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늘어도 정류장과 보행로 불편하면 집에서 병원까지 이동 막혀
차기 국가계획 수립 연구 착수…차량 대수 넘어 이용 편의 살펴야
국내 교통약자가 1600만명을 넘어섰다.
특히 65세 이상 고령자가 빠르게 늘면서 이동권은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시니어의 병원 진료와 장보기, 복지관 이용, 사회활동을 좌우하는 생활 문제가 되고 있다.
저상버스와 특별교통수단은 늘었지만 버스정류장과 보행환경에는 여전히 빈틈이 남아 있다.
차량을 확대하는 데서 나아가 시니어가 집을 나서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교통약자 1613만명…1년 새 고령자 53만명 증가
국토교통부의 ‘2024년도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4년 말 국내 교통약자는 1613만명으로 전체 인구 5122만명의 31.5%를 차지했다. 전년보다 약 26만4000명 증가했다.
교통약자는 장애인뿐 아니라 65세 이상 고령자, 임산부, 어린이, 영유아를 동반한 사람 등 일상생활에서 이동에 불편을 느끼는 사람을 말한다.
유형별 증감을 보면 65세 이상 고령자가 1년 사이 53만명 늘었다.
영유아 동반자는 16만6000명, 어린이는 6만2000명 감소했다.
고령화가 전체 교통약자 증가의 주요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들었다고 모두 이동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근력과 균형 능력이 떨어지거나 관절질환, 시력·청력 저하가 생기면 높은 버스 계단과 짧은 횡단보도 신호, 멀리 떨어진 정류장이 일상 이동을 막는 장벽이 될 수 있다.

저상버스 늘었지만 전체 시내버스의 절반에 못 미쳐
2024년 전국에서 운행된 시내 저상버스는 1만5743대로 전년보다 2143대 늘었다.
전국 보급률은 44.4%로 2023년보다 5.5%포인트 상승했다. 운행 노선도 2497개에서 2917개로 420개 증가했다.
저상버스는 출입구 계단을 없애거나 낮추고 차체 바닥을 낮게 만든 버스다.
휠체어 이용자뿐 아니라 다리가 불편한 고령자, 보행기 사용자, 임산부도 비교적 편하게 타고 내릴 수 있다.
다만 전국 시내 저상버스 보급률은 아직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같은 노선에서도 일반버스와 저상버스가 섞여 운행될 수 있어 이용자는 저상버스가 오는 시간까지 기다려야 할 수 있다.
국토교통부 조사에서 서울의 저상버스 평균 배차간격은 21.3분으로 가장 짧았다.
지역과 노선에 따라 배차 여건이 다르므로 시니어가 외출하기 전 해당 지역 버스정보시스템이나 교통정보 안내를 통해 저상버스 운행 여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버스는 바뀌는데 정류장 접근성은 38.5%
버스에 저상 승강설비가 갖춰져 있어도 정류장까지 안전하게 갈 수 없거나 승차 공간이 부족하면 실제 이용은 어렵다.
국토교통부가 9개 도·특별자치도의 교통수단과 여객시설, 보행환경을 조사한 결과 이동편의시설의 전체 기준 적합률은 79.3%였다.
이는 장애인용 승강기와 경사로, 점자블록 등 관련 시설이 법에서 정한 세부 기준에 맞게 설치됐는지를 나타내는 수치다.
교통수단의 기준 적합률은 87.1%, 여객시설은 78.2%, 보행환경은 71.3%로 조사됐다.
그러나 버스정류장의 기준 적합률은 38.5%에 그쳤다.
세부적으로 정류장 안내판의 부착 위치는 75.3%가 기준에 맞았지만 점자·음성안내 기준 적합률은 9.3%였다.
시각장애인이나 글씨를 읽기 어려운 고령자에게는 버스 운행정보를 확인하는 것부터 어려울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수치는 9개 도·특별자치도의 조사 결과다.
전국 모든 정류장을 동일하게 조사한 수치로 확대해 해석해서는 안 된다.
다만 대규모 철도역이나 공항보다 일상에서 자주 이용하는 버스정류장의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은 정책적으로 살펴볼 부분이다.
특별교통수단 보급률 103.1%가 의미하는 것
휠체어 탑승설비 등을 갖춘 특별교통수단은 2024년 전국에서 4896대가 운행됐다.
전년보다 296대 늘었고, 법정 기준 대수 대비 보급률은 103.1%로 집계됐다.
특별교통수단은 흔히 장애인콜택시로 불리지만 일반 택시와는 이용 방법이 다르다.
이용 자격을 등록한 뒤 이동지원센터를 통해 예약하거나 배차를 신청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현행 교통약자법 시행규칙은 인구 10만명 이하 시·군에는 중증보행장애인 100명당 1대, 인구 10만명을 초과하는 시·군에는 150명당 1대를 운행하도록 정하고 있다.
따라서 보급률 103.1%는 전국의 모든 고령자와 교통약자 수를 기준으로 계산한 수치가 아니다.
특별교통수단의 법정 대수 산정 기준이 되는 중증보행장애인 수와 비교한 결과다.
