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된 책을 햇볕과 바람에 말리는 중국의 전통 ‘쇄서(晒书)’가 현대적인 문화행사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단순히 책의 습기를 없애는 보존 작업을 넘어 전시와 공연, 디지털 체험을 결합한 시민 참여형 문화예술 행사로 발전하는 모습이다.
지난 8월 8일 중국 닝샤후이족자치구의 닝샤도서관에서는 ‘산천육수 고지함정(山川毓秀 故纸含情)’을 주제로 ‘2026년 중화전통쇄서’ 행사가 시작됐다. ‘아름다운 산천이 인재와 문화를 기르고, 오래된 종이에는 깊은 정이 담겨 있다’는 뜻이다.
행사장에서는 닝샤도서관이 보관해 온 고서 《서하기사본말(西夏纪事本末)》 등이 시민들에게 공개됐다. 시를 주제로 한 전시와 사서의 고서 해설, 작가와의 대화, 책 시장, 무형문화유산 체험, 어린이 고전 필사와 상황극도 함께 마련됐다. 평소 수장고 안에서 쉽게 만날 수 없었던 고서가 시민 곁으로 나온 것이다.
‘쇄서’는 우리말로 ‘책을 볕에 쬐다’라는 뜻이다. ‘폭서(曝书)’라고도 부른다. 종이로 만든 옛날 책은 습기를 많이 머금으면 곰팡이가 생기고 벌레의 피해를 보기 쉽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여름철 무더위가 시작되면 책을 꺼내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펼쳐 놓았다. 습기를 없애고 벌레를 막아 책을 오래 보존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이 전통은 선진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의 쇄서는 책을 실제 햇볕에 말리는 데만 머물지 않는다. 시민들에게 귀중한 옛 책을 보여주고 그 안에 담긴 역사와 이야기를 설명하는 문화행사의 의미가 더 커졌다. 중국의 중화전통쇄서대회는 2019년 시작된 뒤 전국적인 고서 보호와 독서문화 행사로 자리 잡았다.
올해 7월 저장성 사오싱에서 열린 도시 주 행사에서는 명나라 판본 《월절서(越绝书)》를 비롯한 지역 고서들이 공개됐다. 《월절서》에는 오나라와 월나라의 경쟁, 고대 지역의 산천과 성곽, 물산에 관한 기록이 담겨 있다. 전문가들은 책의 판본과 소장 경로뿐 아니라 옛 문헌이 오늘날 지역문화를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는지도 설명했다.
특히 이번 행사는 전통과 디지털 기술을 연결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저장성은 《국가진귀고적》 디지털 자료실을 공개하고, 첫 단계로 고서 이미지 12만 면을 무료로 열었다. 이용자는 검색 기능을 이용해 집에서도 귀중한 판본을 찾아보고 필요한 부분을 살펴볼 수 있다. 혼합현실 기술을 활용해 《사고전서》의 역사와 내용을 체험하는 프로그램도 선보였다.
중국의 쇄서는 한국의 ‘포쇄(曝曬)’와 매우 닮아 있다. 조선시대에는 사고에 보관한 《조선왕조실록》과 중요 문서를 정기적으로 꺼내 햇볕과 바람에 말렸다. 관리들은 책의 상태와 빠진 책이 없는지를 확인하고 그 과정도 기록했다. 중국과 한국 모두 책을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후대에 전해야 할 공동의 기억으로 여겼던 것이다.
다만 오늘날의 활용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는 실록 포쇄 의식을 재현하거나 사고와 기록유산을 소개하는 행사가 주로 역사교육과 문화유산 보존에 초점을 맞춘다. 중국은 전국 도서관을 중심으로 고서 전시, 시장, 공연, 어린이 체험과 디지털 열람을 한 행사 안에 묶는 경향이 강하다. 한국도 포쇄 전통을 실록에만 한정하지 않고 지역 고문서, 문집, 족보, 옛 교과서 등과 연결한다면 시민이 참여하는 새로운 기록문화 축제로 발전시킬 수 있다.
쇄서의 본래 목적은 낡은 책을 지키는 일이었다. 그러나 책을 수장고에 안전하게 보관하는 것만으로 문화가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책을 보고, 이야기를 듣고, 직접 글을 써보며 그 가치를 이해할 때 옛 기록은 오늘의 문화가 된다. 햇볕에 펼쳐진 오래된 책 한 권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다음 세대를 이어주는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