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조현병을 가진 열네 사람이 그린 그림 속에는 저마다 다른 얼굴과 나무, 가족, 새와 나비가 등장한다. 같은 주제와 같은 명화를 바라보면서도 화면에 남긴 선과 색, 형상은 모두 다르다.
한마음의 집이 개최하는 집단미술 심리상담 작품전 ‘딜루전의 미술’은 조현병 당사자들이 2026년 봄부터 약 5개월 동안 참여한 미술작업을 선보이는 전시다.
앞선 보도가 전시의 사회적 의미와 조현병에 대한 인식 개선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후속보도에서는 작품에 담긴 구체적인 이야기와 표현방식을 살펴본다.
전시 작품은 크게 ‘나라는 거울’, ‘가족이라는 거울’, ‘은유된 나무’, ‘명화라는 거울’로 구성된다. 작품들은 참여자들이 자신의 모습과 가족관계, 오래된 기억, 고통과 희망을 그림이라는 언어로 표현한 기록이다.
타인의 눈에 비친 나와 스스로 만들어가는 나
‘나라는 거울’의 첫 작업은 자화상이다.
참여자들은 타인의 시선에 의해 사진으로 포착된 자신의 모습을 밑그림으로 삼아 그 위에 스스로 선택한 색을 입혔다. 어떤 이는 주어진 윤곽선을 조심스럽게 따라갔고, 어떤 이는 처음의 선이 보이지 않을 만큼 자신의 색으로 화면을 덮었다. 경계를 넘지 않기 위해 오랜 시간 머무른 사람도 있었고, 주어진 선을 지우거나 그 너머에 새로운 얼굴을 그린 사람도 있었다.
같은 방식으로 시작했지만 완성된 열네 장의 자화상은 서로 다른 표정과 색채를 보여준다. 붉은색과 초록색을 강하게 사용한 얼굴이 있는가 하면, 얼굴 일부를 흰색으로 남기거나 배경과 인물을 같은 계열의 색으로 연결한 작품도 있다.
이 작업에서 자화상은 단순히 외모를 재현한 그림에 머물지 않는다. 타인의 눈에 비친 ‘나’와 내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나’ 사이에서 자신의 모습을 다시 선택하고 구성한 결과이다.
점토로 만든 ‘서 있는 사람’도 주목된다. 참여자들은 제공된 뼈대 위에 자신만의 사람을 만들었다. 한 인물은 지팡이에 의지해 간신히 서 있고, 또 다른 인물은 노란 옷을 입고 당당하게 서 있다. 장갑과 목도리를 두른 사람, 앉은 자세로 화면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서 있는 자세와 몸의 균형은 모두 다르지만, 각각의 인물은 자기 자리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견디고 있다. 전시 설명은 이를 두고 “누군가는 기대어 서고, 누군가는 잠시 주저앉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다시 삶을 견디며 서 있다”고 전한다.
가족은 가까움과 멂이 함께 존재하는 공간
‘가족이라는 거울’에서는 가족화(KFD)와 새 둥지화가 소개된다.
가족화에서 중요한 것은 인물의 숫자만이 아니다. 가족 구성원 사이의 물리적 거리와 심리적 거리, 인물의 크기, 서로를 바라보는 방향, 화면 속 빈 공간이 각자의 가족 경험을 드러낸다.
어떤 작품에는 자신만 홀로 떨어져 있고, 어떤 작품에서는 가족들이 손을 잡고 있다. 가족 구성원이 한 공간에 모여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그림이 있는가 하면, 가족보다 가구와 방의 구조가 더 크게 표현된 그림도 있다.
이는 가족이 서로를 지지하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와 반대로 작용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작품 속에는 가족 안에서 자신이 머물 자리를 찾으려는 참여자들의 서로 다른 방식이 담겨 있다.
‘새 둥지화’에는 어미새와 아기새가 등장한다. 먹이를 물어다 주는 커다란 어미새와 먹이를 기다리는 아기새, 위태로운 나뭇가지 위에 놓인 둥지, 자세히 살펴야 겨우 보이는 작은 새 등이 화면을 채운다.
전시 엽서에 실린 대표 이미지에는 보라색 바탕 위로 큰 어미새가 세 마리의 새끼에게 먹이를 건네는 모습이 담겼다. 노란색의 둥근 공간과 어미새의 부리, 먹이를 기다리는 새끼들의 움직임이 강한 대비를 이룬다.
