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초입, 바람속의 사색

                                                                                                                                                   목감천/ 이은택 時論 

 

계절의 바퀴가 무심하게 굴러 마침내 가을의 들머리에 서면,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것은 몸의 감각이다. 뼛속까지 스며들 듯 기승을 부리던 연이은 폭염도 자연의 어김없는 순리 앞에서는 기세를 꺾는다. 이른 아침 창문을 열 때 피부 끝에 닿는 서늘한 공기, 찌를 듯 가파르던 햇살의 각도가 조금씩 뉘어지며 만들어내는 긴 그림자는 계절이 바뀌었음을 다정하게 고지한다. 가을 초입은 이처럼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찾아온다.

 

여름이 고조와 발산의 계절이었다면, 가을 초입은 채우는 일을 멈추고 비로소 돌아보는 정돈의 시간이다. 만물이 잎을 키우고 줄기를 늘리며 자신을 확장하기에 바빴던 계절을 지나, 이제는 결실을 위해 가지를 정비하고 내실을 다져야 하는 기점에 서는 것이다. 무성했던 신록이 조금씩 짙은 그늘을 만들어내듯, 우리의 삶 역시 무작정 달려가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를 공간을 필요로 한다. 가을의 문턱은 그 한숨의 시간을 허락하는 고마운 쉼표다.

 

길가에 서서 스치는 바람의 결을 느끼다 보면, 삶의 모든 것에는 저마다의 계절이 존재함을 깨닫는다. 뜨겁게 불태워야만 하는 순간이 있으면, 조용히 식혀내며 무르익어야 하는 순간도 있는 법이다. 서늘해진 바람은 지나간 여름의 피로를 씻어내 주는 동시에, 다가올 계절을 맞이할 마음의 자리를 마련해 준다. 지친 마음을 다독이고, 지나온 날들의 소란스러움을 흘려보내기에 가을 초입만큼 아늑한 계절은 없다.

 

가을의 서막에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거창한 수확의 결실을 기대하기에 앞서,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정적이 필요하다. 무성했던 욕망의 잎사귀들을 하나씩 털어내고, 정말로 지켜내야 할 삶의 알맹이가 무엇인지 가려내는 일이다. 선선한 바람을 옷깃 사이로 맞으며 비로소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 가을 초입이 주는 참된 선물은 바로 이 정갈한 자각에 있다.

작성 2026.09.18 09:11 수정 2026.09.18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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