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경은 교수의 요리에세이 『오늘도 핑크 한스픈』 15화 예쁘게 먹이고 싶은 마음

맛있는 한 끼에 색과 그릇, 작은 장식을 더하며 심경은만의 식탁 감각이 자리 잡다

가족이 조금 더 기분 좋게 먹기를 바라는 마음이 플레이팅이라는 또 하나의 사랑이 되다

화려함보다 먹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며 평범한 집밥에 아름다움을 한스푼 더하다

 

 

 

15화. 예쁘게 먹이고 싶은 마음

가족을 위해 밥을 차리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맛만으로는 조금 아쉬운 날이 있었다.

간도 잘 맞고,

반찬도 충분하고,

따뜻한 국까지 준비했는데도 식탁을 바라보면 뭔가 하나가 부족해 보였다.

 

그럴 때 나는 접시를 바꾸었다.

흰 접시 대신 작은 꽃무늬 접시를 꺼내고,

나물을 한쪽으로 조금 가지런히 담고,

계란말이를 같은 크기로 잘라 줄을 맞춰 놓았다.

 

마지막에는 초록색 잎 하나를 더했다.

그렇게 몇 가지를 바꾸고 나면 같은 음식인데도 식탁이 전혀 다르게 보였다.

나는 그 순간이 좋았다.

 

‘그래, 이거야.’

아마 내 안에 오래 있던 마음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때였을 것이다.

맛있게 먹이고 싶은 마음에, 예쁘게 먹이고 싶은 마음이 하나 더해졌다.

 

어릴 때부터 나는 예쁜 것을 좋아했다.

핑크색 리본이 좋았고,

꽃무늬 그릇이 좋았고,

음식의 색이 가지런히 어우러진 모습을 좋아했다.

 

하지만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한동안은 그런 취향보다 생활이 먼저였다.

빨리 차려야 했고,

잘 먹여야 했고,

냉장고 속 재료를 알뜰하게 써야 했다.

 

매 끼니를 작품처럼 차릴 수는 없었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마음의 여유가 아주 조금 생기면 나는 다시 예쁜 것을 찾았다.

분홍빛 그릇 하나.

작은 꽃병 하나.

색이 예쁜 냅킨 한 장.

 

내 취향은 없어졌던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아이에게 음식을 차려줄 때 그 마음은 더 커졌다.

 

어른에게는 익숙한 음식도 아이에게는 재미없어 보일 수 있었다.

채소를 잘 먹지 않는 날이면 색을 조금 다르게 써봤다.

 

노란 계란 옆에 초록색 채소를 놓고,

빨간 토마토를 작게 잘라 곁들였다.

김밥을 썰어놓을 때도 단면이 잘 보이도록 돌려놓았다.

 

과일을 그냥 한데 담기보다 색을 섞어보기도 했다.

“우와, 예쁘다.”

아이가 먼저 반응하면 괜히 성공한 것 같았다.

 

한입이라도 더 먹어주면 더 좋았다.

그때 알았다.

보기 좋은 음식이 꼭 어른들의 멋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예쁜 것은 때때로 사람의 마음을 먼저 열어준다.

아이에게 채소를 먹이고 싶은 날이었다.

그냥 접시에 놓으면 손도 대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당근을 조금 작게 잘랐고,

오이는 얇게 썰었고,

계란과 함께 색을 맞춰 접시에 놓았다.

 

그리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오늘 접시에 꽃이 폈네.”

아이는 접시를 들여다봤다.

 

“이게 꽃이야?”

“응. 이건 노란 꽃, 이건 초록 잎.”

사실 대단한 장식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는 조금 관심을 보였다.

그날 채소를 많이 먹지는 않았다.

그래도 한입은 먹었다.

나는 그것으로 만족했다.

 

요리는 때로 한입을 위한 기다림이기도 하니까.

그 경험 이후 나는 더 자주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기분 좋게 먹을 수 있을까?’

 

맛을 바꾸는 것만이 답은 아니었다.

음식의 크기를 바꾸기도 하고,

그릇을 바꾸기도 하고,

담는 위치를 달리하기도 했다.

 

반찬이 적은 날에는 작은 접시를 사용했다.

양이 많아 보이고 식탁도 풍성해 보였다.

국이 소박한 날에는 마음에 드는 그릇을 꺼냈다.

