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나는 왜 그렇게 핑크가 좋았을까
그중에서도 이상하게 핑크색을 보면 마음이 먼저 움직였다.
분홍색 리본.
작은 꽃무늬 손수건.
핑크빛 머리핀.
연한 장미색이 들어간 찻잔.
꼭 필요한 물건도 아니었고, 남들보다 특별히 비싼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핑크색이 들어가 있으면 한 번 더 바라보게 됐다.
누군가 물었다.
“왜 그렇게 분홍색을 좋아해?”
나는 별다른 이유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대답은 늘 간단했다.
“예쁘잖아.”
그것이면 충분했다.
어릴 때는 좋아하는 것에 이유를 붙이지 않는다.
맛있는 것은 그냥 맛있고,
예쁜 것은 그냥 예쁘다.
좋아하는 색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에 드는 리본 하나를 달면 괜히 거울을 한 번 더 본다.
나는 그런 아이였다.
세 딸 중 둘째였던 나는 언니가 가진 것도 보고, 동생이 가진 것도 보면서 자랐다.
그런데 셋이 같은 것을 보고 있어도 내가 먼저 집어 드는 것은 대부분 조금 더 화사한 것이었다.
“난 이거.”
그렇게 고른 것을 보면 분홍색이거나 꽃무늬인 경우가 많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그냥 손이 갔다.
지금 생각하면 취향이라는 것은 참 신기하다.
아주 어릴 때부터 사람 안에 조용히 자리를 잡고 있다.
우리 집에 예쁜 그릇이 하나 있으면 나는 유난히 그 그릇을 좋아했다.
특히 가장자리에 작은 꽃이 그려져 있으면 더 좋았다.
같은 과일이라도 그런 접시에 담으면 왠지 더 맛있어 보였다.
사과 몇 조각을 평범한 접시에 놓았을 때와 꽃무늬 접시에 놓았을 때는 내 눈에 전혀 다른 음식처럼 보였다.
“이쪽이 더 예쁜데.”
어린 나는 자꾸 그릇을 바꾸어보았다.
엄마 입장에서는 그릇을 하나 더 씻어야 하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진지했다.
보기 좋은 것이 좋았다.
그때는 ‘스타일링’이라는 말도 몰랐고,
‘플레이팅’이라는 말도 몰랐다.
그냥 예쁘게 담긴 음식이 좋았다.
핑크색은 이상하게 음식과도 잘 어울렸다.
딸기의 분홍빛.
복숭아의 부드러운 살색.
수박 속의 맑은 붉은빛.
꽃잎 하나가 올라간 떡.
연한 색의 크림.
그런 것을 보면 마음이 환해졌다.
아마 그래서 나는 음식에서도 색을 많이 보는 사람이 된 것 같다.
맛있는 음식은 당연히 맛이 좋아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음식이 눈에도 기분 좋았으면 했다.
빨간색만 가득하면 초록색이 하나 있었으면 좋았고,
하얀 음식만 있으면 노란색이나 분홍색이 조금 들어갔으면 좋았다.

그 작은 색 하나가 접시 전체를 바꾸어놓는 것이 재미있었다.
나중에 요리를 배우고 가르치면서 나는 학생들에게 자주 말한다.
“맛만 보지 말고 색도 보세요.”
“접시 전체를 한번 보세요.”
“이 음식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게 하려면 뭘 덜어내야 할까요?”
학생들은 처음에는 음식 하나하나만 본다.
그러다 조금 익숙해지면 접시 전체를 보기 시작한다.
나는 그 순간을 좋아한다.
그 학생의 눈이 조금 달라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랬다.
어릴 때는 그저 핑크색이 좋아서 보고,
꽃무늬가 예뻐서 보고,
접시에 담긴 색이 좋아서 바라봤다.
그런 시간이 오래 쌓이면서 나도 모르게 ‘보는 법’을 배웠다.
예쁜 것을 좋아한다고 하면 가끔 사람들은 그것을 가볍게 생각한다.
“그냥 꾸미는 걸 좋아하는 거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렇게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이 무엇을 자꾸 보는지는 꽤 중요하다.
어떤 사람은 맛을 먼저 보고,
어떤 사람은 향을 먼저 느끼고,
어떤 사람은 재료를 보고,
어떤 사람은 그릇과 색을 본다.
나는 눈에 들어오는 것을 오래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나중에 내 요리에 하나의 방식이 되었다.
처음에는 더 많이 꾸미고 싶었다.
꽃이 있으면 하나 더 올리고,
색이 있으면 하나 더 넣고,
예쁜 그릇이면 또 다른 예쁜 소품까지 곁들이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과했던 날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과정이었다.
많이 더해본 사람이 나중에 빼는 법도 알게 된다.
요리를 오래 하면서 나는 여백을 알게 되었다.
핑크를 좋아한다고 접시를 전부 핑크색으로 채울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흰 접시 위에 작은 핑크빛 꽃 한 송이가 있을 때 더 예뻤다.
검은 조리복에 작은 네온핑크 글씨 하나가 더 선명한 것처럼.
좋아하는 색은 많이 쓰는 것보다 잘 쓰는 것이 중요했다.
그 사실은 삶에서도 비슷했다.
좋아하는 것은 무조건 많이 가져야 하는 줄 알았던 때가 있었다.
