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틀렸다고 하지 않는 수업

실패한 접시를 지적하기보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함께 찾아보는 것이 심경은식 수업의 시작이었다

정답을 알려주는 교수보다 학생이 스스로 이유를 발견하고 다시 도전할 수 있게 기다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요리를 잘하게 만드는 것만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교육이라는 것을 배우다

 

 

 


28화. 틀렸다고 하지 않는 수업


학생이 접시를 들고 내 앞에 섰다.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접시 위 음식은 조금 흐트러져 있었고, 소스의 농도도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학생이 먼저 말했다.
“교수님, 저 틀렸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접시보다 학생의 얼굴을 먼저 바라봤다.


틀렸다.
짧고 분명한 말이다.
시험에서는 필요할 때도 있다.


정답과 오답을 구분해야 하는 상황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요리를 배우는 시간에 그 말이 항상 가장 좋은 답일까.


나는 조금 생각하다가 말했다.
“틀렸다고 하기 전에, 어디서 달라졌는지 한번 찾아볼까?”


학생이 나를 바라봤다.
아마 예상했던 대답과 달랐던 모양이다.


나는 접시를 가까이 가져왔다.
“처음부터 이야기해봐요. 불은 어느 정도였어요?”
그때부터 수업이 다시 시작됐다.


나는 학생 시절을 오래 기억한다.
잘하고 싶었고,
실수하기 싫었다.


특히 누군가 지켜보고 있을 때 실수하면 더 속상했다.
집에서는 자연스럽게 하던 것도 실습실에 들어가면 손이 굳었다.


한 번 잘못하면 그다음 동작도 자꾸 흔들렸다.
‘또 틀리면 어떡하지.’
그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오는 순간 손은 더 무거워졌다.


그래서 학생이
“틀렸죠?”
라고 묻는 마음을 나는 조금 안다.


사실 그 질문 안에는 다른 말이 숨어 있다.
‘저 못하는 거죠?’
‘저는 안 되는 건가요?’


때로는 그런 두려움이 함께 들어 있다.
요리교육에는 정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덜 익힌 고기를 괜찮다고 할 수는 없다.


위생을 지키지 않은 조리 과정을 그냥 넘어가서도 안 된다.
안전과 기본 조리 원칙은 분명히 가르쳐야 한다.


나는 그것을 흐리고 싶지 않다.
다만 잘못된 결과와 사람 자체를 같은 것으로 묶고 싶지 않을 뿐이다.


음식이 실패했다고 해서 학생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오늘 한 번 잘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 학생이 요리를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 차이를 수업에서 분명하게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결과보다 과정을 먼저 본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어디에서 달라졌는지.
재료의 상태가 어땠는지.


불이 너무 셌는지.
시간을 놓쳤는지.
순서를 바꾸었는지.
간을 확인하지 않았는지.


하나씩 살피다 보면 대부분 이유가 있다.
요리는 참 정직하다.


결과에는 과정이 남아 있다.
그래서 실패한 접시도 좋은 교재가 된다.


어느 날 학생이 전을 부쳤다.
겉은 너무 진하게 익었는데 속은 충분히 익지 않았다.


학생은 접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망했어요.”
나는 팬을 가리켰다.


“불을 처음부터 어떻게 했어요?”
“센 불이요.”
“왜 센 불로 했어요?”


학생이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빨리 익히려고요.”


나는 웃었다.
“그러면 오늘 알게 된 게 하나 있네.”
학생도 따라 웃었다.


“센 불이 무조건 빠른 건 아니네요.”
“맞아요.”
그 한 번의 실패로 학생은 불을 외운 것이 아니라 불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순간이 좋다.
정답을 먼저 알려주는 것은 빠르다.


“불을 중약불로 하세요.”
한마디면 끝난다.
하지만 학생이 왜 그런지 이해하지 못하면 다음 음식에서 다시 같은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가능하면 질문을 한다.
“왜 그렇게 됐을까?”
“다른 방법은 없을까?”


