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욱의 푸드칼럼] 토마토4. 좋은 토마토보다, 요리에 맞는 토마토

토마토는 저 마다의 용도가 있다.

지역의 토양이 빚은 서로 다른 맛

전통에서 산업과 현대의 식탁으로

마르게리타 핏자(Pizza Margherita)

앞선 글에서는 베수비오 화산의 토양과 강한 햇빛, 그리고 오랜 재배 경험이 빚어낸 산 마르차노와 피엔노로 델 베수비오를 통해 이탈리아 토마토의 가치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토마토 문화를 몇 가지 유명한 품종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탈리아에서는 오래전부터 ‘가장 좋은 토마토’라는 하나의 기준보다 ‘어떤 요리에 가장 잘 어울리는가’를 중요하게 여겨왔다. 토마토의 크기와 당도, 산미, 과육의 질감과 수분 함량에 따라 어울리는 요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토마토의 가치는 품종 자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품종이 가진 특성을 어떻게 요리에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소스용 토마토의 기준, 산 마르차노

 

이탈리아 토마토의 대명사를 꼽는다면 단연 산 마르차노(San Marzano)다. 캄파냐 지역의 화산성 토양에서 재배되는 이 플럼형 토마토는 길쭉한 형태와 단단한 과육, 비교적 낮은 수분 함량이 특징이다. 

 

씨와 젤의 점액질이 적고 과육이 탄탄해 가열했을 때 물이 지나치게 많이 생기지 않는다. 산미와 감칠맛의 균형도 좋다. 생으로 먹었을 때보다 열을 가했을 때 풍미가 더욱 깊어지고, 조리 후에도 토마토 특유의 맛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산 마르차노는 나폴리 피자의 토핑과 파스타 소스처럼 토마토를 요리의 중심에 놓는 음식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왔다.

 

하지만 산 마르차노가 모든 요리에 가장 좋은 토마토라는 뜻은 아니다. 토마토가 가진 개성을 그대로 살려야 하는 요리에서는 오히려 다른 품종이 더 적합할 수 있다.

 

지역의 유산, 피엔노로와 코르바리노

 

피엔노로 델 베수비오(Pomodorino del Piennolo del Vesuvio)는 산 마르차노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베수비오 지역의 삶을 보여준다. 전통적으로 토마토를 줄기째 묶어 매달아 보관했으며, 단단한 껍질과 높은 저장성 덕분에 수확철이 지난 뒤에도 식탁에 올릴 수 있었다.

 

이 토마토는 강한 향과 뚜렷한 산미가 특징이다. 오래 보관한 뒤에도 풍미가 쉽게 무너지지 않아 브루스케타나 파스타, 생선 요리처럼 토마토의 개성을 살리는 음식에서 독특한 존재감을 발휘한다. 단순한 농산물을 넘어 지역의 기후와 저장 문화, 생활 방식이 함께 담긴 토마토인 셈이다.

 

같은 캄파냐 지역의 코르바리노(Corbarino)는 조금 다른 매력을 지닌다. 작고 길쭉한 형태의 이 토마토는 강한 향과 선명한 산미를 가지고 있어, 토마토를 오래 끓여 농축하기보다 짧게 조리해 본연의 맛을 살리는 데 잘 어울린다. 특히 조개나 새우 같은 해산물 요리에서는 토마토의 산미와 향이 해산물의 섬세한 풍미를 살려준다.

 

산업과 현대의 식탁, 로마·다테리노·파키노

 

이탈리아 토마토를 이야기하면서 산업적인 품종을 빼놓을 수도 없다. 20세기 미국의 토마토 가공산업이 요구한 특성에 맞춰 육성 및 보급된 품종인 로마(Roma) 토마토는 균일한 크기와 단단한 과육, 가공에 적합한 특성 덕분에 세계적으로 널리 재배되어 온 대표적인 가공용 토마토다. 통조림 토마토와 소스, 퓌레, 페이스트 등 다양한 제품의 원료로 활용되면서 토마토를 일상적인 식재료로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리가 보통 홀토마토라고 부르는 대부분의 제품이 바로 이 로마 품종이다.

 

전통적인 품종이 지역의 역사와 미식을 상징한다면, 로마는 토마토 산업의 효율성과 실용성을 보여준다. 산 마르차노와 같은 전통적인 품종이 풍미와 조리 특성으로 평가받는다면 로마 품종은 균일성, 수율, 생산성, 가공 적합성이라는 산업이 요구한 효율성을 위해 만들어진 토마토인 셈이다.

 

한편 최근에는 토마토 본연의 향과 신선함을 강조하는 품종도 주목받고 있다. 다테리노(Datterino)는 작은 대추 모양의 과실에 높은 당도와 과일 같은 향을 지녀 가볍게 조리하거나 생으로 사용할 때 장점이 두드러진다.

 

시칠리아의 파키노(Pachino) 역시 흥미로운 사례다. 이스라엘에서 도입된 품종이 시칠리아의 강한 햇빛과 해풍, 독특한 재배 환경을 만나 지역을 대표하는 토마토로 자리 잡았다. 결국 토마토의 맛은 품종의 유전적 특성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품종이 어디에서 어떻게 자라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

 

토마토 품종  - AI 생성

 

토마토는 품종이 아니라 ‘역할’이다

 

이처럼 이탈리아의 토마토 문화를 들여다보면 품종 사이의 서열을 정하는 것보다 각각의 개성을 이해하고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깊고 진한 소스를 만들 것인가, 토마토 자체의 향과 산미를 살릴 것인가, 해산물의 섬세함을 돋보이게 할 것인가. 혹은 안정적인 품질과 생산성을 선택할 것인가. 

 

각각의 질문에 따라 선택해야 할 토마토도 달라진다.

 

결국 좋은 토마토란 가장 비싼 토마토도, 가장 유명한 토마토도 아니다. 내가 만들고자 하는 요리에 가장 잘 어울리는 토마토가 진정 좋은 토마토다.

 

다음 글에서는 품종을 넘어 토마토의 품질을 결정하는 요소를 살펴본다. 같은 품종이라도 왜 맛과 가격이 달라지는지, 브릭스(Brix)와 산도, 테루아, 그리고 수확 시기가 토마토의 맛과 가치를 어떻게 바꾸는지 알아보자.

 

 

[이탈리아 전문 칼럼니스트]

김성욱 대표

(뽀모도로플러스39)

작성 2026.08.26 15:25 수정 2026.08.27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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