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는 예쁘지만 매일 봐주는 건 다른 문제…‘황혼육아’ 어디까지 괜찮을까

주 15시간 이상 손주 돌보는 조부모 조사…하루 평균 6.04시간 육아

53.3% “원하지 않아도 거절 못 한 경험”…여성 조부모 부담 더 커

손주와 관계 좋아졌다는 응답 81.9%…육체적 피로 증가도 73.7%

  • 46.8%는 돌봄 중단 고민…0~1세 돌보는 여성 조부모는 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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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적 돌봄 있어도 조부모 찾는 가정…부모 노동시간과 돌봄 공백도 원인

 

 

맞벌이 자녀를 대신해 등하원을 돕고 식사를 챙기며 어린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가 적지 않다. 

 

손주와 가까워지고 자녀의 양육 부담을 덜어준다는 만족감도 있지만, 돌봄이 매일 장시간 이어지면 조부모에게 또 하나의 노동이 될 수 있다. 

 

최근 장시간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가족관계가 좋아졌다는 응답과 함께 피로와 스트레스가 늘었다는 응답이 동시에 나타났다.

 

조부모가 손주를 돌보는 황혼육아의 일상적인 상황을 표현한 이미지 (AI 생성)

 

주 15시간 이상 돌보는 조부모, 하루 평균 6시간 육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 5월 공개한 ‘노인의 손자녀 돌봄 실태조사’는 조부모의 손주 돌봄이 일부 가정에서 어느 정도의 일과가 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조사는 최근 6개월 동안 주 15시간 이상 만 10세 미만 손자녀를 돌본 55~74세 조부모 1,063명을 대상으로 했다. 

여성 660명, 남성 403명이 참여했으며, 2025년 7월 28일부터 8월 18일까지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이들은 평일 기준 주 평균 4.6일 손주를 돌봤다. 하루 평균 돌봄시간은 6.04시간, 주당 평균은 26.83시간이었다.

주의할 점은 이 숫자가 우리나라 전체 조부모의 평균 돌봄시간은 아니라는 것이다. 

 

처음부터 주 15시간 이상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를 대상으로 한 조사다. 

가끔 손주를 돌보는 경우와 정기적으로 장시간 육아를 맡는 경우를 같은 ‘황혼육아’로 묶어 해석하기 어려운 이유다.

 

절반 이상 “원하지 않아도 거절 못 한 적 있다”

돌봄이 조부모 자신의 선택이었는지도 중요한 문제다.

 

조사 대상자의 53.3%는 본인이 원하지 않는데도 자녀의 사정 때문에 손주 돌봄을 거절하지 못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여성은 57.5%, 남성은 44.6%로 12.9%포인트 차이가 났다.

 

손주 외에 다른 가족까지 함께 돌보는 경우도 있었다. 

응답자의 51.1%가 배우자 등 다른 가족 구성원까지 함께 돌보는 ‘다중 돌봄’을 하고 있었다. 

여성은 56.4%, 남성은 40.1%였다.

 

은퇴 이후 자신의 생활을 꾸려야 할 시기에 손주 돌봄에 배우자나 다른 가족의 돌봄까지 겹칠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여성 조부모에게 부담이 더 집중되는 양상이 조사에서 확인됐다.

 

힘들기만 한 건 아니다…81.9% “손주와 관계 좋아져”

황혼육아를 조부모의 희생으로만 설명하는 것도 실제 조사 결과와 맞지 않는다.

 

손주를 돌본 뒤 손자녀와의 관계가 좋아졌다고 답한 조부모는 81.9%였다. 

손자녀 부모와의 관계가 좋아졌다는 응답도 68.8%에 달했다.

 

가족관계에서 나타난 긍정적인 변화는 남성 조부모에게 일부 더 높게 나타났다. 

손자녀 부모와 관계가 좋아졌다는 응답은 남성 73.6%, 여성 66.5%였다. 

배우자와 관계가 좋아졌다는 응답도 남성 48.4%, 여성 41.6%였다.

 

연구진은 조부모 돌봄이 가족의 돌봄 공백을 메우는 동시에 정서적 고립감이나 외로움을 덜고 손주와의 관계를 높이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육체적 피로 73.7%…46.8%는 그만둘 생각도

긍정적인 경험과 별개로 신체적·정신적 부담도 함께 나타났다.

 

손주를 돌본 뒤 육체적 피로가 증가했다고 답한 조부모는 73.7%였다. 

 

정신적 부담이나 스트레스가 증가했다는 응답은 60.4%, 기존 질환이나 통증이 심해졌다는 응답은 47.8%였다. 

이런 부정적 변화는 여성에게 더 두드러졌다.

 

이 수치를 황혼육아가 특정 질환을 직접 일으킨다는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조부모가 손주 돌봄 이후 자신에게 나타난 변화를 응답한 조사로, 특정 질환과 손주 돌봄 사이의 의학적 인과관계를 입증한 결과는 아니다.

 

부담은 돌봄을 중단하고 싶다는 생각으로도 이어졌다. 

