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물 세전 만기 수익률 161.3%…연 수익률 아닌 장기 누적 수익률
퇴직연금 국채 첫 청약에 1435억원…시니어는 수익보다 ‘돈 쓸 시점’ 먼저
퇴직연금 계좌에서 개인투자용 국채를 직접 살 수 있는 제도가 9월부터 시행됐다.
국가가 발행하는 채권을 퇴직연금에 담을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이 커졌지만, 투자할 수 있는 종목이 10년물과 20년물이라는 점은 이미 은퇴한 시니어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다.
65세에 20년물을 사면 만기는 85세, 70세에 사면 90세에 돌아온다.
은퇴자에게는 높은 만기 수익률보다 그전에 생활비나 의료·간병비로 자금을 써야 할 가능성이 없는지부터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

퇴직연금 계좌에서는 10년물·20년물만 매입
재정경제부가 발표한 9월 개인투자용 국채 발행 예정액은 총 2300억원이다.
이 가운데 퇴직연금 계좌로 살 수 있는 종목은 10년물과 20년물이다.
투자할 수 있는 계좌는 가입자가 적립금을 직접 운용하는 확정기여형 퇴직연금(DC)과 개인형퇴직연금(IRP)이다.
회사가 적립금을 운용하는 확정급여형 퇴직연금(DB)은 개인 명의로 국채를 직접 매입하는 구조가 아니어서 대상에서 제외됐다.
9월 청약은 신한은행·하나은행·NH농협은행과 미래에셋증권·삼성증권·한국투자증권·KB증권·NH투자증권 등 8개 금융회사를 통해 진행됐다.
해당 금융회사에 DC나 IRP 계좌를 보유한 가입자가 대상이다.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퇴직연금 계좌를 통한 첫 청약액은 1435억원으로 집계됐다.
일반 투자 창구를 포함한 전체 청약액은 정부가 공고한 9월 발행 예정액 2300억원을 넘어섰다.
다만 청약액은 투자자가 신청한 금액이다.
신청이 몰린 종목은 실제 배정액이 청약액보다 적을 수 있으므로 청약 규모와 최종 배정 결과는 구분해 봐야 한다.
시니어에게 10년·20년은 결코 짧지 않다
10년과 20년은 자산 형성기인 젊은 가입자와 이미 연금을 사용하기 시작한 은퇴자에게 의미가 다르다.
현재 55세라면 10년물은 65세, 20년물은 75세에 만기가 된다.
반면 65세에 투자하면 각각 75세와 85세, 70세라면 80세와 90세에 만기를 맞는다.
연령만으로 투자 적합성을 단정할 수는 없다.
건강 상태와 소득, 보유자산, 배우자의 생활비, 연금 수령계획에 따라 판단은 달라진다.
그러나 연령이 높을수록 의료비와 돌봄비, 주거 이전비 등 예상하지 못한 지출이 생길 가능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특히 20년물은 투자자 본인이 만기 자금을 사용할 것인지, 배우자의 생활자금이나 자녀에게 남길 자산으로 볼 것인지까지 생각해야 하는 기간이다.
단순히 금리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생활비에 사용할 퇴직연금을 장기간 묶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만기수익률 161.3%는 ‘연 수익률’이 아니다
9월 발행분의 표면금리는 10년물이 연 4.415%, 20년물이 연 4.570%다.
두 종목에는 각각 연 0.35%포인트의 가산금리가 적용된다. 만기까지 보유할 때 복리 계산에 적용되는 금리는 10년물 연 4.765%, 20년물 연 4.920%다.
정부가 제시한 세전 만기 누적 수익률은 10년물 약 59.3%, 20년물 약 161.3%다.
20년물에 1000만원을 투자해 만기까지 보유하면 세전 원리금이 약 2613만원이 되는 구조다.
그러나 161.3%는 20년 동안 쌓인 전체 수익률이다. 이를 1년마다 8.1%의 수익을 얻는 상품으로 해석하면 실제 금리와 차이가 생긴다.
복리 수익률을 단순히 보유 연수로 나눈 수치는 연환산 수익률이 아니다.
표면금리와 가산금리는 발행월마다 달라질 수 있다.
향후 청약에 참여하려면 과거 발행분의 수익률이 아니라 자신이 청약하는 달의 금리를 확인해야 한다.
국가가 지급하는 국채라도 유동성은 별개
개인투자용 국채는 국가가 원금과 이자를 지급하는 채권이다.
신용위험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장점은 있지만, 필요할 때 언제든 현금으로 바꿀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개인투자용 국채는 일반 채권처럼 시장에서 다른 투자자에게 사고파는 상품이 아니다.