예쁜 물건이 보이면 갖고 싶고,
좋아하는 스타일이 있으면 모두 그 느낌으로 꾸미고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알게 되었다.
나를 표현하는 데 필요한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 몇 가지면 충분했다.
핑크색.
꽃.
예쁜 그릇.
따뜻한 음식.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먹는 시간.
돌아보면 내 삶의 중요한 장면들에는 늘 그 몇 가지가 있었다.
사람의 취향은 참 오래간다.
어릴 때 좋아했던 것을 커서도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렇다.
핑크색을 보면 여전히 마음이 조금 부드러워진다.
바쁜 날에도 예쁜 찻잔에 차를 마시면 기분이 달라지고,
평범한 음식도 좋아하는 접시에 담으면 조금 특별해 보인다.
그것이 대단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하루를 조금 더 기분 좋게 만드는 일이다.
나는 그런 작은 차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요리는 결국 매일 반복되는 일이다.
채소를 씻고,
칼질을 하고,
볶고,
끓이고,
설거지를 한다.
그 과정이 늘 특별할 수는 없다.
어떤 날은 정말 바쁘고,
어떤 날은 귀찮고,
어떤 날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럴 때 작은 예쁨 하나가 마음을 움직인다.
좋아하는 앞치마를 매고,
예쁜 그릇을 꺼내고,
꽃 한 송이를 식탁에 놓는다.
그것만으로도 똑같은 하루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예쁜 것을 좋아하는 마음이 결코 사소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삶을 조금 더 즐겁게 만드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도 가끔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걸 알아야 해요.”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색.
좋아하는 그릇.
좋아하는 분위기.
그런 것이 분명해질수록 자기만의 요리가 생긴다.
누군가의 플레이팅을 똑같이 따라 하는 것은 시작일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자기 취향이 들어가야 자기 음식이 된다.
나는 내 요리에 핑크가 조금 들어가면 좋다.
꼭 음식 자체가 분홍색일 필요는 없다.
꽃 한 송이일 수도 있고,
그릇의 테두리일 수도 있고,
냅킨 하나일 수도 있다.
아주 작은 포인트라도 좋다.
그것이 있으면 왠지 ‘내 것’ 같아진다.
예전에는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조금 쑥스러울 때도 있었다.
나이가 들면 취향도 점잖아져야 하는 것처럼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핑크가 좋으면 핑크가 좋은 것이다.
꽃이 좋으면 꽃을 두면 된다.
반짝이는 것이 좋으면 작은 반짝임 하나쯤 있어도 된다.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숨기지 않을 때 조금 더 자기다워지는 것 같다.
나는 이제 학생들 앞에서도 핑크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예쁜 그릇을 보면 여전히 먼저 손이 간다.
그런 나를 그냥 받아들이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의 나는 이미 나를 꽤 잘 알고 있었다.
“왜 핑크가 좋아?”
“예쁘잖아.”
그 대답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이제는 한 가지를 더 말할 수 있다.
예쁜 것은 나를 기분 좋게 만든다.
기분이 좋아지면 음식을 조금 더 정성스럽게 만들게 되고,
그 음식은 또 다른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든다.
그러니 예쁜 것을 좋아하는 마음은 내게 단순한 취향만은 아니었다.
사람에게 건네는 방식이 되었다.
핑크는 아주 강한 색이 아니다.
연하게 쓰면 부드럽고,
조금 진하게 쓰면 밝고,
다른 색과 만나면 또 다른 분위기를 만든다.
나는 아마 그 점도 좋아하는 것 같다.
앞에 나서기보다 옆에서 분위기를 조금 부드럽게 만드는 색.
생각해보면 둘째라는 내 자리와도 조금 닮았다.
언니와 동생 사이에서 분위기를 살피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한마디를 보태고,
음식과 사람 사이에서 뭔가를 조금 더하는 것.
나는 지금도 그런 일을 좋아한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좋아하는 것은 오래 쌓이면 결국 사람을 설명하게 된다는 것을.
어릴 때 좋아했던 핑크 리본 하나.
꽃무늬 접시 하나.
예쁜 찻잔 하나.
그런 것들이 하나씩 쌓여
지금의 내 음식과
내 수업과
내 식탁과
내 취향을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좋아하는 것을 가볍게 보지 않는다.
좋아하는 것은 때로 미래의 방향을 먼저 알고 있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어린 경은이가 핑크색 리본을 들고 말했을 것이다.
“이게 더 예뻐.”
그때는 몰랐다.
그 작은 선택들이 아주 오래 후에도 계속 이어질 줄은.
그리고 지금의 나는 여전히 같은 선택을 한다.
조금 더 따뜻하게.
조금 더 사랑스럽게.
그리고 가능하다면,
핑크 한스푼을 더해서.
경은의 한마디
“좋아하는 것을 오래 바라보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이 나만의 감각이 된다.”
오늘의 핑크 한스푼
오늘은 꼭 핑크색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색 하나를 찾아보세요.
좋아하는 컵 하나를 꺼내고,
좋아하는 접시에 음식을 담고,
작은 꽃 한 송이를 놓아도 좋습니다.
거창하게 꾸미지 않아도 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 하루에 조금 더해주는 것.
그것이 오늘의 가장 사랑스러운 한스푼일지도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