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엄마가 되고 알게 된 엄마의 마음
아이를 낳기 전에는 몰랐다.
엄마가 밥을 차린다는 것이 어떤 마음인지.
어릴 때 나는 밥상 앞에 앉는 사람이었다.
엄마가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고,
밥을 퍼주면 나는 그 앞에 앉아 먹었다.
좋아하는 반찬이 있으면 먼저 젓가락이 갔고,
싫어하는 것이 나오면 슬쩍 옆으로 밀어두기도 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 한 끼가 식탁 위에 올라오기까지 엄마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는지.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야 조금씩 알게 되었다.
아이에게 뭘 먹일지 생각하는 일은 생각보다 하루의 큰 부분을 차지했다.
아침을 먹이고 나면 점심이 걱정되고,
점심을 먹이고 나면 저녁이 떠올랐다.
“오늘은 뭘 먹여야 하지?”
그 질문은 매일 돌아왔다.
어른인 나는 한 끼쯤 대충 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 앞에서는 마음이 달라졌다.
한 끼를 챙겨주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더 잘 먹었으면 좋겠고,
조금이라도 더 건강했으면 좋겠고,
좋아하는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 마음이 이상할 만큼 컸다.
아이가 음식을 잘 먹는 날에는 별일 아닌데도 기분이 좋았다.
“맛있어?”
하고 물으면 고개를 끄덕인다.
한 숟가락 더 먹는다.
그 모습 하나에 마음이 놓였다.
반대로 정성껏 만들어놓은 음식을 먹지 않는 날에는 괜히 속상했다.
“한입만 먹어봐.”
“이거 맛있는데.”
어릴 때 엄마가 나에게 했던 말들이 내 입에서 그대로 나왔다.
그 순간 문득 멈칫했다.
‘엄마도 이랬겠구나.’
내가 밥을 안 먹겠다고 고개를 돌렸을 때,
반찬이 마음에 안 든다고 투정을 부렸을 때,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어릴 때는 엄마가 자꾸 먹으라고 하는 것이 잔소리라고 생각했다.
“밥 좀 먹어.”
“이것도 먹어봐.”
“편식하지 마.”
왜 자꾸 먹으라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내가 엄마가 되고 나니 그 말 뒤에 있는 마음이 보였다.
잘 먹었으면 하는 마음.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 중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은 마음.
그게 음식이었다.
엄마는 말보다 밥으로 마음을 보여주었던 것 같다.
아이를 키우며 음식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전에는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조금 더 예쁘게,
조금 더 특별하게,
조금 더 근사하게.
하지만 아이의 식탁에서는 다른 질문이 생겼다.
이 아이가 잘 먹을 수 있을까.
너무 맵지는 않을까.
씹기 어렵지는 않을까.
간이 세지는 않을까.
색이 예쁘면 조금 더 먹어줄까.
나는 자연스럽게 먹는 사람의 입장에서 요리를 생각하게 되었다.
같은 당근도 그냥 내놓으면 손이 가지 않았다.
조금 작게 썰어보고,
다른 채소와 섞어보고,
계란 안에 넣어보기도 했다.
예쁜 접시에 담으면 한입이라도 더 먹을까 싶어 그릇도 바꿔봤다.
“이건 꽃 모양이야.”
“이건 작은 별이야.”
음식에 이야기를 붙이기도 했다.
그때 알았다.
아이에게 요리를 해준다는 것은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일이 아니었다.
먹을 수 있도록 기다리고,
방법을 바꿔보고,
기분을 살펴보는 일이었다.
아이가 잘 먹지 않는 날이면 처음에는 조급했다.
‘왜 안 먹지?’
‘이렇게 만들어줬는데.’
그러다가 조금씩 배웠다.
사람에게는 먹고 싶은 날도 있고,
입맛이 없는 날도 있다는 것을.
아이에게도 자기 입맛이 있다는 것을.
나는 어릴 때부터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 아이 앞에서는 그 사실을 다시 배웠다.
먹이는 것도 중요했지만 억지로 먹이지 않는 것도 중요했다.
사랑한다고 해서 내 방식대로만 해서는 안 됐다.
엄마가 되고 나니 기다리는 법도 조금 달라졌다.
아이가 스스로 숟가락을 잡기를 기다리고,
처음 보는 음식을 맛보기를 기다리고,
한입 먹고 어떤 표정을 짓는지 기다렸다.
때로는 오늘 먹지 않던 음식을 며칠 뒤에는 잘 먹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받아들이는 데는 각자의 시간이 있구나.
요리도,
배움도,
인생도 비슷할지 모른다.

나는 아이가 먹는 모습을 자주 살폈다.
어떤 반찬에 먼저 손이 가는지,
무엇은 남기는지,
어떤 맛을 좋아하는지.
어릴 때 세 자매의 식탁에서 사람의 입맛을 살피던 둘째딸의 버릇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다만 이제는 조금 달랐다.
