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경은 교수의 요리에세이 『오늘도 핑크 한스픈』 12화. 결혼이라는 새로운 식탁

누군가가 차려주던 밥상에서 이제는 내가 한 집의 식탁을 책임지는 사람이 되었다

좋아서 하던 요리가 생활이 되고, 매일의 한 끼가 사랑과 책임의 의미를 가르쳐주다

있는 재료로 식탁을 채우며 나만의 살림 감각과 요리의 깊이를 배워간 시간

 

 

 

결혼을 하고 나서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식탁이었다.

이전까지의 식탁은 누군가가 차려놓은 곳에 앉는 자리였다.

 

엄마가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고,

밥을 담아주면 나는 그 자리에 앉아 먹었다.

 

물론 어릴 때부터 요리를 좋아했고 직접 음식을 만들어보기도 했지만, 식탁 전체를 책임진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결혼 후에는 달랐다.

 

“오늘 뭐 먹지?”

그 질문이 어느 순간 내 몫이 되었다.

처음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좋아하는 요리를 하면 되겠지.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들면 되겠지.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자 조금씩 알게 되었다.

 

한 끼를 만드는 것과 한 집의 식탁을 꾸려가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라는 것을.

결혼 전의 요리는 하고 싶을 때 하는 일이었다.

 

시간이 나면 만들고,

재료가 있으면 해보고,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다음으로 미뤄도 됐다.

 

하지만 결혼 후의 요리는 생활이 되었다.

오늘 밥을 먹으면 내일도 밥을 먹어야 했다.

 

아침을 먹고 나면 점심이 오고,

저녁을 먹으면 또 다음 날이 왔다.

 

“어제는 찌개를 먹었으니까 오늘은 다른 걸 해야 하나?”

“냉장고에 있는 채소부터 써야 하는데.”

“고기가 조금 남았으니 뭘 만들지?”

 

나는 처음으로 음식 하나가 아니라 며칠의 식탁을 함께 생각하기 시작했다.

장을 보는 일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내가 먹고 싶은 것을 골랐다.

 

예쁜 과일,

맛있어 보이는 간식,

눈에 들어오는 재료.

하지만 결혼 후에는 머릿속에 식탁이 먼저 떠올랐다.

 

이걸 사면 어떤 반찬을 만들 수 있을까.

이 재료는 며칠 동안 쓸 수 있을까.

 

국 하나,

반찬 몇 가지,

다음 날 먹을 것까지.

장을 보면서도 끊임없이 계산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요리가 단순히 손으로 만드는 일이 아니라 생활을 계획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처음에는 욕심도 많았다.

새로운 집.

새로운 부엌.

새로운 식탁.

괜히 잘하고 싶었다.

밥도 예쁘게 담고 싶었고,

반찬도 여러 가지 만들고 싶었다.

 

식탁보도 깔아보고,

작은 꽃병도 올려보고,

예쁜 접시도 하나둘 꺼냈다.

‘우리 집 식탁은 예쁘게 차리고 싶다.’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던 마음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만큼 늘 여유롭지 않았다.

 

밥이 늦어지는 날도 있었고,

국이 생각보다 짜게 된 날도 있었다.

반찬을 만들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처음에는 그런 일이 속상했다.

‘왜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지?’

‘엄마는 어떻게 매일 이걸 했지?’

 

그때부터 엄마의 식탁이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야 알게 된 것들이 참 많았다.

 

밥은 그냥 밥솥이 하는 줄 알았다.

국은 냄비에 끓이면 되는 줄 알았다.

반찬은 재료만 있으면 금방 만들어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한 끼가 식탁에 올라오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장을 보고,

재료를 정리하고,

씻고,

썰고,

불 앞에 서고,

간을 보고,

그릇에 담는다.

 

먹고 나면 끝이 아니었다.

다시 그릇을 치우고,

남은 음식을 정리하고,

냄비를 씻고,

주방을 닦아야 했다.

 

그리고 다음 식사를 생각해야 했다.

어린 시절에는 그 모든 일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완성된 식탁만 보고 살았다.

결혼 후에는 그 식탁 뒤에 숨어 있던 시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식탁을 차리는 일이 싫지만은 않았다.

 

이상하게도 음식이 하나씩 완성되어 식탁 위에 놓이면 마음이 차분해졌다.

갓 지은 밥에서 김이 올라오고,

 

국이 가운데 놓이고,

작은 반찬들이 자리를 잡으면

‘우리 집이 생겼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집이라는 공간을 가장 집답게 만들어주는 것이 어쩌면 식탁인지도 몰랐다.

가구가 다 갖춰지지 않아도,

예쁜 장식이 많지 않아도,

따뜻한 밥 한 끼가 놓이면 그곳은 금세 생활의 공간이 되었다.

 

두 사람이 함께 먹는 식탁은 재미있었다.

어릴 때 세 자매의 입맛이 달랐던 것처럼 부부의 입맛도 같을 수는 없었다.

나는 좋아하는데 상대는 별로인 음식이 있었고,

상대는 좋아하지만 나는 자주 찾지 않는 음식도 있었다.

 

“이거 맛있지?”

