온 고객이 다시 방문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줄이는 동시에 자신의 손으로 새로운 주얼리를 완성하는 경험까지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리폼 작업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비용 역시 가능한 한 부담스럽지 않게 책정한다.
사업적인 규모를 키우는 것보다 자신이 만든 것을 사람들이 기쁘게 사용하는 모습을 보는 일이 더 좋다는 그의 말에는 공방을 대하는 태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앞으로 공방을 얼마나 오래 운영할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작가는 길어야 3~4년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자신이 가진 경험을 젊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누군가가 이 일을 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분명하다.
“연주얼리 문 닫으면 어디 가서 고쳐요?”
고객들이 건네는 이 말이 오히려 그에게는 이 일을 계속해야 할 이유가 되고 있다.
한 번 리폼을 경험한 고객은 다시 다른 주얼리를 가져온다. 동네 주민들은 가방 속에 고칠 물건을 넣어 다니다 공방 문이 열려 있으면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그렇게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일상의 장면들이 모여 연주얼리의 10년을 만들었다.
▲ 사진 = 연주얼리 |
오래된 것에 다시 시간을 입히는 사람, 연주얼리의 다음 계절
취재를 마치고 공방을 나서는 순간에도 골목의 풍경은 조용했다. 하지만 그 작은 공간 안에서는 누군가의 기억이 다시 이어지고 있었고, 오래된 물건에는 새로운 시간이 더해지고 있었다.
섬유공예에서 시작해 20여 년의 미술교육을 거쳐 주얼리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난 여화연 작가. 그가 걸어온 길은 처음부터 정해진 길이라기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길에 가까웠다. 친구의 부탁으로 시작된 작은 주얼리가 공방이 되었고, 단순한 수선은 리폼이 됐으며, 리폼은 이제 누군가의 추억과 마음을 다시 연결하는 작업이 됐다.
어쩌면 좋은 공예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만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의 가치를 발견하고 다시 살아갈 기회를 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연주얼리의 작업에는 바로 그 시간이 담겨 있다. 버려지지 않고 다시 쓰이는 물건, 잊히지 않고 다시 기억되는 사람, 그리고 그 사이를 이어주는 작가의 손길. 10년의 시간이 만든 연주얼리만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그렇게 천천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연주얼리의 주얼리 제작 및 리폼 작업, 원데이 클래스와 관련한 자세한 정보는 공식 홈페이지와 네이버 블로그, 인스타그램 등 온라인 채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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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얼리
대전 서구 문정로170번길 33
010-3471-296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