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을 가르치는 곳에서, 예술을 경험하는 곳으로..강남구 역삼동 ‘리유다르 미술교습소’ 전지나 원장

15년의 교육 경험과 작가의 시선으로 만든 작은 ‘예술의 장’

▲ 강남구 역삼동 ‘리유다르 미술교습소’ 전지나 원장

 

미술학원이라고 하면 대개 비슷한 장면을 떠올린다. 정해진 시간에 아이들이 모이고, 선생님이 오늘 그릴 주제를 설명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작품을 완성한다. 하지만 전지나 원장이 생각하는 미술교육은 조금 다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아이가 무엇을 그렸는지가 아니라, 그 그림에 도달하기까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선택했는가에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공간에 ‘미술교습소’라는 기능적인 이름만 붙이지 않았다. ‘리유다르(lieu d’art)’. 프랑스어로 ‘예술의 장’, ‘예술터’를 뜻한다. 간판에는 ‘리유다르 드 지나전’이라는 이름을 새겼다. 전지나로부터 만들어진 예술의 장소라는 의미다.

 

이름을 정하는 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냥 동네 미술학원으로 끝나는 공간은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아이들이든 성인이든 이곳에 와서 미술을 배우는 것을 넘어 예술이 주는 충만감이나 즐거움을 제대로 느꼈으면 했어요. 각자가 자기만의 방법으로 예술을 펼칠 수 있는 장소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이름을 지었습니다.”

 

강남구 역삼동에서 만난 전지나 원장은 차분했다. 말투는 나지막했지만 자신이 어떤 교육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망설임이 없었다. 인터뷰를 위해 준비해온 학생들의 수업 사진을 한 장씩 꺼내 보여줄 때는 이야기에 온기가 더해졌다.

 

사진 속 아이들의 작업을 설명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선생님의 애정과 작가의 시선이 동시에 느껴졌다. 미술을 가르치는 사람인 동시에 자신의 작품을 계속 만들어가는 작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 사진 = 전지나 원장 작업 모습

 

‘조금만 더’라고 미뤄온 15년

 

전 원장은 어린 시절부터 미술을 했다. 진로 역시 일찍 미술로 정했고 대학에서도 미술을 전공했다. 졸업 후에는 자연스럽게 미술교육 현장으로 들어갔다. 대형 프랜차이즈 미술학원에서 강사로 일했고 개인레슨도 이어갔다.

 

시간이 쌓일수록 자신의 공간을 만들어보라는 제안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쉽게 결정하지 않았다.

 

“저는 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지려면 적어도 10년 이상의 물리적인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여러 제안도 받고 좋은 기회도 있었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조금만 더 경험해보고, 조금만 더 준비한 다음에 제 것을 만들자고 했죠.”

 

그 ‘조금만 더’가 15년이 됐다.

 

그리고 약 2년 전부터 생각이 달라졌다.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자신만의 교육철학을 이제는 하나의 공간에 온전히 담아도 되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바로 공간을 열기보다 교재와 수업 방향을 정리하고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다듬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리유다르다.

 

"저 역시 교육 환경이 잘 갖춰진 곳에서 어린 시절부터 미술을 배웠지만, 지금처럼 미술교육의 폭이 넓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정해진 주제나 순서 안에서 배우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기술에 집중된 교육에 익숙하다 보니, 그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던 기억이 있어요.

 

요즘은 창의력을 끌어낼 수 있는 프로그램도 정말 다양해졌고, 재료나 표현 방식 역시 훨씬 풍부해졌거든요. 이렇게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요즘 학생들이 부럽기도 해요.

 

하지만 상상력과 창의력이 아무리 풍부하더라도 기본기가 충분히 갖춰져 있지 않으면, 좋은 아이디어와 생각을 표현하는 데 한계가 오기 때문에 떠오른 것을 보다 다채롭고 힘 있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조형 원리와 표현 기법을 익히는 과정도 꼭 필요합니다.

 

그래서 창의적인 사고를 자유롭게 펼치는 것과 동시에, 그 생각을 스스로 표현해낼 수 있는 탄탄한 미술의 기본 조형원리를 함께 기를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 사진 = 전지나 원장 작품 활동

 

선생님이면서 작가라는 것

 

리유다르를 이야기하면서 전지나 원장의 작가 활동을 빼놓기는 어렵다.

 

강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동안에도 그는 자신의 작품을 놓지 않았다. 수업에 온 힘을 쏟는 성격이다 보니 학생들의 결과물이 하나둘 쌓이고 성취가 생길수록 오히려 자신의 작업에 대한 갈증이 커졌다.

 

“저도 미술을 평생 해왔으니까 ‘이제는 내 작업을 해야 하는데’ 하는 마음이 계속 있었어요. 그래서 강사 생활을 하면서 작가 활동도 같이 시작했죠. 시간은 더 없어졌는데 이상하게 두 가지를 같이 하니까 서로 시너지가 생기더라고요.”

 

작가로서 재료와 표현을 고민하는 시간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방식에도 영향을 줬다. 아이들에게 더 많은 재료와 표현방법을 보여줄 수 있게 됐고, 반대로 아이들의 자유로운 생각과 표현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작업에도 새로운 자극을 받았다.

