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가 기증한 조선 문화유산 2건 국내로…‘백자청화이진검묘지’·‘순종예제예필현판’ 공개

이광사가 아버지 위해 쓴 백자 묘지 10장 완질…드문 예서 글씨 남아

세자 순종이 명성황후 생일 축하하며 지은 글도 현판으로 전해

조선 후기 서예와 대한제국 왕실문화 보여주는 두 유물 국내 환수

해외에 있던 조선시대 문화유산 두 건이 형제의 기증을 통해 국내로 돌아왔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2026년 5월 8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백자청화이진검묘지’와 ‘순종예제예필현판’을 처음 공개했다. 한 점은 조선 후기 명필 이광사가 아버지의 생애를 백자판에 적은 묘지이고, 다른 한 점은 세자 시절 순종이 명성황후의 생일을 맞아 직접 짓고 쓴 글을 새긴 왕실 현판이다.

‘순종예제예필현판’(사진=국가유산청,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제공)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 기증을 통해 국내로 환수한 ‘백자청화이진검묘지’와 ‘순종예제예필현판’을 공개했다.

 

두 유물의 기증자는 형제다. 형 김창원 씨가 ‘백자청화이진검묘지’를, 동생 김강원 씨가 ‘순종예제예필현판’을 각각 기증했다. 국외재단은 두 형제의 기증을 함께 기리기 위해 5월 8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합동기증식을 열었다.

 

이광사가 아버지를 위해 쓴 백자 묘지

‘백자청화이진검묘지’는 조선 후기 예조판서 등을 지낸 문신 이진검(1671~1727)의 생애와 가계를 기록한 묘지다.

 

1745년 제작됐으며 푸른 안료로 글씨를 쓴 백자판 10장으로 구성된다. 보도자료는 10장이 모두 남아 있는 완질이라고 설명했다. 각 장은 약 19×14×1.4㎝ 크기다.

 

묘지는 고인의 생애와 행적 등을 적어 무덤에 함께 묻은 기록물이다. 이 묘지의 앞면에는 이진검의 생애와 행적, 가계와 장례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고, 뒷면에는 묘의 위치와 방향 등 풍수 관련 기록이 남아 있다.

 

첨부된 전체 사진에서는 흰 백자판 위를 빼곡히 채운 청색 글씨와 함께 10장의 묘지가 한 질로 전해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글은 이덕수, 글씨는 아들 이광사

묘지의 글은 이진검의 아들 이광사의 요청으로 이조판서를 지낸 이덕수가 지었다. 글씨는 아들 이광사가 직접 썼다.

 

이광사(1705~1777)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서예가로 알려져 있다. 현재 전하는 그의 글씨는 행서와 초서를 아우르는 행초서가 많은 편인데, 이 묘지 앞면은 드물게 예서로 쓰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국외재단은 간결한 획과 독특한 글자 구성이 기존에 전하는 이광사의 예서와도 다른 서풍을 보여 서예사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묘지 마지막 장에는 ‘아들 광사 근서(男 匡師 謹書)’, 곧 ‘아들 광사가 삼가 쓰다’라는 글이 남아 있어 제작 경위도 확인할 수 있다.

 

 ‘백자청화이진검묘지' (사진=국가유산청,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제공)

백자판에 남은 한 집안의 기록

보도자료에 수록된 묘지 번역문에는 이진검의 가계와 생애도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이진검의 본관은 전주이며, 정종의 열 번째 아들 덕천군의 후손으로 기록돼 있다. 증조부 이경직, 조부 이정영, 부친 이대성 등 집안 내력과 자녀들에 관한 내용도 함께 적혔다.

 

아들 이광사가 이덕수에게 아버지의 묘문을 부탁했고, 이덕수가 글을 지은 뒤 이광사가 직접 글씨를 썼다는 점에서 이 묘지는 조선 후기 한 문인 집안의 가족사와 서예 문화를 함께 보여주는 자료다.