조사 대상자의 46.8%가 손주 돌봄을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여성은 49.0%, 남성은 42.5%였다. 특히 0~1세 손주를 돌보는 여성은 54.7%가 중단을 생각한 경험이 있었다.

 

중단을 고민한 주된 이유는 ‘손자녀를 돌보는 일이 힘에 부쳐서’가 46.7%로 가장 많았다. 

스트레스가 많아서 12.1%, 건강이 나빠져서 10.8%가 뒤를 이었다. 

 

연구진은 신체적·정신적 건강과 관련한 이유를 합하면 69.6%라고 분석했다.

 

어린이집 다녀도 조부모가 필요한 이유

어린이집과 학교, 공적 돌봄서비스가 있는데도 조부모에게 다시 도움을 요청하는 배경에는 부모의 노동시간이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조사에서는 공적 돌봄서비스를 이용하면서도 조부모의 도움이 필요한 주요 배경으로 부모의 노동시간과 가족 돌봄을 우선하는 가치관, 사교육 필요 등이 나타났다. 

 

연구진은 특히 부모의 늦은 퇴근시간에 조부모가 돌봄 공백을 보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런 돌봄 공백을 줄이기 위해 아이돌봄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2026년 아이돌봄서비스 이용요금은 시간당 1만2,790원이다.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소득기준도 기준 중위소득 200% 이하에서 250% 이하로 확대됐다. 

소득구간과 아동 연령 등에 따라 정부 지원 비율이 달라진다.

 

공적 서비스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가정의 모든 돌봄 공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집이나 학교가 끝나는 시간과 부모의 퇴근시간이 맞지 않으면 그 사이를 누군가 채워야 한다. 

조부모가 가족 돌봄의 마지막 빈틈을 맡게 되는 배경 가운데 하나다.

 

손주 돌보면 월 30만원?…전국 공통 수당 아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조부모 등 친인척의 돌봄에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서울시는 ‘서울형 손주돌봄수당’을 운영한다. 

 

현재 부모와 아동이 서울에 거주하면서 24~36개월 아동을 키우는 기준 중위소득 150% 이하 양육공백 가정 등이 대상이다. 

조부모를 포함한 4촌 이내 친인척이 아이를 돌보는 경우 월 30만원의 돌봄비를 지원한다.

 

따라서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에게 정부가 월 30만원을 지급한다’고 설명하면 정확하지 않다. 

 

서울시가 일정 요건을 갖춘 가정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사업이며 전국 모든 조부모에게 지급되는 보편적인 수당이 아니다.

 

서울시는 지원 연령을 현재 24~36개월에서 초등학교 1~2학년까지 단계적으로 넓히고, 소득기준도 중위소득 150% 이하에서 180% 이하로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현재 적용되는 지원기준이 아니라 서울시가 밝힌 확대계획이다.

 

가족끼리라도 ‘언제까지, 어디까지’ 정해야

그렇다면 황혼육아는 하루 몇 시간까지가 적당할까. 

현재 확인된 조사만으로 모든 조부모에게 적용할 수 있는 적정 돌봄시간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조부모의 연령과 건강 상태가 다르고 손주의 나이에 따라 필요한 돌봄 강도도 달라진다. 

등하원만 돕는 경우와 영아의 식사·목욕·낮잠까지 하루 종일 책임지는 경우도 같은 조건으로 비교할 수 없다.

 

따라서 가족 안에서는 단순히 돌봄비를 얼마 줄 것인지보다 일주일에 며칠, 하루 몇 시간 맡길지부터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등하원과 식사, 목욕, 병원 동행 등 조부모가 맡을 범위를 정하고, 조부모가 아프거나 개인 일정이 있을 때 대신 돌볼 사람도 함께 정할 필요가 있다.

 

부모와 조부모의 양육방식이 다를 때 어떤 원칙을 따를지도 미리 이야기해 두는 편이 갈등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조부모가 힘들 때 돌봄시간을 줄이거나 중단할 수 있어야 한다. 

 

조사 대상자의 절반 이상이 원하지 않는데도 돌봄을 거절하지 못한 경험이 있다는 결과는 가족 사이에서도 돌봄에 대한 의사를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황혼육아의 문제, 가족 안에서만 풀 수 있을까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조부모에게 돌봄을 맡기는 방식만으로 가족의 돌봄 공백을 해결하기보다 부모가 일하면서도 직접 자녀를 돌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구체적으로 부모가 자녀를 돌볼 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노동시간 구조를 개선하고, 미취학 아동의 방과 후 돌봄과 초등 돌봄의 양과 질을 높이는 방안을 정책과제로 제시했다.

 

황혼육아에는 가족관계를 가깝게 하고 부모의 돌봄 공백을 메우는 측면과 조부모에게 새로운 부담을 지우는 측면이 함께 존재한다. 

어느 한쪽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손주가 예쁜 것과 매일 손주의 일상을 책임지는 것은 다른 문제다. 

 

가족의 도움이 한 사람의 희생으로 굳어지지 않으려면 조부모가 감당할 수 있는 시간과 역할을 정하고, 필요할 때 줄이거나 그만둘 수 있는 선택권을 보장하는 것이 황혼육아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작성 2026.09.17 13:45 수정 2026.09.17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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