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사믹 식초를 접할 때 많은 이들이 던지는 질문이 있다. “왜 어떤 제품은 특별한 날 한 방울씩 아껴 써야 할 만큼 고가이고, 어떤 제품은 매일의 샐러드에 부담 없이 두를 수 있을까?”
이 차이를 이해하려면 이탈리아 모데나가 걸어온 두 가지 길을 들여다봐야 한다. 하나는 타협 없이 전통을 고수한 DOP(Aceto Balsamico Tradizionale di Modena DOP)이고, 다른 하나는 발사믹의 저변을 세계인의 식탁으로 넓힌 IGP(Aceto Balsamico di Modena IGP)다.

기다림의 결정체 DOP
DOP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단어는 단연 ‘시간’이다. 이해를 돕자면, 전통 발사믹 식초의 문화는 한국의 ‘씨간장’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예전 우리네 가문이 씨간장을 대를 이어 지켜내며 고유의 맛과 집안의 역사를 보존했듯, 모데나의 귀족과 명망 있는 가문들 역시 발사믹 숙성통을 세대를 이어 관리하며 가문의 가장 귀한 자산으로 여겼다.
과거 모데나에서는 딸이 태어나면 발사믹 숙성통을 짜고 숙성을 시작해, 훗날 시집갈 때 지참금으로 물려주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그들이 물려준 것은 단순한 식초 한 병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세월을 견뎌낸 한 가문의 정성과 손길, 그리고 기억 그 자체였다.
전통 발사믹 식초 DOP는 오직 모데나 지역의 포도 원액만을 오랜 세월 다양한 나무통에 옮겨 담으며 완성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역할은 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자연이 만드는 숙성의 변화를 지켜보고 보살피는 일뿐이다. 수십 년의 세월을 버텨낸 DOP는 단순한 조미료를 넘어, ‘기다림’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담아낸 하나의 예술품이다.
식탁의 지평을 넓힌 현대적 승화 IGP
반면 IGP는 이러한 전통의 가치를 더 많은 이들이 일상에서 누릴 수 있도록 확장한 방식이다. 엄격한 테두리 안에서 원료와 생산 프로세스의 효율을 다듬어 안정적인 품질과 폭넓은 활용성을 확보했다. 덕분에 우리는 매일의 식탁 위에서 모데나의 풍미를 부담 없이 다채롭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DOP는 우수하고 IGP는 열등한 것일까? 희소성과 숙성 기간, 원료의 기준만 놓고 본다면 DOP를 최고의 위치에 두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두 제품의 우열을 단편적으로 가릴 수는 없다. 두 방식은 서로 경쟁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목적과 철학을 품고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DOP가 수십 년을 견디며 한 영역의 가치를 극대화한 ‘장인의 방식’이라면, IGP는 그 가치를 대중의 식탁으로 확장해 낸 ‘현대적 승화’다.

두 철학이 만나는 모데나의 위대한 유산
특별한 순간, 세월이 축적된 깊은 미학을 오감으로 경험하고 싶다면 DOP는 대체 불가능한 선택이다. 반면 일상의 요리 속에서 발사믹의 매력적인 신맛과 향을 경쾌하게 즐기고 싶다면 IGP야말로 최선의 답안이다.
결국 핵심은 ‘어느 등급이 더 우수한가’가 아니다. 그 병 속에 담긴 생산자의 철학을 이해하는 것에 있다. DOP와 IGP는 각기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지향점은 같다. 하나는 전통을 보존하기 위해 시간을 선택했고, 다른 하나는 그 전통을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하기 위해 변화를 선택했다.
오늘 밤, 우리가 요리 위에 발사믹 식초를 떨어뜨리는 것은 단순히 둘 중 하나를 고르는 행위가 아니다. 수백 년 동안 시간과 대중성을 두고 고뇌해 온 모데나의 위대한 가치를 함께 소유하는 일이다.

[이탈리아 전문 칼럼니스트]
김성욱 대표
(뽀모도로플러스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