그때는 재미있어서 봤다면,
이제는 마음을 쓰며 보았다.
‘이 아이는 어떤 것을 좋아할까.’
‘오늘은 무엇을 먹고 싶을까.’
그 작은 관찰이 다음 식탁을 바꿨다.
어느 날 아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문득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도 우리가 밥을 먹는 모습을 이렇게 바라봤을까.
세 딸이 같은 밥상에 앉아
누구는 국부터 먹고,
누구는 고기부터 먹고,
누구는 반찬을 골라냈을 때,
엄마는 다 보고 있었을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다음 날 밥상이 조금씩 달라졌을 것이다.
그때는 몰랐다.
식탁에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관찰이 숨어 있다는 것을.
엄마가 되고 나서 가장 많이 바뀐 것은 ‘밥 먹었어?’라는 말의 의미였다.
어릴 때는 너무 흔한 말이었다.
“밥 먹었니?”
“응.”
그게 끝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말이 다르게 들렸다.
‘오늘 괜찮았니?’
‘배고프지는 않니?’
‘잘 지내고 있니?’
그 모든 말이
“밥 먹었어?”
안에 들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음식은 참 이상하다.
마음을 직접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전해준다.
아이를 위해 국을 끓이고 있을 때면 가끔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도 이렇게 냄비 앞에 서 있었겠지.
우리 셋이 잘 먹을 수 있게 간을 맞추고,
조금 덜 맵게 만들고,
좋아하는 반찬을 하나 더 만들었겠지.
그때는 그 수고를 몰랐다.
너무 당연해서 고맙다는 말도 잘 하지 않았다.
엄마가 되고 난 뒤에는 그 당연했던 것들이 하나도 당연하지 않게 보였다.
밥 한 끼를 차리는 것도 힘든 날이 있다.
몸이 피곤한 날.
마음이 지친 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
그런 날에도 아이는 배가 고프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부엌에 섰다.
냉장고 문을 열고,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고,
간단한 음식이라도 만들었다.
그럴 때마다 생각했다.
‘엄마도 이런 날이 얼마나 많았을까.’
엄마도 힘들었을 텐데.
아팠던 날도 있었을 텐데.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도 있었을 텐데.
그래도 우리 앞에는 늘 밥이 있었다.
그 사실이 뒤늦게 마음에 들어왔다.
어릴 때는 사랑이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큰 선물.
따뜻한 말.
멋진 순간.
그런 것이 사랑인 줄 알았다.
그런데 엄마가 되고 나서 사랑의 모양이 조금 달라졌다.
사랑은 때로 아주 반복적인 일이었다.
밥을 짓고,
옷을 챙기고,
기다리고,
다시 말해주고,
또 밥을 짓는 것.
별것 없어 보이는 일을 지치도록 반복하는 것.
나는 그 안에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요리를 보는 눈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음식의 맛과 모양을 먼저 봤다.
이제는 그 음식이 누군가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먼저 보일 때가 있다.
서툰 반찬이어도,
조금 모양이 흐트러져 있어도,
그 안에 누군가를 먹이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따뜻해 보였다.
집밥이 오래 기억되는 이유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엄마의 음식도 그랬다.
당시에는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매일 먹던 국.
매일 보던 반찬.
늘 있던 밥.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그런 음식들이다.
어떤 유명한 요리보다
엄마가 끓이던 국의 냄새가 먼저 떠오를 때가 있다.
어떤 화려한 식탁보다
가족이 둘러앉았던 밥상이 더 선명할 때가 있다.
음식은 맛으로만 기억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 함께 있던 사람과 마음까지 같이 기억됐다.
아이를 키우며 나는 완벽한 엄마가 되려고 애쓴 적도 있었다.
좋은 음식을 먹이고 싶었고,
잘해주고 싶었고,
부족함이 없었으면 했다.
하지만 모든 날을 잘할 수는 없었다.
바쁜 날에는 간단히 먹였다.
어떤 날은 음식이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내가 어릴 때 엄마에게 원했던 것이 정말 완벽한 밥상이었을까.
아니었다.
그냥 엄마가 있으면 됐다.
따뜻한 밥 한 그릇이면 됐다.
그 생각을 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도 완벽한 음식만은 아닐 것이다.
“맛있게 먹어.”
라고 웃어주는 사람.
먹지 않아도 조금 기다려주는 사람.
잘 먹으면 기뻐해주는 사람.
가끔은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주는 사람.
그런 마음이 함께 있는 식탁이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엄마라는 역할을 조금씩 배워갔다.
엄마가 되고 나서 나는 엄마에게 예전보다 자주 묻고 싶어졌다.
“우리 어릴 때 뭐 잘 먹었어?”
“나 어릴 때도 이것 좋아했어?”
“엄마는 매일 밥하는 게 힘들지 않았어?”