누군가에게 둥지는 자신을 품어주는 안전한 곳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언젠가 떠나야 할 곳이거나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공간이다. 어미새와 아기새가 만들어내는 서로 다른 풍경은 참여자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어머니와 가족의 기억을 불러낸다.
나무 한 그루에 담긴 자아와 상처
‘은유된 나무’ 작업에서 나무를 그린다는 것은 곧 자신을 그리는 일이다.
땅속으로 향하는 뿌리와 세상을 향해 뻗는 가지 사이에 자아가 표현된다. 줄기는 굵거나 가늘고, 곧게 서 있거나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가지가 풍성한 나무가 있는가 하면, 가지 없이 굵은 줄기만 화면을 가득 채운 나무도 있다. 열매와 잎, 옹이와 잘린 줄기 역시 각자의 경험을 드러내는 요소가 된다.
작품 설명에 따르면 ‘빨강’ 참여자의 나무에는 든든한 지면과 풍성한 가지가 강조돼 있다. ‘주황’ 참여자는 둥근 수관과 다섯 개의 뾰족한 가지를 그렸으며, ‘노랑’ 참여자의 나무는 줄기 아래가 잘리지 않은 채 가지 끝이 열려 있고 줄기의 선이 중간중간 끊겨 있다.
‘남색’ 참여자의 나무는 수관이 종이의 테두리에 갇혀 있지만 그 안에서 가지가 왕성하게 뻗어 있다. ‘연보라’ 참여자의 나무에는 열두 개의 작은 사과와 목화솜처럼 둥근 수관이 나타난다.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줄기와 과장된 나뭇잎이 인상적인 나무도 있다.
동일한 주제로 그렸지만 화면 속 나무는 어느 하나 같지 않다. 전시자료는 “한 그루의 나무 앞에서 우리는 나무가 아니라 자신도 잘 모르는 한 사람을 만난다”고 설명한다.
같은 명화에서 출발한 서로 다른 질서
‘명화라는 거울’에서는 몬드리안과 칸딘스키, 쿠사마 야요이, 장 뒤뷔페, 구스타프 클림트,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을 각자의 방식으로 다시 해석했다.
몬드리안의 ‘컴포지션’을 재해석한 그림에서는 빨강·노랑·파랑의 색면과 검은 윤곽선이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어떤 참여자는 검은 선을 두껍고 강하게 표현했고, 다른 참여자는 검은 선을 생략하거나 경계를 흐리게 만들었다. 같은 색과 같은 구도에서 시작했지만 화면을 나누고 채우는 방식은 모두 달랐다.
정해진 질서 안에서 누군가는 경계를 단단히 만들고, 누군가는 경계를 열거나 지웠다. 몬드리안의 질서는 열네 사람의 손을 거치며 열네 개의 새로운 질서로 바뀌었다.
칸딘스키의 ‘음악’을 바탕으로 한 작품에서는 선과 색, 형태의 자유로운 리듬이 두드러진다. 한 사람은 원형을 강조했고, 다른 사람은 산과 배, 길처럼 보이는 형상을 화면 속에서 발견했다. 전시 엽서에 수록된 추상작에도 검은 선과 원, 삼각형, 격자 구조가 서로 교차하며 독특한 화면을 형성한다.
정해진 답이 없는 선과 색의 리듬 속에서 참여자들은 자신에게 익숙한 형상을 발견하고,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만들어냈다.
나비에 담긴 변화와 앞으로 가고 싶은 곳
쿠사마 야요이의 ‘나비’를 소재로 한 작업에는 참여자들이 각자 떠올린 나비가 등장한다.
애벌레에서 나비로 변화하는 과정은 참여자들의 삶과 연결됐다. 변화가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오랜 머뭇거림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나눈 뒤 각자는 서로 다른 색과 무늬의 나비를 그렸다.
어떤 작품에는 나비와 꽃, 나무가 함께 등장하고, 어떤 작품에는 가족과 친구가 배치됐다. 전시 엽서의 대표작에는 초록·파랑·보라·노랑빛의 나비 다섯 마리가 점선으로 표현된 길을 따라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날고 있다.
이 나비들은 과거와 현재를 지나 앞으로 향하고 싶은 장소와 관계를 상징한다. 작품 속 변화는 완성된 결론이라기보다 자신이 가고 싶은 방향을 찾아가는 과정에 가깝다.
해체된 얼굴에서 다시 발견한 자신의 시선
장 뒤뷔페의 ‘자화상’을 재해석한 작업에서는 얼굴을 해체하고 다시 구성하는 과정이 나타난다.