법정 대수를 충족했다는 사실이 모든 이용자의 이동 수요를 충족했다거나 원하는 시간에 바로 배차받을 수 있다는 의미도 아니다.
차량이 있더라도 운전원과 운행시간, 지역별 이용 수요, 장거리 운행 비중에 따라 실제 이용 편의는 달라질 수 있다.
고령자라고 자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냐
고령자도 교통약자에 해당하지만 65세가 넘었다는 이유만으로 특별교통수단 이용 자격이 자동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특별교통수단은 중증보행장애인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그 밖의 이용 대상은 법령과 지방자치단체 조례에 따라 정해진다.
지역에 따라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운 고령자나 일시적으로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대상에 포함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연령과 진단서, 보행 제한 기준은 다를 수 있다.
특별교통수단 이용을 원하는 시니어와 가족은 거주지 이동지원센터나 지방자치단체 교통 담당 부서에 다음 사항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고령자에게 적용되는 이용 자격과 보행 제한 기준
▲진단서나 장애인증명서 등 필요한 서류
▲사전 등록과 심사에 걸리는 기간
▲당일 호출과 사전 예약 가능 여부
▲평일·주말·야간 운행시간
▲이용요금과 보호자 동승 조건
▲거주 지역 밖으로 이동할 수 있는 범위
▲다른 지역에서 돌아올 때의 예약 방법
특별교통수단 대상이 아닌 경우에는 해당 지역에 바우처택시나 임차택시, 고령자 교통지원 서비스가 있는지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일반 택시를 활용한 바우처택시는 지역에 따라 대상과 이용횟수, 요금 지원 방식이 다르다.
병원 갈 때는 ‘가는 편’과 ‘오는 편’ 모두 확인해야
시니어에게 특별교통수단은 병원과 재활치료기관을 오갈 때 특히 중요하다.
그러나 진료가 언제 끝날지 정확히 알기 어려워 돌아오는 차량을 예약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다른 시·군이나 시·도로 이동하는 경우에는 운행구역도 살펴야 한다.
광역이동지원센터가 운영되더라도 차량 한 대가 목적지까지 이동하는지, 지역 경계에서 다른 차량으로 갈아타야 하는지, 돌아오는 차량을 별도로 예약해야 하는지는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외출 전에는 다음과 같이 준비하는 것이 안전하다.
▲진료 예약시간보다 여유 있게 차량을 신청한다.
▲귀가 차량을 별도로 예약해야 하는지 확인한다.
▲병원 진료가 늦어졌을 때 예약시간을 변경할 수 있는지 알아본다.
▲보행기나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차량인지 확인한다.
▲보호자 동승 여부와 대기 장소를 미리 알린다.
▲배차가 어려울 때 이용할 다른 교통수단을 함께 마련한다.
시니어 이동권은 집 앞에서 시작된다
교통약자의 이동은 버스나 특별교통수단을 타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집을 나와 보도를 지나고 횡단보도를 건너 정류장이나 승차 장소까지 가는 과정도 이동권에 포함된다.
보행환경의 이동편의시설 기준 적합률은 9개 도·특별자치도 평균 71.3%였다.
지역별로는 제주가 89.5%로 가장 높았고 경남은 62.9%로 가장 낮았다.
보도의 턱과 파손, 차량 진출입로, 점자블록, 음향신호기, 볼라드 등이 법정 기준에 맞는지를 조사한 결과다.
평균값이 높아져도 시니어가 실제로 다니는 특정 골목이나 정류장의 위험까지 모두 해소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특히 보행속도가 느린 고령자에게는 짧은 횡단보도 신호와 정류장 의자 부족, 야간 조명, 불법주차가 이동을 가로막을 수 있다.
교통복지 정책이 차량 보급과 함께 집에서 정류장까지 이어지는 보행환경을 살펴야 하는 이유다.
차기 국가계획 수립 착수…세부 내용은 아직 확정 전
국가의 제4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은 2022년부터 2026년까지 적용된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제5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했다.
조달청 공고에 따르면 연구 사업 규모는 3억원이며, 계약 후 360일 안에 수행하는 조건이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은 차기 계획 수립을 위한 현장조사도 추진하고 있다.
현재는 연구가 진행되는 단계다.
차기 계획의 구체적인 목표와 시행 일정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연구 착수를 곧바로 새로운 제도가 시행되는 것으로 표현해서는 안 된다.
차기 계획에서는 차량 대수와 시설 설치율뿐 아니라 특별교통수단 대기시간, 야간·주말 운행, 예약 실패, 지역 간 이동, 전화 예약 접근성 등 이용자가 체감할 수 있는 지표가 어떻게 반영되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교통약자 1600만명 시대에 이동권은 일부 장애인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병원과 시장, 복지관을 오가며 일상을 유지해야 하는 시니어에게도 이동은 건강과 자립을 지키는 기본 조건이다.
저상버스와 특별교통수단을 몇 대 늘렸는가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가이다.
시니어가 집을 나서 목적지에 도착하고 다시 안전하게 돌아올 때까지 이동이 끊기지 않아야 교통복지가 실제 생활에서 작동한다고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