기대하면서 물었는데 반응이 시큰둥한 날도 있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했다.

‘이렇게 맛있는데 왜?’

어린 시절 자매들과 했던 생각을 다시 하고 있었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사람의 입맛에는 역시 정답이 없었다.

 

결혼은 내 입맛 하나로 차리던 식탁에서 다른 사람의 입맛까지 생각하는 식탁으로 넘어가는 일이기도 했다.

나는 조금씩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어떤 국을 잘 먹는지,

고기는 어떻게 조리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매운맛은 어느 정도가 좋은지,

어떤 반찬에는 젓가락이 자주 가는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식탁을 보면 알 수 있었다.

 

한 번 더 가져가는 음식.

깨끗이 비워지는 접시.

조금 남겨지는 반찬.

그런 것을 보면서 다음 식탁이 달라졌다.

 

“이거 좋아하잖아.”

그 말과 함께 음식을 내놓을 때 나는 묘한 기쁨을 느꼈다.

 

누군가의 취향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식탁의 따뜻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후의 요리는 나를 조금 더 현실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예쁜 것만 생각할 수는 없었다.

영양도 생각해야 했고,

재료비도 생각해야 했고,

남는 음식도 줄여야 했다.

 

비싸고 좋은 재료만 사는 것이 잘 차린 식탁은 아니었다.

있는 재료를 잘 활용하고,

버리는 것을 줄이고,

다음 끼니까지 연결하는 것도 중요했다.

 

남은 나물은 볶음밥에 넣고,

조금 남은 고기는 다른 반찬으로 바꾸고,

국물은 다음 날 맛을 조금 달리해 먹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요리의 또 다른 재미를 발견했다.

없는 것을 새로 사는 것보다 있는 것으로 새로운 것을 만드는 재미.

 

냉장고는 내게 또 하나의 요리책이 되었다.

문을 열면 매일 다른 문제가 나왔다.

“이 재료를 오늘 어떻게 먹을까?”

 

나는 냉장고 안을 바라보며 메뉴를 떠올렸다.

당근 조금.

양파 반 개.

두부 한 모.

남은 채소.

 

그 재료들로 어떤 날은 찌개가 되고,

어떤 날은 볶음이 되고,

어떤 날은 전이 되었다.

 

처음에는 생활을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점점 재미있어졌다.

재료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사용하는 것도 요리하는 사람의 능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예쁜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바쁜 날에도 국그릇 옆에 반찬을 조금 가지런히 놓았다.

 

색이 비슷하면 초록색 채소 하나를 더했다.

예쁜 그릇이 있으면 일부러 꺼냈다.

누가 보러 오는 것도 아니었다.

사진을 찍을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내가 보고 싶었다.

 

그 작은 아름다움이 하루를 조금 덜 지치게 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알게 되었다.

 

예쁘게 차린다는 것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때로는 내가 살아가는 하루를 조금 더 다정하게 대하는 방법이었다.

 

어떤 날은 정말 대충 먹고 싶은 날도 있었다.

몸이 피곤하고,

마음도 지치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그럴 때면 간단하게 한 끼를 만들었다.

 

계란 하나.

김치 조금.

따뜻한 밥.

그 정도면 충분했다.

 

예전 같으면

‘이게 무슨 식탁이야.’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활을 해보니 알게 되었다.

매 끼니가 잔칫상이 될 필요는 없었다.

중요한 것은 계속 먹고 살아가는 것이었다.

 

잘 차린 밥상도 필요하지만,

힘든 날을 버티게 해주는 소박한 한 끼도 중요했다.

나는 결혼이라는 식탁에서 균형을 배웠다.

 

정성을 들여야 하는 날과 간단히 해야 하는 날.

새로운 음식을 만드는 날과 남은 음식을 활용하는 날.

예쁘게 차리는 즐거움과 아무 꾸밈 없이 편하게 먹는 시간.

 

모두 필요한 식탁이었다.

요리는 매일 완벽하게 잘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삶의 리듬에 맞춰 계속 이어가는 일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되니 마음도 조금 편해졌다.

어릴 때는 엄마가 차려준 밥상이 당연했다.

 

국이 없으면

“오늘 국 없어?”

라고 물었고,

좋아하는 반찬이 없으면 조금 아쉬워했다.

 

결혼 후 어느 날 문득 그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지금 매일 하는 일을 엄마도 오래 했겠구나.

 

아무도 크게 칭찬하지 않아도,

상장을 주지도 않아도,

매일 가족을 위해 밥을 차렸겠구나.

 

그 생각을 하고 나니 마음 한쪽이 찡했다.

엄마에게 전화해

“엄마, 뭐 해?”

하고 아무렇지 않게 물었던 날도 있다.

 

속으로는 다른 말을 하고 싶었다.

‘엄마, 그동안 참 많이 힘들었겠다.’

하지만 그 말은 왠지 쑥스러워 쉽게 나오지 않았다.

 

결혼은 나에게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준 일이기도 했지만 식탁의 의미를 바꿔준 일이기도 했다.

이전의 식탁은 나를 먹여주던 곳이었다.