“다음에는 무엇을 바꾸고 싶어요?”
질문은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하지만 답을 스스로 찾은 학생의 눈빛은 다르다.


다음에는 기억할 가능성도 더 높다.
교수라는 자리에 처음 섰을 때는 많이 설명해야 좋은 수업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최대한 많이 알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수업을 계속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좋은 수업은 교수가 많이 말하는 시간이 아니라 학생이 많이 생각하는 시간일 수도 있었다.
교수의 설명이 끝나는 순간 수업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아, 그래서 그랬구나.’
라고 이해하는 순간 수업이 완성되는 것이다.


플레이팅에서도 비슷하다.
학생이 완성한 접시가 어딘가 어색해 보일 때가 있다.


예전 같으면 바로 말했다.
“이걸 여기로 옮겨요.”
“이 장식은 빼요.”


그러면 접시는 금방 좋아진다.
하지만 그건 누구의 접시일까.


내가 고친 접시가 된다.
학생은 다음번에 또 나를 찾는다.


그래서 이제는 접시를 함께 바라본다.
“여기서 제일 먼저 뭐가 보여?”
학생이 대답한다.


“고명이요.”
“음식보다 고명이 먼저 보여도 괜찮을까?”
그때 학생이 스스로 장식을 덜어낸다.


그 접시는 학생의 것이 된다.
나는 학생이 자신의 선택에 이유를 갖기를 바란다.


왜 이 색을 사용했는지.
왜 이 모양으로 썰었는지.
왜 이 접시를 골랐는지.


왜 이 양만큼 담았는지.
정답처럼 외워서 하는 요리는 어느 순간 한계가 생긴다.


상황이 달라지면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하지만 이유를 이해하면 응용할 수 있다.


그것이 교육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학생은 실습할 때마다 자꾸 내 눈치를 봤다.


조리 중에도,
플레이팅 중에도,
마지막 접시를 들고 올 때도.


“교수님, 이거 맞아요?”
나는 어느 날 말했다.
“오늘은 나한테 묻기 전에 네가 먼저 결정해봐.”


학생은 아주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요?”
“응.”


“틀리면요?”
“그럼 왜 틀렸는지 보면 되지.”
그 말이 학생에게 조금 낯설었던 모양이다.


한참 접시를 바라보더니 스스로 음식의 위치를 바꾸었다.
그리고 말했다.
“저는 이게 더 나은 것 같아요.”


나는 그 말을 듣고 기뻤다.
결과보다 그 문장이 좋았다.


‘저는 이게 더 나은 것 같아요.’
학생이 자기 판단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사람에게도 기다리는 것은 쉽지 않다.
답이 보이기 때문이다.


손을 조금만 움직여주면 금방 해결된다.
하지만 내가 대신 해주는 순간 학생에게 필요한 경험 하나가 사라질 수 있다.


그래서 가끔은 답답해도 기다린다.
손이 어디로 갈지 보고,
학생이 어떤 판단을 하는지 본다.


잘못된 선택을 할 때도 있다.
그러면 다시 묻는다.
“해보니까 어때?”


학생이 직접 결과를 본다.
그 경험이 설명보다 오래 남을 때가 많다.


요리에는 실패를 완전히 없앨 수 없다.
재료는 매번 다르다.
수분 함량도 다르고,


온도도 다르고,
조리 환경도 달라진다.
같은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도 결과가 다르게 나올 수 있다.


그래서 요리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능력은 실패하지 않는 능력만이 아니다.
결과가 예상과 달라졌을 때 다시 판단하는 능력도 중요하다.


나는 학생들이 그 힘을 가졌으면 한다.
한번은 소스가 너무 묽어진 학생이 있었다.


표정이 금방 어두워졌다.
“다시 해야 돼요?”
나는 먼저 물었다.


“왜 묽어진 것 같아요?”
학생이 조리과정을 떠올렸다.
“수분을 덜 날린 것 같아요.”


“그럼 지금 할 수 있는 건?”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팬을 잡았다.
소스를 천천히 졸였다.


