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희 작가 빛의 궤도를 좇는 10년의 시선, 화폭에 심은 ‘행복한 뜰’

◇피어남의 본질에 관하여

삶이 가파른 고비를 지나칠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빛이 머무는 곳을 찾는다. 사방이 칠흑 같은 그늘로 둘러싸인 순간에도 기꺼이 고개를 들어 태양의 궤도를 좇는 해바라기는 우리 내면에 잠든 생명력의 가장 정직하고 강인한 은유다. 계절의 변화와 거친 바람 속에서도 빛의 방향을 놓치지 않는 그 꼿꼿함은, 각박한 현실을 버텨내는 인간의 끈질긴 삶과 놀랍도록 맞닿아 있다.


한명희 작가는 지난 10여 년간 이 묵묵하고도 끈질긴 꽃의 여정을 캔버스 위에 기록해 왔다. 대표 연작인 <행복한 뜰의 이야기>는 풍경의 외피를 시각적으로 옮겨오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안에는 상처받은 마음이 스스로 치유를 향해 걸어가는 내면의 궤적이 겹겹이 쌓여 있으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한 묵직하고도 따스한 위로의 메시지가 흐르고 있다. 작가는 해바라기를 통해 식물의 생태를 재현하는 것을 넘어, 인간이 삶 속에서 품어야 할 희망의 각도를 캔버스 위에 구현해 낸다.


◇평면을 거부하는 생동감, 물성과 질감이 전하는 입체적 울림

한명희 작가의 작업 세계를 깊이 들여다볼 때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지점은 화면을 구축하는 독특한 ‘물성(物性)’의 깊이다. 많은 이들이 해바라기를 통해 화사한 색채나 시각적 안정감만을 논할 때, 그는 캔버스 위에 물감을 납작하게 얹는 관습적인 방식을 과감히 탈피한다.


그는 반구상적 부조 형식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화면에 입체적인 볼륨감과 생명력을 부여한다. 특히 해바라기의 핵심인 씨앗 군락과 화면 전체의 결은 손끝의 섬세한 감각과 거친 마티아스가 결합하여 묘한 촉각적 에너지를 뿜어낸다. 멀리서 바라볼 때는 온화하고 따스한 빛의 흐름이 시선을 사로잡지만, 한 걸음 다가서는 순간 오롯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물감의 적층과 미세한 결들이 관람객의 감각을 일깨운다.


“거친 마티아스와 손끝의 결을 통해, 삶의 모진 풍파 속에서도 기꺼이 다시 빛을 향해 고개를 치켜드는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과 온기를 캔버스 위에 고스란히 담아내고 싶었다”


이는 한 작가가 오랜 시간 대상과 교감하며 체화한 에너지를 물리적 형태로 고체화하는 조형적 실험의 산물이다.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하나의 화두를 우직하게 파고들며 이뤄낸 가장 커다란 성취는 바로 이 ‘만져지는 기억의 형태’에 있다. 시각을 넘어 촉각으로 전해지는 물성의 깊이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작품 앞에 더 오래 머물며 작가의 호흡을 공유하게 만든다.


◇유년의 원형에서 길어 올린 ‘모두의 뜰’

한명희 작가가 그려내는 뜰은 화려한 식물이 가득 심긴 인위적인 정원이나 장엄한 자연의 파노라마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누구나 마음 한켠에 고이 접어두고 사는 아스라한 유년의 풍경, 거친 세상살이에 지친 하루 끝에 아무런 조건 없이 기댈 수 있는 가장 안전하고 소박한 정서적 안식처에 가깝다.


도시의 바쁜 호흡과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경쟁 속에서 무뎌진 감각을 일깨우듯, 작가는 캔버스 속 뜰을 통해 현대인들에게 잠시 숨을 고를 자리를 내어준다. 화면 속에서 밤하늘의 은은한 별빛과 환하게 피어난 해바라기는 서로 대비를 이루면서도 기묘한 조화를 이룬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빛의 소중함이 더욱 선명해지듯, 그의 작품은 시련 속에서도 결코 희망을 놓지 않는 인간의 의지를 조용하지만 강단 있게 대변한다.


그는 화폭을 통해 관람객에게 무언의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마음속에는 지금 어떤 빛이 향하고 있나요?” 


이 진중한 화두는 일상에 매몰되어 방향을 잃어버린 현대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복잡한 머릿속을 비운 채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심리적 에너지를 충전하게 만든다.


◇10년의 여정, 하나의 화두를 관통하는 작가의 집념과 시선

하나의 주제를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속해서 탐구한다는 것은 예술가에게 거대한 도전이자 고독한 수행이다. 대중의 즉각적인 반응이나 시시각각 변하는 미술계의 유행에 흔들리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명희 작가는 외부의 소음에 휩쓸리지 않고, 오직 자신만의 내면의 나침반을 따라 꾸준히 해바라기라는 한 길을 걸어왔다.


그의 10년은 자연이 주는 위로의 언어를 자신만의 조형 언어로 완전히 체화하고, 이를 타인에게 온전히 전달하는 법을 깊게 연마해 온 성찰의 시간이었다. 해바라기가 매일 태양의 궤도를 따라 고개를 돌리듯, 작가 역시 쏟아지는 삶의 무게 속에서 예술을 향한 순수한 태도를 단단히 다져왔다. 그 뚝심 있는 태도가 있었기에 그의 작품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깊은 울림과 진정성을 품게 되었다.


◇유행의 속도를 거슬러 나만의 호흡으로 빚어내는 예술

오늘날의 미술계는 급격한 디지털 전환과 트렌드의 유행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좇기 바쁘다. 그러나 한명희 작가는 거친 시대의 소음 속에서도 요동치지 않고, 오직 자신만의 호흡과 진정성 있는 태도로 조용히 길을 걸어왔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해바라기라는 일관된 화두를 붙들고 씨름해 온 그의 붓끝은 이제 무르익을 대로 익었다. 그의 화폭에 담긴 해바라기는 비단 캔버스 위에서만 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무채색의 건조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가슴마다 저마다의 온기로 피어올라, 언제든 다시 빛을 향해 고개를 들 수 있는 용기를 건네고 있다.


“누구나 지친 하루 끝에 기댈 수 있는 자신만의 ‘뜰’ 하나쯤은 필요하다. 바쁘고 각박한 일상에 쫓겨 스스로의 빛을 잊고 사는 이들이 내 그림을 통해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눈부신 내일을 향해 걸어갈 수 있는 작은 용기를 얻어가기를 바란다”


한명희 작가의 ‘행복한 뜰’은 오늘도 그 자리에 오롯이 서서, 지친 발걸음을 멈추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가장 따스한 미소를 건네고 있다. 그리고 그 미소는 차가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확실하고도 다정한 구원의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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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6.09.22 13:13 수정 2026.09.22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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