 

그에게 교육과 창작은 서로 다른 일이 아니다.

 

오히려 같은 뿌리에서 나온 두 개의 가지에 가깝다.

   

▲ 사진 = 리유다르 미술교습소

 

아이를 ‘작은 예술감독’으로 만드는 수업

 

리유다르의 수업은 주제 하나를 던지고 바로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먼저 생각한다. 그리고 적는다. 단어나 문장을 자유롭게 펼쳐놓는다. 그 흩어진 생각을 다시 조합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스케치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막연했던 생각이 조금씩 구체적인 형태를 갖춰간다.

 

전 원장은 이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이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가 하나의 프로젝트를 맡은 것처럼 해봤으면 해요. 선생님이 정답을 알려주고 따라가는 게 아니라 자기가 생각하고, 계획하고, 선택하고, 마지막에는 결과물까지 만들어보는 거죠.”

 

요즘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생각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검색하면 웬만한 정보는 바로 찾을 수 있는 시대다. 그래서 아이들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기 전에 먼저 검색하는 데 익숙해졌다. 전 원장은 수업에서 그 순서를 조금 뒤집는다.

 

먼저 생각하게 한다. 충분히 고민하고 대화한 다음 필요한 정보를 찾아보도록 한다.

 

“정보 자체는 이제 너무 쉽게 얻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중요한 건 그 정보를 어떻게 연결하고 해석하고 자기 것으로 다시 만들어내느냐라고 생각해요.”

 

창의력은 특별한 재능이기도 하지만 습관에 가깝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매번 자신의 생각을 꺼내고, 그것을 구체화하고, 직접 구현해보고, 하나의 결과물로 완성하는 경험. 그런 경험이 반복되면 아이에게는 자연스럽게 ‘창작하는 습관’이 생긴다.

 

그리고 그 습관은 미술을 넘어선다.

 

▲ 사진 = 리유다르 미술교습소

 

정답 대신 선택을 가르치는 이유

 

리유다르의 책상 위에는 여러 종류의 재료가 펼쳐진다. 학생은 자신의 작품에 어떤 재료가 적합할지 직접 선택한다.

 

전 원장은 재료를 대신 골라주지 않는다. 다만 선택에 필요한 정보를 알려준다.

 

“이 재료를 사용하면 이런 효과가 날 수 있어. 그런데 선택은 네가 하는 거야.”

 

이 작은 차이가 중요하다.

 

아이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과를 경험하게 만드는 것. 자신의 선택 때문에 예상했던 결과가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는 다른 방법을 찾는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것 이상의 것을 배운다.

 

“처음 생각했던 대로 안 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그때 다른 방법을 찾아보고 수정해서 결국 자기 힘으로 완성해보는 경험이 굉장히 중요해요.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문제를 해결하는 힘도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리유다르의 수업에는 정답이 하나만 존재하지 않는다.  

 

▲ ▲ 사진 = 리유다르 미술교습소

 

한 명을 제대로 바라보는 교육

 

전 원장이 소수정예 수업을 고집하는 데에는 오랜 강사 경험이 있다.

 

여러 명을 동시에 가르치다 보면 학생마다 필요한 것이 다르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보인다. 어떤 학생에게는 이미 익숙한 내용이 다른 학생에게는 처음일 수 있다.

 

“아무리 한 명 한 명 빠짐없이 봐주려고 해도 여러 명을 동시에 수업하다 보면 어떤 친구는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배우고, 어떤 친구는 정작 필요한 걸 충분히 못 가져가는 경우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자신의 공간을 만들면서 한 가지 원칙을 세웠다.

 

수업 정원을 비어있다고 채우기 보다 각자의 작업을 세심하게 들여다볼 수 있을 만큼의 인원으로 수업하는 것. 학생마다 가진 ‘그릇의 형태’가 다르다는 것이 그의 표현이다. 같은 지식이라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담아주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리유다르는 그 차이를 발견하는 데 시간을 쓴다.

 

▲ 사진 = 리유다르 미술교습소 야외 수업

 

10년의 신뢰가 남긴 것

 

15년 가까이 학생들을 만나온 만큼 기억에 남는 제자도 많다.

 

그중에는 다섯 살부터 시작해 10년 넘게 수업을 함께한 학생도 있다. 학업 때문에 결국 수업을 그만두게 됐을 때 학생의 어머니가 전 원장에게 뜻밖의 말을 건넸다.

 

오랜 시간 동안 개인적인 일이 있었을 텐데도 어떻게 그렇게 한결같이 수업을 해줄 수 있었느냐며 감사하다는 말이었다. 심지어 존경한다는 표현까지 전했다.

 

전 원장은 오히려 자신이 그 어머니에게 그런 신뢰를 받은 것이 더 감사했다고 말한다.

 

“아이에게는 다른 학원을 경험해볼 수도 있고 잠시 쉬어갈 수도 있는 시간이었을 텐데 10년 넘게 저를 믿고 맡겨주셨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정말 큰 의미였어요.”

 

그 순간은 지금도 교육을 계속하게 하는 이정표로 남아 있다.