 

평범한 한 끼가 조금 특별해졌다.

나는 점점 알게 되었다.

 

플레이팅은 음식을 꾸미는 일이 아니라 음식을 대하는 마음을 보여주는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을.

가족에게 차려주는 밥은 대부분 특별한 날의 음식이 아니었다.

 

아침.

저녁.

주말 점심.

늘 반복되는 식사였다.

그래서 오히려 작은 변화가 재미있었다.

 

어제와 같은 김치라도 다른 접시에 담고,

같은 과일도 모양을 조금 바꿔 썰었다.

흰 밥 옆에 검은깨를 조금 뿌리고,

국 옆에는 작은 종지를 하나 놓았다.

 

그런 일을 한다고 맛이 갑자기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식탁의 기분은 달라졌다.

그리고 나는 그 차이를 꽤 중요하게 생각했다.

 

사람은 눈으로 먼저 음식을 만난다.

접시가 놓이는 순간

 

‘맛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반대로 손이 잘 가지 않기도 한다.

 

예전에는 그것을 막연하게 느꼈다면 생활 속에서 계속 음식을 차리면서 더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음식의 첫인상도 중요했다.

 

하지만 화려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오히려 생활요리에서는 작은 정돈이 더 중요했다.

 

접시 가장자리를 깨끗이 닦아주는 것.

반찬을 산처럼 쌓아놓지 않는 것.

 

색이 겹치지 않도록 조금 나누어 담는 것.

그 정도만으로도 음식은 훨씬 좋아 보였다.

 

나는 가족 식탁에서 플레이팅을 연습하고 있었다.

당시는 그것이 연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예쁘게 담고 싶어서 했다.

그런데 매일 반복하다 보니 눈이 조금씩 달라졌다.

 

처음에는 예쁜 그릇에 관심이 많았다.

나중에는 음식 자체의 색을 보기 시작했다.

노란색만 있는 접시에는 초록색이 필요해 보였다.

 

빨간 음식에는 흰 그릇이 더 잘 어울렸다.

갈색 음식이 많으면 초록색 잎 하나가 분위기를 살려주었다.

그렇게 나는 색을 보는 법을 생활 속에서 익혔다.

 

예전의 나는 예쁜 것을 좋아하면 자꾸 더하고 싶었다.

꽃 하나.

리본 하나.

장식 하나.

색 하나.

 

하지만 가족 식탁을 오래 차리다 보니 ‘덜어내는 것’도 배웠다.

아이가 편하게 먹으려면 장식이 너무 많아서는 안 됐다.

 

식탁이 예쁘더라도 실제로 먹기 불편하면 의미가 없었다.

접시에 꽃을 너무 많이 올리면 오히려 음식이 보이지 않았다.

 

예쁜 것과 편한 것 사이의 균형이 필요했다.

그것도 내 스타일이 만들어지는 과정이었다.

나는 이제 예쁜 식탁을 차릴 때 먼저 묻는다.

 

‘이건 먹기 편한가?’

그리고 그다음에 생각한다.

‘조금 더 예쁘게 할 수 있을까?’

 

순서가 중요했다.

음식은 결국 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기만 좋은 접시보다 먹는 사람에게 편안한 접시가 좋았다.

 

하지만 편안함 안에서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었다.

작은 여백.

색 하나.

그릇 하나.

그것이면 충분할 때가 많았다.

 

어떤 날은 가족에게 평범한 계란말이를 만들어주었다.

노란색 계란 안에 초록색 대파와 주황색 당근이 조금 들어 있었다.

 

그냥 썰어 접시에 놓아도 되는 음식이었다.

나는 조각의 두께를 비슷하게 맞추고 살짝 겹쳐 놓았다.

 

한쪽에는 작은 잎채소 몇 장을 두었다.

그 모습을 본 아이가 말했다.

“오늘은 왜 이렇게 예뻐?”

 

나는 웃었다.

“그냥.”

사실 이유는 있었다.

평범한 하루에도 예쁜 순간 하나쯤 있었으면 했기 때문이다.

 

나는 가족에게 음식을 해주면서 ‘먹이는 마음’이 여러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배고프지 않게 해주는 마음.

건강하게 먹이고 싶은 마음.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있었다.

기분 좋게 먹이고 싶은 마음.