참여자들은 같은 얼굴에서 출발했지만 누군가는 선과 색을 더했고, 누군가는 많은 부분을 덜어냈다. 눈과 코, 입은 각기 다른 위치와 크기로 다시 놓였으며, 얼굴을 나누는 선 역시 저마다 다른 질서를 만들었다.
한 작품에서는 눈이 얼굴의 중앙을 벗어나 있고, 다른 작품에서는 검은색과 붉은색 선이 얼굴을 여러 조각으로 나눈다. 또 다른 얼굴은 한쪽 눈과 입을 크게 강조하고 나머지 부분을 단순화했다.
외형을 그대로 모방하는 과정에서 벗어나 자신이 본 것 가운데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지울 것인지를 선택한 것이다. 얼굴을 다시 그리는 일은 결국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다시 구성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어머니”, “결코 어머니는 아니다”
클림트의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을 통해서는 자신에게 의미 있는 여성을 떠올리는 작업이 진행됐다.
누군가는 작품 속 여성에게서 어머니를 떠올렸다. 반면 다른 참여자는 “결코 어머니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연예인을 떠올린 사람도 있었고, 오래전 사랑했던 사람을 기억한 사람도 있었다.
그림 속 인물은 같지만 그 앞에 선 사람의 기억과 경험에 따라 전혀 다른 인물이 불려 나온 것이다. 화려한 황금빛 화면과 장식적인 무늬 안에 참여자마다 다른 관계와 감정이 덧입혀졌다.
고흐의 얼굴이 자신의 아픔을 말하는 거울로
반 고흐의 ‘자화상’은 참여자들이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하도록 이끄는 계기가 됐다.
고흐의 삶과 정신적 고통에 관한 이야기는 참여자들이 지나온 힘겨운 시간으로 이어졌다. 누군가는 군 복무 시절의 고통을 이야기했고, 누군가는 정신증을 경험하며 지나온 시간을 꺼내놓았다. 가족과의 갈등과 인생의 외로움을 이야기한 사람도 있었다.
참여자들은 고흐의 심리를 상상하며 작품을 해석하는 한편, 그의 얼굴을 통해 자신의 아픔을 바라보고 말하기 시작했다. 고흐의 자화상은 다른 화가의 얼굴인 동시에 자신의 상처를 비춰주는 거울이 된 것이다.
“왜 이렇게 그렸을까”보다 먼저 물어야 할 질문
최동표 한마음의 집 원장은 “이번 작품들을 ‘망상을 그린 그림’으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며 “참여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이미지로 옮기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억과 감정을 색과 선, 형태로 표현해 온 시간의 기록”이라고 말했다.
최 원장은 “작품 앞에서 ‘왜 이렇게 그렸을까’라고 묻기보다 ‘이 사람은 이 그림을 그리며 무엇을 견디고 있었을까’, ‘이 그림은 자신의 세계를 살아가는 데 어떤 도움이 되었을까’를 먼저 생각해 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작품은 한편으로 참여자가 겪은 증상의 흔적일 수 있지만, 동시에 자신에게 주어진 세계를 견디고 이해하며 다시 배열해 보려 한 삶의 흔적”이라며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이 진단명보다 먼저 그림을 그린 한 사람을 만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림을 해석하기보다 한 사람을 만나는 전시
‘딜루전의 미술’에 등장하는 자화상과 가족, 나무와 새, 나비와 명화는 하나의 정답으로 해석할 수 없다.
전시가 관람객에게 요청하는 것은 작품을 진단하거나 평가하는 일이 아니다. 참여자가 무엇을 선택하고 남겼는지, 어떤 선을 지우고 어떤 색을 덧입혔는지 천천히 바라보는 일이다.
꽃과 잎, 손글씨가 함께 배치된 전시 엽서의 작품도 정해진 미술문법보다 참여자 자신의 감각과 문장으로 화면을 구성한다.
열네 사람은 그림을 통해 자신의 자리를 화면 안에 마련했다. 관람객이 그 흔적을 따라가는 과정은 조현병이라는 진단명을 넘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삶을 견디며 살아가는 한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 될 것이다.
‘딜루전의 미술’은 9월 1일부터 6일까지 이음갤러리에서 열린다.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9월 1일 오후 2시에 개막해 9월 6일 오후 5시에 전시를 마무리한다. 한마음의 집이 주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