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처음 내 손으로 만든 한 접시
부엌을 기웃거리기만 하던 아이에게도 어느 날은 차례가 온다.
누가 거창하게 가르쳐준 것도 아니고,
“오늘부터 요리를 배워보자” 하고 앞치마를 매어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어느 날,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부엌 한쪽에 서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도 한번 해볼까?’
지금 돌이켜보면 그 마음이 참 귀엽다.
아는 것도 별로 없으면서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릴 때는 원래 그렇다.
몇 번 본 것은 다 할 수 있을 것 같고,
한 번 맛본 것은 비슷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엄마가 하는 모습을 옆에서 꽤 많이 봤으니
나도 제법 요리를 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보는 것과 하는 것은 전혀 달랐다.
채소 하나를 써는 것부터 그랬다.
엄마 손에서는 너무 쉽게 잘리던 것이
내 손에서는 자꾸 크기가 달라졌다.
하나는 두껍고,
하나는 가늘고,
어떤 것은 길고,
어떤 것은 짧았다.
가만히 바라보다가 혼자 생각했다.
‘먹으면 다 똑같지 뭐.’
지금 학생들이 그렇게 말하면
아마 나는 웃으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니죠. 크기가 같아야 익는 시간도 같아요.”
그때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설명해준다면
어린 경은이는 분명 이렇게 대답했을 것 같다.
“그래도 맛있으면 되잖아.”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요리는 참 오랫동안 사람을 가르친다.
처음에는 맛만 있으면 되는 줄 알고,
조금 지나면 모양도 보게 되고,
또 시간이 지나면
재료와 온도와 시간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오래 요리를 하다 보면
마지막에는 결국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
누가 먹을 음식인지.
어떤 마음으로 먹게 될 음식인지.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 긴 길의 첫 번째쯤에 서 있었던 것 같다.

처음 만들어본 음식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희미하다.
계란이었을 수도 있고,
밥에 뭔가를 섞어 만든 음식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또렷하게 기억난다.
내가 만든 것을 누군가 먹어준다는 것이 참 좋았다.
접시에 음식을 담아놓고도
나는 음식보다 사람 얼굴을 더 많이 봤다.
한입 먹는다.
씹는다.
표정을 본다.
아무 말이 없으면 괜히 궁금해졌다.
“어때?”
대답이 늦으면 다시 묻는다.
“괜찮아?”
그리고
“맛있어.”
라는 말을 들으면
괜히 어깨가 조금 올라갔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나는 요리의 마지막이 냄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요리의 마지막은
누군가의 입에 들어간 뒤에야 완성된다.
맛있다는 표정.
한 번 더 가져가는 젓가락.
남김없이 비워진 접시.
그런 것이 어린 나에게는
작은 상장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처음부터 음식의 맛만 신경 쓴 것은 아니었다.
접시에 담는 순간이 오면
조금 달라졌다.
그릇을 한번 보고,
음식을 한번 보고,
또 그릇을 봤다.
조금 오른쪽으로 옮겨보고,
다시 왼쪽으로 옮겨보고,
괜히 깨 같은 것도 조금 뿌려보고 싶었다.
그때는 플레이팅이라는 말을 알지도 못했다.
그냥
“이렇게 놓는 게 더 예쁜데?”
라는 생각뿐이었다.
어쩌면 나에게 요리는 처음부터
먹는 것과 보는 것이 함께였는지도 모르겠다.
예쁜 옷을 좋아했고,
예쁜 리본을 좋아했고,
예쁜 그릇을 좋아했고,
그래서 음식도 조금 더 예뻤으면 좋았다.
나는 지금도 음식이 완성되면
마지막에 꼭 한번 멀리서 바라본다.
간은 가까이에서 보지만
모양은 조금 떨어져서 봐야 잘 보인다.
“뭔가 하나 부족한데.”
그럴 때 초록색 잎 하나를 얹기도 하고,
작은 꽃을 올리기도 한다.
어떤 날은 아무것도 더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워두는 것이 더 예쁠 때도 있으니까.
그런 판단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그 시작은 의외로 단순했다.
어린 시절의 한마디.
“이쪽에 놓는 게 더 예뻐.”
그것이었다.
요리를 처음 해보면 이상한 일이 생긴다.
평소에는 그냥 먹던 음식이
갑자기 다르게 보인다.
계란 하나를 보면서도
‘이게 익으면 왜 색이 달라지지?’
생각하게 되고,
채소를 볶으면서는
‘처음보다 왜 이렇게 작아졌지?’
궁금해진다.
간장을 조금 넣었을 뿐인데
냄새가 확 달라지는 것도 신기하고,
참기름 몇 방울이
음식 전체의 분위기를 바꾸는 것도 재미있다.
나는 아마 그런 작은 변화들을 좋아했던 것 같다.