예전에는 궁금하지 않았던 것들이 궁금해졌다.
엄마도 한때는 어린 딸이었을 텐데.
엄마에게도 좋아하는 것이 있었을 텐데.
엄마도 힘든 날이 있었을 텐데.
나는 엄마가 된 뒤에야 엄마를 ‘엄마’가 아닌 한 사람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사실이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어릴 때의 나는 엄마가 늘 엄마였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밥도 잘하고,
가족을 돌볼 줄 아는 사람.
하지만 엄마도 처음 엄마가 되었던 날이 있었을 것이다.
나처럼 서툴렀을 것이고,
걱정했을 것이고,
잘하고 있는지 혼자 고민했을 것이다.
그 시간을 지나 엄마도 엄마가 되었던 것이다.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자꾸 엄마에게 가까워졌다.
예전에 이해하지 못했던 말을 이해하게 되었고,
예전에 잔소리라고 생각했던 것을 따라 하게 되었다.
“늦게까지 굶지 마.”
“따뜻한 거 먹어.”
“몸 생각해야지.”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때면 웃음이 났다.
‘나 진짜 엄마 닮아가네.’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조금 반가웠다.
요리도 그렇게 이어졌다.
엄마가 내게 만들어주던 음식에서
내가 아이에게 만들어주는 음식으로.
똑같지는 않아도 마음은 닮아 있었다.
잘 먹었으면 하는 마음.
건강했으면 하는 마음.
힘든 날 따뜻한 것을 먹었으면 하는 마음.
음식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마음을 옮겨주는 방법이기도 했다.
나는 그때부터 ‘엄마의 손맛’이라는 말을 조금 더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손맛에는 간장과 소금의 비율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몇 번이나 밥을 지었는지,
몇 번이나 아이를 기다렸는지,
몇 번이나 먹는 얼굴을 바라봤는지가 들어 있었다.
손맛은 결국 시간이었고,
기억이었고,
사랑이었다.
지금 학생들에게 요리를 가르칠 때도 나는 종종 말한다.
“누구에게 먹일지 생각해보세요.”
레시피는 같아도 먹는 사람은 다르다.
아이에게 줄 음식인지,
부모님께 드릴 음식인지,
친구에게 대접할 음식인지.
그 사람을 떠올리는 순간 요리는 조금 달라진다.
나는 그 사실을 엄마가 되고 더 분명히 알게 되었다.
음식은 기술로 만들지만,
식탁은 마음으로 완성되는 것 같다.
맛이 완벽하지 않아도
누군가 나를 위해 차려준 밥은 따뜻하다.
그 마음을 알게 된 뒤로 나는 예전의 엄마 밥상을 떠올릴 때마다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몰랐던 것.
당연한 줄 알고 받기만 했던 것.
그것이 사실은 아주 오래 이어진 사랑이었다.
어느 날 아이에게 밥을 차려주고 맞은편에 앉아 먹는 모습을 바라봤다.
아이가 숟가락을 들고 잘 먹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한참을 봤다.
그리고 문득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그때 맞은편에는 엄마가 있었겠지.
아마 엄마도 이렇게 바라봤겠지.
그 생각에 마음이 조금 먹먹해졌다.
시간은 참 이상하다.
어린 딸이 엄마가 되고,
엄마의 자리에 앉아보니
그제야 반대편에 앉아 있던 사람의 마음이 보인다.
나는 엄마가 되고 나서야 엄마를 조금 알게 되었다.
아직 다 알지는 못할 것이다.
엄마가 살아낸 시간은 내가 모르는 것이 더 많을 테니까.
하지만 한 가지는 이제 안다.
엄마가 차려주던 밥상에는 음식보다 훨씬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걱정.
기다림.
수고.
그리고 사랑.
그래서 나는 오늘도 밥을 만든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다.
따뜻한 밥 한 그릇.
좋아하는 반찬 하나.
그리고
“많이 먹어.”
라는 한마디.
어쩌면 아이가 지금은 그 마음을 모를 수도 있다.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언젠가는 알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그때 떠올려주면 좋겠다.
자신을 위해 부엌에 서 있던 엄마의 뒷모습을.
경은의 한마디
“엄마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 엄마의 밥상에는 음식보다 먼저 ‘잘 먹고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올라와 있었다.”
오늘의 핑크 한스푼
오늘은 나를 먹여주었던 사람을 한번 떠올려보세요.
엄마여도 좋고,
아빠여도 좋고,
할머니나 가족 누구라도 좋습니다.
그 사람이 만들어주던 음식 하나를 떠올려보고 가능하다면 짧게 말해보세요.
“그때 잘 먹었어요. 고마웠어요.”
직접 말하기 어렵다면 마음속으로만 해도 괜찮습니다.
당연하게 받았던 사랑을 다시 바라보는 것.
그 감사의 마음을 오늘 식탁에 한스푼 더해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