 

또 한 명의 제자는 어린 시절 1~2년 정도 가르쳤던 학생이다. 이후 해외로 이주해 학교를 다니게 됐지만 인연은 끊어지지 않았다. 방학 때면 다시 찾아왔고, 최근 한국에 들어왔을 때도 리유다르를 찾아왔다.

 

그 학생이 들려준 이야기가 전 원장의 마음에 오래 남았다.

 

해외 학교에서 ‘인생에서 나에게 영향을 준 어른’을 주제로 글을 쓰는 과제가 있었는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는 것이다.

 

“저한테는 그냥 지나간 수업 중 하나였을 수도 있는데 그 아이에게는 굉장히 큰 기억으로 남아 있었던 거잖아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내가 그때 혹시 잘못한 건 없었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선생님이 무심코 건넨 한마디가 아이에게는 오래 남는 문장이 될 수도 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부터 전 원장은 미술교육을 바라보는 책임감이 조금 더 깊어졌다고 말한다.

 

▲ 사진 = 리유다르 미술교습소


결국 아이에게 남겨주고 싶은 것은 ‘자기 힘’

 

전 원장이 바라는 것은 아이들이 자신의 수업을 오래 기억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잊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배운 기법이나 재료를 어느 순간 혼자서 활용하고, 자신에게 묻지 않고도 ‘이 재료가 나에게 맞겠다’고 판단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이 더 좋은 교육의 결과라고 믿는다.

 

학교에서 자신이 배운 것을 활용해 작품을 만들었다며 자랑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 전 원장이 가장 흐뭇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교사의 도움 없이 자기만의 표현을 찾아가는 순간.

 

그때 비로소 교육이 아이의 것이 된다고 생각한다.

 

▲ 사진 = 리유다르 미술교습소

 

교습소에서 예술의 장으로

 

앞으로도 리유다르는 교육과 작가 활동이 함께 존재하는 공간으로 남을 예정이다.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전 원장이 자신의 작품을 만드는 작업실이 된다. 아이들이 배우는 공간과 작가가 창작하는 공간이 하나의 장소에 공존하는 셈이다.

그는 이 구조를 오래 유지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조금 더 먼 미래에는 제자들과 함께 전시를 열고 싶다는 꿈도 품고 있다.

 

“아이들이 지금은 어리지만 나중에 커서 다시 저를 찾아왔을 때 ‘선생님이랑 같이 전시하고 싶어요’라고 한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제가 오래 가르쳤던 제자의 작품을 제 전시장에 같이 걸어놓는 것도 굉장히 보람 있고 멋진 일이 될 것 같고요.”

 

그의 꿈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전 원장은 미술뿐 아니라 뮤지컬과 무용 등 다양한 예술 장르에서 영감을 받는다. 특히 사람의 몸짓과 삶의 움직임에 관심을 갖고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만큼 무용 공연을 보며 새로운 영감을 얻기도 한다.

 

언젠가는 자신의 작품이 전시된 공간에서 무용수가 작품에 맞춰 즉흥적인 움직임을 선보이고, 전시와 공연이 하나의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형태를 만들고 싶다.

 

미술과 무용, 음악이 함께하는 종합적인 예술의 장.

 

그것이 그가 처음부터 ‘미술교습소’가 아닌 ‘예술터’라는 이름을 선택한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 사진 = 전지나 원장이 전시 작품을 소개하는 모습(위)과 외부 강의 현장(아래)

 

미술보다 더 큰 것을 가르치고 싶어서

 

전지나 원장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가 미술을 ‘잘 그리는 기술’로만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에게 미술은 생각하는 일이고, 선택하는 일이며, 실패했을 때 다시 다른 방법을 찾는 일이다. 그리고 끝내 자신의 힘으로 하나의 결과물을 완성하는 일이다.

 

어쩌면 그것은 미술교육의 모습이라기보다 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 더 가깝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처음 만났을 때의 단아한 분위기보다 그의 안에 있는 예술가의 면모가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학생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작업 하나하나를 설명하던 순간, 자신이 만들고 싶은 전시를 이야기하던 순간, 그리고 오래된 제자들의 이야기를 꺼내며 잠시 말을 고르던 순간까지.

 

그가 만들고 싶은 것은 결국 미술을 배우는 교실 하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믿어보고, 그것을 세상에 꺼내놓고, 때로는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다시 방법을 찾아 끝까지 완성해보는 곳.

 

그리고 그 경험이 훗날 아이들이 어떤 일을 하든 자신의 힘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바탕이 되는 곳.

 

리유다르가 꿈꾸는 ‘예술의 장’은 어쩌면 그런 곳인지도 모른다.

 

전지나 원장은 아이들이 이곳에서 ‘몰입의 힘’을 배워가길 바란다고 했다. 자신이 생각한 것이 자신의 선택과 노력으로 하나의 결과물이 되는 경험, 그 경험을 통해 ‘나는 내 생각을 스스로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감각을 얻는 것. 그것이 그가 오랜 시간 미술교육 현장에서 발견한 가장 중요한 가치다.

작성 2026.09.20 16:40 수정 2026.09.20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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