그것이 내게는 참 중요했다.

 

먹는 시간이 하루 중 잠깐이라도 즐거웠으면 했다.

아무리 바쁜 날이어도 따뜻한 밥 앞에서는 마음을 조금 내려놓았으면 했다.

 

그런 마음을 나는 색과 그릇과 작은 장식에 담았다.

꽃도 자주 식탁에 올랐다.

 

큰 꽃다발이 아니었다.

시장이나 길에서 본 작은 꽃 몇 송이.

때로는 화병 대신 작은 컵에 꽂았다.

꽃이 하나 놓이면 식탁의 공기가 달라졌다.

 

같은 밥인데도 조금 더 정성스럽게 차린 것 같았다.

나는 꽃을 보며 먹는 시간이 좋았다.

 

그래서 생각했다.

‘음식에는 맛만 있는 게 아니구나.’

 

공간.

빛.

그릇.

꽃.

함께 먹는 사람.

 

이 모든 것이 식사의 기억을 만든다.

어린 시절 엄마의 밥상에는 엄마의 손맛이 있었다.

 

내 식탁에는 조금씩 나만의 색이 생기고 있었다.

엄마에게 배운 따뜻한 집밥에,

 

내가 좋아하는 핑크와 꽃,

예쁜 그릇과 색감이 더해졌다.

누군가 따로 가르쳐준 것은 아니었다.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섞였다.

그렇게 나만의 요리 스타일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의 식탁에는 지금의 내가 참 많이 들어 있었다.

아직 한식대가라는 이름도 없었고,

교수라는 직함도 없었다.

 

전문적인 플레이팅을 가르치는 사람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매일 접시를 보고 있었다.

 

‘여기를 조금 비울까?’

‘초록색 하나가 있으면 좋겠다.’

‘이 접시가 더 어울리겠다.’

그 작은 판단들이 매일 반복되었다.

 

전문가가 되기 전에 생활이 먼저 내 눈을 훈련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제대로 요리를 배우면서 나는 그동안 감으로 해오던 일들에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색의 조화.

균형.

대비.

여백.

시선의 흐름.

플레이팅.

그 단어들을 배우는 순간 재미있었다.

 

‘아, 내가 좋아했던 게 이런 거였구나.’

어릴 때부터 예쁜 것을 좋아했던 마음과 가족 식탁에서 반복해온 습관들이 하나의 기술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학생들에게 플레이팅을 가르칠 때도 나는 화려한 장식부터 이야기하지 않는다.

“먼저 깨끗하게 담아보세요.”

“먹기 편하게 놓으세요.”

“색을 한번 보세요.”

“그리고 마지막에 하나만 더해보세요.”

 

그 하나가 허브일 수도 있고,

고명일 수도 있고,

작은 꽃잎일 수도 있다.

 

많이 올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접시가 조금 더 살아나는 딱 그 정도.

 

나는 그것을 좋아한다.

어쩌면 내 삶도 그런 방식으로 흘러왔는지 모른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화려하게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조금씩 더해졌다.

둘째딸로 살며 배운 눈치.

엄마 옆에서 배운 손맛.

결혼 후 배운 생활력.

 

아이를 키우며 알게 된 먹이는 마음.

그리고 예쁜 것을 놓치지 않았던 내 취향.

 

그 모든 것이 한스푼씩 더해져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예쁘게 먹이고 싶은 마음에는 결국 사람이 있었다.

 

내가 좋아해서만은 아니었다.

가족이 식탁 앞에서 조금 기분 좋아졌으면 했다.

 

아이가

“예쁘다.”

하고 웃었으면 했다.

 

누군가 피곤한 얼굴로 돌아와서도 식탁 앞에서는 잠시 마음이 풀렸으면 했다.

그래서 음식을 조금 더 가지런히 담았다.

 

그릇 하나를 더 고민했다.

꽃 한 송이를 놓았다.

작은 일이었지만 내게는 그것도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완벽한 식탁은 없었다.

어떤 날은 반찬 두 가지뿐이었다.

어떤 날은 국 하나와 김치가 전부였다.

 

바빠서 예쁜 그릇을 꺼낼 틈조차 없는 날도 있었다.

그렇다고 마음까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안다.

예쁘게 먹인다는 것이 매번 화려하게 차린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을.