완벽한 결과는 아니었지만 처음보다 훨씬 나아졌다.
학생은 놀란 얼굴이었다.
“살릴 수도 있네요.”


나는 말했다.
“요리도 그래요. 중간에 이상하다고 바로 포기하지 마요.”
그 말을 하고 나서 나도 잠시 생각했다.


삶과 참 비슷했다.
나도 인생에서 여러 번
‘이건 늦었어.’


‘이건 안 될 것 같아.’
라고 생각했다.


다시 요리를 배우려 할 때도 그랬다.

하지만 다시 시작했다.


그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학생에게

“한 번 실패했다고 끝난 건 아니야.”


라고 말할 수 있다.
그건 교과서에서 배운 문장이 아니다.

 

 

 


 

 

내가 살아보며 알게 된 말이다.
그래서 나는 학생에게 너무 쉽게 ‘소질이 없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처음부터 손이 빠른 사람이 있고,
시간이 필요한 사람도 있다.


한 번 보고 바로 따라 하는 학생이 있고,
열 번 반복한 뒤에 갑자기 이해하는 학생도 있다.
성장은 사람마다 속도가 다르다.


특히 요리는 몸으로 익히는 부분이 많다.
머리로 이해했다고 손이 바로 따라주는 것은 아니다.


손에는 손의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학생은 한 학기 내내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손이 특별히 빠른 것도 아니었고,
플레이팅이 화려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매시간 한 가지씩 고쳐왔다.


지난주에 지적받은 부분은 다음 주에 거의 반복하지 않았다.
학기 마지막 접시를 보면서 놀랐다.


처음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때 다시 느꼈다.
사람의 성장은 어느 날 갑자기 보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작은 수정이 오래 쌓인 결과라는 것을.


나는 그래서 수업에서 ‘어제보다 나아진 것’을 많이 본다.
절대적인 기준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변화도 중요하다.


첫날보다 칼을 편하게 잡는지.
지난번보다 음식의 크기가 일정해졌는지.
이제는 스스로 간을 확인하는지.


플레이팅 전에 한 걸음 물러나 접시를 보는지.
그런 변화들이 쌓이면 학생도 자신감을 얻는다.
자신감은 요리에서 꽤 중요하다.


자신감이 없으면 손이 자꾸 멈춘다.
무엇을 하나 결정할 때마다 확인을 받으려고 한다.
반대로 자신감이 지나치면 기본을 놓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둘 사이의 균형을 찾아주고 싶다.
“너는 할 수 있어.”
라고 말해주되


“그러니까 확인은 하지 않아도 돼.”
라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자신감과 꼼꼼함은 함께 갈 수 있다.


실패한 학생을 야단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학생이 다음번에 같은 실수를 줄이는 것이다.
화를 내면 그날의 실수는 강하게 기억할 수 있다.


하지만 요리를 좋아하던 마음까지 함께 위축될 수도 있다.
나는 그것이 아깝다.


잘못은 정확히 알려주되 다시 해보고 싶은 마음은 남겨주고 싶다.
물론 모든 상황에서 부드럽게만 말할 수는 없다.


위생이나 안전과 관련된 부분은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칼을 위험하게 사용하는 것.


교차오염의 위험이 있는 행동.
식재료를 부적절하게 보관하는 것.
이런 것은 단호해야 한다.


학생을 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호함과 모욕은 다르다.
정확하게 말하면서도 사람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나는 그 선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왜 이것도 못해?”
라는 말보다


“이 부분은 반드시 고쳐야 해요. 이유는 이거예요.”
라고 말하는 것이 낫다.
학생도 무엇을 바꿔야 할지 알 수 있다.


가르치는 사람의 기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학습할 내용을 전달해야 한다.
그것이 교수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교수가 되고 나서 말의 힘을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학생은 교수의 말을 생각보다 오래 기억한다.


나는 아주 가볍게 한 말인데 학생은 몇 달 뒤에도 기억할 수 있다.
좋은 말도 그렇고 상처가 되는 말도 그렇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다.