만기까지 보유하거나 정부가 정한 절차에 따라 중도환매해야 한다.
중도환매는 원칙적으로 매입 후 1년이 지나야 신청할 수 있다.
법에서 정한 예외 사유가 있으면 1년 이내에도 가능하지만, 일반적인 자금 필요만으로 언제든 환매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
중도환매하면 매입 당시 표면금리에 따른 이자는 받을 수 있지만 가산금리와 복리 혜택은 사라진다.
월별 중도환매 한도도 적용된다.
신청이 몰리면 원하는 금액 전부가 환매되지 않을 수 있다.
정부는 중도환매 신청이 한도를 초과하면 일정 기준금액을 우선 배정하고 나머지를 신청액에 비례해 배정하는 방식을 마련했다.
따라서 ‘급하면 중간에 찾으면 된다’는 생각만으로 10년물이나 20년물을 선택하기에는 제약이 있다.
은퇴자도 IRP 계좌 상태 확인해야
퇴직 후 퇴직금을 IRP에 남겨 운용하고 있는 은퇴자도 참여 금융회사에 계좌를 보유하고 있고 해당 계좌에서 청약할 수 있다면 투자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만 모든 IRP 가입자가 같은 조건으로 매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연금을 받기 시작했거나 정기적으로 일정 금액을 인출하고 있다면 국채 매입이 연금 지급계획에 영향을 주지 않는지 확인해야 한다.
국채 매입으로 계좌의 현금성 자산이 부족해지면 예정된 연금 지급을 위해 다른 자산을 처분하거나 국채 중도환매를 검토해야 할 수도 있다.
청약 전 금융회사에 신규 매입 가능 여부와 연금 지급계획 변경 필요성을 확인해야 하는 이유다.
국채를 산다고 세액공제가 새로 생기지는 않아
퇴직연금 계좌에서 개인투자용 국채를 매입하면 기존 퇴직연금 세제가 적용된다.
개인이 연금저축과 IRP 등에 새로 납입한 금액은 소득과 관련 요건에 따라 합산 연 900만원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운용 과정에서 발생한 수익에 대한 과세는 연금을 받는 시점까지 미뤄진다.
그러나 퇴직금을 IRP로 옮기거나 계좌에 이미 들어 있던 적립금으로 국채를 매입하는 행위 자체에 새로운 세액공제가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세액공제는 본인이 추가로 납입한 금액과 소득 요건 등을 충족했을 때 받을 수 있다.
연금을 받을 때의 세금도 자금의 출처와 수령 방법에 따라 다르다.
퇴직금에서 비롯된 자금인지, 세액공제를 받은 개인 납입금인지, 연금으로 받는지 일시금으로 찾는지에 따라 과세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정부는 퇴직연금 계좌에서 개인투자용 국채를 매입할 때 기존 퇴직연금의 세제 혜택이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개인별 세금은 자금의 출처와 연금 수령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금융회사나 세무 전문가에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은퇴자가 청약 전에 따져볼 사항
▲투자 시점의 나이에 10년 또는 20년을 더해 실제 만기 연령을 확인한다.
▲만기 전에 생활비와 의료·간병비로 사용할 가능성이 있는 자금은 제외한다.
▲정기적인 연금 지급에 필요한 현금성 자산을 별도로 확보한다.
▲만기 누적 수익률과 1년간 적용되는 금리를 혼동하지 않는다.
▲중도환매하면 가산금리와 복리 혜택이 없어지고 환매 한도가 적용된다는 점을 확인한다.
▲배우자의 생활비와 주거 이전, 상속계획 등 장기적인 자금 용도를 함께 살펴본다.
▲퇴직연금 자산이 한 종목이나 하나의 만기에 집중되지 않았는지 점검한다.
퇴직연금형 개인투자용 국채는 장기간 사용하지 않을 노후자금을 안정적으로 운용하려는 사람에게 새로운 선택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은퇴했거나 연금을 생활비로 사용하고 있는 시니어에게 10년·20년은 결코 짧지 않다.
국채의 신용도와 노후자금의 유동성은 서로 다른 문제다. 은퇴자에게 중요한 것은 만기 때 받을 금액만이 아니다.
앞으로 돈이 필요한 시점까지 기다릴 수 있는지, 그전에 의료비나 돌봄비가 필요해도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결국 시니어에게 적합한 투자는 가장 높은 만기 수익률을 제시하는 상품이 아니라 필요한 때 사용할 돈을 남겨두면서 감당할 수 있는 기간에 맞춘 상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