 

세자 순종이 어머니 명성황후 위해 쓴 현판

함께 환수된 ‘순종예제예필현판’은 1892년 무렵 제작된 나무 현판이다. 크기는 세로 58㎝, 가로 124㎝다.

 

현판에 새긴 글은 1892년 고종 29년 음력 9월 24일부터 26일까지 열린 진찬에서 당시 세자였던 순종이 직접 짓고 쓴 것이다.

 

진찬은 조선시대 국가에 경사가 있을 때 궁중에서 베풀던 연회를 말한다.

 

현판의 글에는 어머니 명성황후의 생일을 축하하고 고종과 명성황후의 장수를 기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같은 글이 『진찬의궤』와 『순종어제곤성홍류』 등 관련 문헌에도 수록돼 있다고 국외재단은 밝혔다.

 

“서왕모의 반도꽃이 다시 피어나고”

보도자료에 실린 번역문에 따르면 세자 순종은 이 글에서 명성황후의 생일을 축하하며 고종과 명성황후에게 장수의 잔을 올리는 뜻을 담았다.

이어 서왕모의 반도꽃과 만년의 축수 잔, 궁중 음악과 백복을 소재로 왕실의 장수와 경사를 기원했다.

 

글씨는 해서체로 쓰였다. 국외재단은 순종의 글씨가 정제된 해서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먹색 바탕에 녹색 글씨…테두리는 꽃무늬로

현판의 조형도 눈길을 끈다.

 

사변형 목판의 위쪽에는 용머리 모양, 아래쪽에는 봉황 머리 모양의 장식을 두었다. 글씨는 목판에 양각으로 새겼으며 바탕은 먹색, 글자는 녹색으로 칠했다.

 

국외재단은 현판의 글씨를 녹색으로 칠한 사례가 흔하지 않으며, 귀한 글귀임을 나타낸 상징적 표현으로 평가했다.

 

테두리에는 청색 연꽃과 붉은색·분홍색 접시꽃, 녹색 초엽 문양을 그려 넣었다. 첨부된 세부 사진에서는 붉은 바탕을 따라 연꽃과 접시꽃, 잎무늬가 반복적으로 배치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같은 용·봉황 장식과 채색 문양은 이 현판이 왕실에서 사용된 위계 높은 현판 형식을 따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생의 네 번째 기증, 형도 뜻 함께해

두 유물의 국내 환수 과정에는 형제의 기증이 있었다.

 

‘순종예제예필현판’을 기증한 김강원 씨는 이번까지 모두 네 차례 국외재단에 문화유산을 기증했다.

 

앞서 2021년 ‘백자청화김경온묘지’, 2022년 ‘백자철화이성립묘지’, 2024년 ‘조현묘각운 시판’을 기증했으며 이번에 순종의 현판을 추가로 내놓았다.

 

김강원 씨는 보도자료를 통해 순종의 글씨가 담긴 왕실 유물이라는 점을 고려해 국내 기증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형 김창원 씨도 동생의 기증에 뜻을 같이해 ‘백자청화이진검묘지’를 기증했다. 그는 옛글씨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이광사의 글씨로 작성된 묘지를 발견했으며, 조선시대 명필의 글씨를 개인이 소장하기보다 국가에 기증하는 편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기증 취지를 설명했다.

 

박정혜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이사장은 두 형제의 기증이 국외 문화유산의 연구와 보존, 활용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번에 돌아온 두 유물은 성격은 다르지만 가족을 향한 글이라는 공통점도 지닌다. 한 점은 아들이 아버지의 생애를 기록하기 위해 쓴 묘지이고, 다른 한 점은 세자가 어머니의 생일을 축하하고 부모의 장수를 기원하며 지은 글을 새긴 현판이다.

 

조선 후기 한 문인 집안의 가족 기록과 대한제국으로 이어지는 왕실의 의례 문화가 각각 백자와 나무라는 서로 다른 재료 위에 남아 오늘날 다시 국내에서 만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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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6.08.13 14:00 수정 2026.08.1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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