요리는 정답을 맞히는 공부와는 조금 달랐다.
조금만 다르게 해도 결과가 달라졌다.
불을 조금 세게 하면 맛이 달라지고,
시간을 조금 더 두면 식감이 달라지고,
재료 하나를 더 넣으면 전혀 다른 음식이 되었다.
그것이 재미있었다.
내 손으로 뭔가를 바꿀 수 있다는 것.
평범한 재료를
다른 모습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
그런 경험이 어린 나에게는 꽤 특별했다.
물론 처음부터 잘한 것은 아니다.
간이 짰을 때도 있었을 것이고,
뭔가 탔을 때도 있었을 것이다.
보기에는 예쁜데 맛이 이상했던 날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런 기억은 선명하지 않다.
대신
‘다음에는 조금 다르게 해봐야지.’
했던 마음은 남아 있다.
요리는 실패해도 다시 해볼 수 있어서 좋다.
조금 짜면 다음에는 소금을 줄이면 되고,
너무 익혔다면 다음에는 불을 조금 일찍 끄면 된다.
칼질이 삐뚤다면 또 썰어보면 된다.
생각해보면 요리는
나에게 실패를 받아들이는 방법도 가르쳐주었다.
완벽하게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한 번 틀렸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다음 끼니가 또 찾아온다는 것.
그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인생도 요리처럼
다음 번에 조금 더 잘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다.
어린 시절의 나는
요리가 내 직업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학생들 앞에서 칼을 잡는 법을 알려주고,
불 조절을 설명하고,
접시의 여백까지 이야기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는
더더욱 몰랐다.
그때의 나는 그냥 재미있었다.
뭔가를 만들고,
접시에 담고,
누군가에게 내밀고,
그 사람이 맛있게 먹는 것이 좋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네 가지는 지금의 나도 똑같이 좋아한다.
만드는 것.
담는 것.
나누는 것.
그리고 바라보는 것.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요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의외로 많이 변하지 않았다.
지금도 나는 학생들에게 종종 말한다.
“처음부터 잘하려고 하지 마세요.”
요리는 손으로 배우는 것이 많다.
책에서 본 것과
직접 해본 것은 다르다.
팬의 무게도 잡아봐야 알고,
반죽의 질감도 만져봐야 알고,
불의 세기도 눈으로 오래 봐야 감이 생긴다.
그런 감각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한 번 하고,
또 하고,
조금 실패하고,
다시 해보고.
그러다 어느 순간
손이 먼저 아는 것이 생긴다.
나도 그렇게 배웠다.
거창한 시작은 없었다.
작은 주방 한쪽에서
“나도 해볼래.”
하고 손을 내민 것이 시작이었다.
요즘은 예쁜 그릇을 보면
여전히 마음이 먼저 간다.
핑크색 접시가 보이면 더 그렇다.
‘여기에 뭘 담으면 좋을까?’
음식보다 그릇을 먼저 사고
나중에 메뉴를 생각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혼자 웃는다.
어린 경은이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구나.
그때도 예쁜 것을 보면 좋아했고,
지금도 그렇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는 그 예쁜 그릇 위에 무엇을 올릴지 조금 더 잘 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음식을
누구와 나누고 싶은지도 생각한다.
아마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한다는 것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처음 좋아했던 마음은 그대로인데
그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이 조금씩 깊어지는 것.
나의 첫 요리는 완벽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양도 서툴고,
간도 정확하지 않았고,
접시 위의 음식도 지금처럼 가지런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 첫 접시가 참 고맙다.
그 한 접시가 있었기 때문에
두 번째 접시를 만들었을 테고,
두 번째가 있었기 때문에
세 번째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수많은 접시가 이어져
지금의 내가 되었다.
가끔 인생을 돌아보면
대단한 순간보다 아주 작은 시작이 더 중요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그 시작은
근사한 조리실도 아니었고,
비싼 칼도 아니었다.
엄마의 부엌 한쪽과
작은 접시 하나였다.
그리고 그 앞에서
조금 들뜬 얼굴로 서 있던 어린 경은이.
“이거 내가 만들었어.”
아마 그 말을 하던 순간부터
나는 조금씩 요리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경은의 한마디
“처음부터 잘할 필요는 없다. 좋아서 한 번 더 해보는 마음이 결국 실력이 된다.”
오늘의 핑크 한스픈
오늘은 거창한 요리 대신
아주 간단한 한 접시를 내 마음대로 예쁘게 담아보세요.
계란 하나라도 좋고,
과일 몇 조각이어도 좋습니다.
좋아하는 접시에 담고
색 하나를 더하고
조금 떨어져 바라보세요.
내가 만든 한 접시를 내가 먼저 좋아해주는 것.
그것도 요리를 오래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