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붉은 토마토에 황금빛 올리브오일이 흐른다. 여기에 바질 한 잎만 얹어도 사람들은 단번에 이탈리아를 떠올린다. 토마토소스를 입은 파스타, 토마토와 모차렐라를 올린 피자, 빵 위에 토마토와 올리브오일을 얹은 브루스케타까지. 오늘날 이 두 재료의 조합은 너무나 익숙해서 마치 수천 년 전부터 이탈리아 주방에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의외로 토마토는 이탈리아의 토종 식재료가 아니다. 원산지는 남아메리카다. 유럽에 토마토가 들어온 것은 16세기 이후였고, 처음부터 사람들이 토마토를 반긴 것도 아니었다. 한동안 토마토는 낯선 식물로 여겨졌으며 식탁에 오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남아메리카의 작은 열매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맛이 되었을까.
토마토가 오기 전의 이탈리아
토마토가 없던 시절에도 이탈리아에는 이미 풍부한 음식 문화가 있었다. 밀과 보리 같은 곡물, 올리브, 치즈, 콩, 허브, 발효식품이 식탁의 중심을 이루었다. 고대 로마에서는 가룸 같은 발효 생선 소스로 감칠맛을 더했고, 중세 이후에는 허브와 향신료를 이용해 음식의 풍미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토마토는 기존 재료와는 조금 달랐다. 하나의 식재료 안에 산미와 단맛, 수분감과 감칠맛이 함께 들어 있었다. 복잡한 조미료를 많이 사용하지 않아도 음식에 선명한 맛을 더할 수 있었다. 특히 따뜻하고 햇빛이 풍부한 남부 이탈리아에서 토마토 재배가 확대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토마토는 시장과 가정의 주방으로 들어왔고, 밀을 주식으로 삼던 지역의 음식들과 만나기 시작했다.
토마토는 올리브오일을 만나 완성됐다
토마토의 진짜 매력은 올리브오일과 만났을 때 더욱 선명해졌다.
토마토의 산미는 올리브오일의 풍부한 지방감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올리브오일은 토마토의 향과 맛을 부드럽게 이어준다. 토마토의 수분과 산미, 올리브오일의 지방과 향이 서로 다른 역할을 하면서 하나의 균형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여기에 마늘과 바질, 오레가노, 소금 정도만 더해도 충분하다. 재료가 많지 않은데도 깊은 맛이 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탈리아 음식의 중요한 철학이 탄생했다. 많이 넣어서 맛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재료가 가진 본래의 맛을 살리고 서로 조화시키는 것이다.

가난한 주방에서 세계의 맛으로
이 조합이 남부 이탈리아에서 특히 중요했던 이유도 있다. 역사적으로 남부의 서민들에게 값비싼 고기나 고급 식재료는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밀, 토마토, 올리브오일, 마늘과 허브는 비교적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토마토와 올리브오일은 소박한 밀 음식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파스타는 토마토소스를 만나 더욱 풍부한 음식이 되었고, 피자 역시 토마토와 치즈, 올리브오일을 통해 지역의 풍미를 담아내는 음식으로 발전했다.
마리나라 피자와 마르게리타 피자가 대표적이다. 재료는 놀라울 만큼 단순하다. 하지만 그 단순함 속에서 토마토의 산미, 치즈의 부드러움, 올리브오일의 향, 밀 반죽의 구수함이 층을 이룬다. 이것은 단순히 가난한 사람들이 적은 재료로 끼니를 해결한 이야기가 아니다. 제한된 조건 속에서 재료의 가능성을 최대한 끌어낸 결과였다.
이탈리아 음식의 힘은 '덜어냄'에 있다
오늘날 세계인이 사랑하는 이탈리아 음식의 매력은 어쩌면 이때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이탈리아 음식은 화려한 재료를 끊임없이 더하기보다 좋은 재료 몇 가지를 선택하고 그 맛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토마토는 토마토답게, 올리브오일은 올리브오일답게 존재한다. 서로의 맛을 덮어버리는 대신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다. 그래서 토마토와 올리브오일의 조합은 단순한 식재료의 만남이 아니다. 그것은 이탈리아 주방이 음식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꾼 사건이었다.
남아메리카에서 건너온 토마토는 이탈리아에서 새로운 삶을 얻었다. 그리고 올리브오일을 만나면서 파스타와 피자, 소스와 빵을 변화시켰다. 결국 이탈리아는 토마토를 발명한 나라가 아니라, 토마토를 하나의 문화로 만들어낸 나라가 된 셈이다.
오늘도 접시 위에서 붉은 토마토와 황금빛 올리브오일이 만난다. 너무 익숙해서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운 조합이다.
하지만 그 한 방울의 올리브오일과 한 조각의 토마토 뒤에는 수백 년의 시간이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의외로 단순하다.
좋은 음식은 많은 재료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재료가 서로를 알아보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것.
이것이 토마토와 올리브오일이 이탈리아 주방에 남긴 가장 오래된, 그리고 여전히 유효한 혁명이다.

[이탈리아 전문 칼럼니스트]
김성욱 대표
(뽀모도로플러스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