 

따뜻한 밥을 예쁜 그릇에 한 번 담아주는 것.

김치라도 가지런히 놓아주는 것.

 

“맛있게 먹어.”

하고 웃어주는 것.

그 정도면 충분하다.

핑크색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여전히 핑크를 좋아했다.

하지만 식탁 전체를 핑크로 만들 필요는 없었다.

 

하얀 식탁 위에 핑크색 작은 꽃 하나.

크림색 접시 옆에 연한 분홍 냅킨 하나.

검은색이나 나무색 사이에 살짝 들어간 핑크.

 

그 한 점이 더 예뻤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취향도 조금씩 세련되어졌다.

 

좋아하는 것을 무조건 많이 쓰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 얼마나 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나를 닮은 요리였다.

 

따뜻하지만 너무 무겁지 않고,

예쁘지만 먹기 불편하지 않고,

화사하지만 음식 자체를 가리지 않는 것.

 

나는 그런 접시를 좋아했다.

전통적인 한식을 차릴 때도 색 하나를 더 보고 싶었고,

 

평범한 집밥에도 여백과 균형을 만들고 싶었다.

그 마음이 훗날 나만의 요리 스타일로 이어졌다.

 

가끔 사람들은 묻는다.

“왜 그렇게 예쁘게 담아요?”

 

예전의 나라면 단순하게 대답했을 것이다.

“예쁘잖아요.”

지금도 그 말은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더 긴 대답을 할 수 있다.

음식은 사람에게 가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내 음식을 처음 보는 순간

‘맛있겠다.’

라는 마음이 들었으면 한다.

 

그리고 한입 먹었을 때

‘맛있다.’

라는 생각이 이어졌으면 한다.

 

눈과 입이 함께 즐거운 음식.

나는 그런 음식을 만들고 싶다.

생활 속에서 그 마음은 점점 분명해졌다.

 

특별한 날의 요리보다 오히려 평범한 날의 한 끼를 예쁘게 만드는 일이 좋았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은 특별한 날보다 평범한 날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매일 반복되는 저녁.

익숙한 반찬.

늘 보던 가족.

 

그 안에 작은 예쁨 하나가 들어가면 평범한 하루가 조금 다르게 기억된다.

나는 그것이 좋았다.

 

지금도 식탁을 차리고 나면 마지막에 한번 바라본다.

무엇을 더할까가 아니라,

이제는 무엇을 덜어낼까도 생각한다.

 

그리고 딱 필요한 만큼만 손을 본다.

그렇게 완성된 식탁을 보면 예전의 내가 떠오른다.

 

꽃무늬 접시를 좋아하던 소녀 경은이.

가족에게 뭔가 예쁘게 만들어주고 싶었던 젊은 경은이.

 

그 사람들은 모두 지금의 내 안에 있다.

예쁘게 먹이고 싶은 마음.

처음에는 작은 취향이었다.

 

하지만 그 마음이 오래 쌓여 나만의 요리 방식이 되었다.

맛을 먼저 생각하고,

사람을 생각하고,

마지막에 아주 작은 아름다움을 더하는 것.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오늘도 한 가지를 더한다.

 

꽃잎 하나.

초록색 잎 하나.

예쁜 그릇 하나.

 

혹은 아주 작은 핑크색 하나.

그 정도의 한스푼이면 충분하다.

 

경은의 한마디

“예쁘게 담는다는 것은 보여주기 위해 꾸미는 일이 아니라, 먹는 사람에게 건네는 작은 정성이다.”

 

오늘의 핑크 한스푼

오늘 먹는 음식 중 하나만 조금 다르게 담아보세요.

 

늘 쓰던 접시 대신 좋아하는 그릇을 꺼내도 좋고,

과일 몇 조각을 가지런히 놓아도 좋습니다.

 

초록색 잎 하나,

깨 조금,

작은 꽃 한 송이도 충분합니다.

 

거창하게 꾸밀 필요는 없습니다.

평범한 한 끼에 내가 좋아하는 아름다움을 한스푼 더하는 것.

 

그 작은 변화가 오늘의 식탁과 마음을 조금 더 사랑스럽게 만들어줄지도 모릅니다.

 

 

 

작성 2026.09.19 23:42 수정 2026.09.19 23:44

RSS피드 기사제공처 : 미식1947 / 등록기자: 심경은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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