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의혹 제기, ASML의 정면 반박: 반도체 패권 경쟁 다시 격화

미국, EUV 장비 중국 유입 가능성 제기: 네덜란드 "사실무근" 반박

DUV 규제 확대 움직임에 ASML·네덜란드 정부 긴장 고조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속 반도체 공급망 갈등 새 국면

미국과 네덜란드가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를 둘러싸고 충돌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중국으로 최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가 유입됐을 가능성을 제기하자, 장비 제조사인 ASML과 네덜란드 정부는 즉각 사실이 아니라며 반박했다. 이번 논란은 단순한 장비 이동 여부를 넘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과 기술 패권 경쟁을 둘러싼 갈등이 더욱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미국이 제기한 의혹의 중심에는 ASML이 생산하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가 있다. 미국 상무부의 하워드 러트닉 장관은 최근 ASML 경영진에게 EUV 장비 한 대가 중국으로 유입됐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장비는 첨단 반도체 제조 공정의 핵심 설비로,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서 가장 높은 기술력을 상징하는 장비 가운데 하나다.

 

EUV 노광장비는 극자외선을 활용해 반도체 웨이퍼에 초미세 회로를 형성하는 설비다. 기존 심자외선(DUV) 장비보다 훨씬 짧은 파장의 빛을 이용하기 때문에 7나노미터 이하 공정에서 사실상 필수 장비로 여겨진다. 첨단 AI 반도체와 고성능 서버용 반도체 생산에 반드시 필요한 장비라는 점에서 국가 전략 기술로도 분류된다.

 

ASML은 미국의 우려에 대해 즉각 선을 그었다. 회사 측은 지금까지 중국에 EUV 장비를 판매하거나 공급한 사실이 없으며, EUV 전용 모듈이나 핵심 부품 역시 중국으로 출하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모든 장비는 엄격한 관리 체계 아래 운영되고 있어 불법 이전 가능성은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네덜란드 정부 역시 ASML의 설명에 힘을 실었다. 정부는 현재 전 세계에서 운용 중인 EUV 장비 약 340대의 위치를 모두 관리하고 있으며 중국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최신 EUV 장비는 길이 약 15미터, 무게 180톤에 달하는 초대형 설비다. 가격도 약 6,000억 원에 이르는 데다 설치와 운용 과정에서 전문 인력과 지속적인 유지보수가 필요해 장비 전체가 비밀리에 이동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럼에도 미국이 의혹을 공개적으로 제기한 배경에는 수출 통제를 더욱 강화하려는 정책적 의도가 있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미국은 이미 2019년부터 ASML의 EUV 장비가 중국으로 수출되는 것을 차단해 왔다. 최근에는 규제 범위를 확대해 DUV 장비까지 제한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중국 내 기존 장비에 대한 유지보수 서비스와 부품 공급까지 제한하는 방안도 미국 의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ASML에도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 시장은 회사의 핵심 매출 기반 가운데 하나다. 지난해 중국에서 발생한 DUV 장비 매출은 ASML 전체 매출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규제가 더욱 확대될 경우 기업 실적은 물론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제기된다.

 

네덜란드 정부 역시 미국의 규제 확대에 공개적으로 우려를 나타냈다. 네덜란드 통상장관은 미국의 국내 법률이 동맹국 기업에까지 사실상 적용되는 상황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는 미국의 대중국 수출 규제가 자국 기업의 영업 활동까지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일각에서는 미국의 강도 높은 봉쇄 전략이 오히려 중국의 기술 자립을 앞당길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중국 연구진은 ASML 출신 엔지니어들이 참여한 프로젝트를 통해 EUV 시제품을 개발하고 시험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상용 수준의 반도체 생산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중국은 2028년 이후 자체 개발한 EUV 장비를 생산 공정에 투입하는 것을 목표로 연구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번 논란은 단순한 장비 이동 여부를 둘러싼 공방을 넘어 세계 반도체 산업의 주도권 경쟁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은 첨단 기술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수출 통제를 확대하고 있으며, 네덜란드는 자국 핵심 산업 보호와 기업 경쟁력 유지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중국 역시 장기적인 기술 자립을 국가 전략으로 추진하면서 독자 기술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반도체를 둘러싼 경쟁은 이제 국가 안보와 산업 전략이 결합된 글로벌 기술 경쟁의 핵심 무대로 자리 잡고 있으며, 향후 각국의 정책 변화에 따라 세계 공급망과 반도체 시장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EUV 장비를 둘러싼 논란은 단순한 사실관계 확인을 넘어 첨단 기술을 둘러싼 국제 전략 경쟁의 성격을 띠고 있다. 미국은 기술 우위를 유지하기 위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으며, 네덜란드는 자국 산업 보호에 무게를 두고 있다. 중국은 기술 자립을 가속화하며 대응하고 있다. 향후 반도체 산업은 기술력뿐 아니라 외교와 통상 정책이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에 더욱 깊이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작성 2026.07.27 18:40 수정 2026.07.27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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