 

이제는 내가 누군가를 먹이는 곳이 되었다.

그 변화는 생각보다 컸다.

 

누군가의 끼니를 생각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하루를 생각하는 일이었다.

아침에 바빴을지,

오늘 힘들지는 않았을지,

따뜻한 국이 필요할지.

요리는 자연스럽게 사람의 생활 속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음식에는 마음이 담긴다는 말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대단한 음식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김이 올라오는 국 한 그릇,

잘 익은 김치,

따뜻한 밥 한 공기.

“밥 먹어.”

그 한마디 안에

‘오늘도 수고했어.’

라는 말이 숨어 있을 때가 있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마음을 음식이 대신해주는 순간이었다.

물론 결혼 생활의 식탁이 늘 따뜻하고 아름답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서로 피곤한 날도 있었고,

대화가 줄어드는 날도 있었다.

같은 식탁에 앉아도 마음이 조금 멀게 느껴지는 날이 있었다.

 

그럴 때도 음식은 그 자리에 있었다.

“밥 먹자.”

짧은 말 한마디.

숟가락이 움직이고,

국을 한번 떠먹고,

조용히 반찬을 건넨다.

 

그러다 보면 한두 마디가 시작될 때도 있었다.

어릴 때 자매 사이의 싸움을 끝내주던

 

“이거 먹을래?”

라는 말처럼.

식탁에는 사람의 마음을 조금 누그러뜨리는 힘이 있었다.

 

 

 

 

 

나중에 학생들에게 요리를 가르치게 된 뒤에도 나는 종종 이 시절을 떠올린다.

요리는 기술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고 말할 때다.

 

정확하게 자르고,

정확하게 익히고,

아름답게 담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결국 음식은 누군가의 식탁으로 간다.

 

그 사람의 하루 속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먹는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

나는 그것을 결혼 후의 식탁에서 깊이 배웠다.

 

결혼 전에는 좋은 요리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결혼 후에는 좋은 한 끼를 만드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두 말은 비슷해 보이지만 조금 달랐다.

좋은 요리는 기술적으로 완벽할 수도 있다.

하지만 좋은 한 끼에는 그날의 사람과 상황이 들어간다.

 

피곤한 사람에게는 따뜻한 국물이 더 좋은 요리일 수 있고,

입맛 없는 날에는 예쁜 과일 한 접시가 더 좋은 한 끼일 수도 있다.

 

요리는 사람에 따라 달라져야 했다.

그리고 나는 조금씩 나만의 식탁을 만들어갔다.

 

엄마에게서 배운 손맛.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예쁜 그릇.

사람의 표정을 살피는 버릇.

있는 재료를 활용하는 생활력.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식탁 안에 모이기 시작했다.

아직 전문적인 요리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생활 속에서 매일 요리하며 나도 모르게 많은 것을 배우고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결혼이라는 새로운 식탁은 내게 또 하나의 요리학교였다.

 

시험도 없었고,

졸업장도 없었다.

하지만 매일 과제가 있었다.

 

오늘의 한 끼.

그리고 답은 늘 달랐다.

어떤 날은 성공했고,

어떤 날은 실패했다.

 

그래도 다음 날이면 다시 식탁을 차렸다.

그 반복이 나를 조금씩 성장시켰다.

어릴 때 나는 맛있고 예쁜 요리를 좋아했다.

결혼 후에는 거기에 한 가지가 더해졌다.

 

지속하는 힘.

매일 밥을 짓고,

매일 사람을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한 끼를 완성하는 힘.

 

그것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내 삶에서 꽤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그리고 아직 이때의 나는 모른다.

 

이 식탁에서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엄마라는 이름을 갖게 될 것을.

내가 먹이는 사람이 한 명 더 생기고,

음식을 만드는 마음도 또 달라질 것을.

 

어린 시절 내가 엄마의 밥상을 당연하게 받아먹었던 것처럼, 언젠가는 나도 누군가를 위해 밥을 차리는 엄마가 될 것을.

인생은 그렇게 하나의 식탁에서 다음 식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결혼이라는 새로운 식탁 앞에 앉아 나는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요리는 그 옆에서 조용히 나와 함께 자라고 있었다.

 

경은의 한마디

“결혼 후 처음 알았다. 식탁을 책임진다는 것은 음식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의 하루를 생각하는 일이었다.”

 

오늘의 핑크 한스푼

오늘 식탁을 차릴 때 한 가지를 더 생각해보세요.

‘내가 무엇을 먹고 싶은가?’보다

‘함께 먹는 사람에게 지금 어떤 한 끼가 필요할까?’

 

따뜻한 국 한 그릇이어도 좋고,

좋아하는 반찬 하나여도 좋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예쁜 접시 하나를 꺼내보세요.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먹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을 한스푼 더하는 것.

 

그 작은 마음이 평범한 저녁을 우리 집만의 따뜻한 식탁으로 만들어줄지도 모릅니다.

 

 

 

작성 2026.09.16 20:36 수정 2026.09.16 20:37

RSS피드 기사제공처 : 미식1947 / 등록기자: 심경은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해당기사의 문의는 기사제공처에게 문의

댓글 0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