특히 학생이 실수했을 때 나오는 첫마디를 조심하려 한다.
그 순간 학생은 이미 자신의 실패 때문에 마음이 작아져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학생이 접시를 망쳤다고 생각해 눈물이 날 것 같은 얼굴로 서 있던 적이 있었다.
나는 말했다.


“울 일 아니야. 음식이야. 다시 만들면 돼.”
학생이 잠깐 멈췄다가 웃었다.
나도 웃었다.


정말 그렇다.
음식은 다시 만들 수 있다.


그런데 그 순간 사람의 마음을 너무 세게 꺾어버리면 다시 세우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나는 음식보다 사람을 먼저 살피고 싶다.


그렇다고 기준을 낮추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학생을 믿기 때문에 다시 하게 한다.


“괜찮아.”
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괜찮아. 그런데 이 부분은 다시 해보자.”
까지 가야 한다.


위로만 있으면 교육이 아니고,
지적만 있어도 좋은 교육은 아니다.
둘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


나는 그 균형을 지금도 배우는 중이다.
학생마다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학생은 분명하게 이야기해주는 것이 편하다.
어떤 학생은 먼저 이유를 설명해주어야 마음을 연다.


누군가는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모든 학생에게 같은 말투와 같은 방법을 사용할 수는 없다.


요리에서 사람을 살피듯 교육에서도 학생을 살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완벽한 교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오늘 그 말은 조금 다르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생각하는 날도 있다.


학생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부분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럴 때면 다음 수업에서 바꿔본다.


교수도 실패하고,
교수도 고친다.
어쩌면 내가 학생에게 가르치는 방식과 똑같다.


가르치면서 나도 계속 배우고 있다는 사실이 참 재미있다.
학생은 요리를 배우고,
나는 학생을 가르치는 방법을 배운다.


학생이 실패한 접시에서 이유를 찾듯 나 역시 수업에서 잘되지 않았던 부분을 돌아본다.
‘왜 학생들이 이 부분에서 많이 어려워했지?’


‘설명이 너무 빨랐나?’
‘시범을 한번 더 보여줘야 할까?’
나에게도 수업은 매번 실습이다.


학생들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도 많다.
예상하지 못한 질문.
새로운 표현.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플레이팅.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맛과 색.
그런 것들을 보면서 나의 생각도 넓어진다.


그래서 교수와 학생의 관계가 일방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느낀다.
나는 알려주고,
또 배운다.


처음에는 좋은 교수가 되려면 모든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꼭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모르는 것을 정확하게 인정하고 함께 답을 찾아가는 것도 좋은 수업이 될 수 있다.
“그건 나도 정확히 확인해볼게.”
그 말을 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아는 척해서 잘못된 정보를 주는 것보다 훨씬 낫다.
요리에는 수많은 변수와 방법이 있다.


특히 한식은 지역과 집안마다 방식이 다르다.
한 가지 방법만 정답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음식도 많다.


그래서 학생에게도 말한다.
“기본 원리는 정확히 배우되, 다른 방법이 왜 존재하는지도 생각해보세요.”
요리는 정답 하나를 암기하는 과목이 아니라 판단을 배우는 분야이기도 하다.


28화를 쓰면서 생각해보니 내가 꿈꾸는 수업의 모습은 참 단순하다.
학생이 실수할 수 있는 교실.
질문할 수 있는 교실.


다시 해볼 수 있는 교실.
그리고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는 교실.
나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다.


학생이
“교수님, 이거 틀렸죠?”
라고 물으면 이제 나는 쉽게


“네, 틀렸어요.”
라고 끝내지 않는다.
대신 함께 본다.


어디에서 달라졌는지.
어떻게 바꾸면 되는지.
그리고 다음에는 무엇을 기억하면 좋을지.


그 과정이 끝나면 학생은 실패 하나를 가지고도 배운 것이 생긴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교육이다.


완벽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틀리지 않는 사람을 만드는 것도 아니다.
틀렸을 때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것.


나는 그 힘이 요리뿐 아니라 살아가는 데에도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요리하는 사람은 계속 판단해야 한다.


재료가 다르면 방법을 바꿔야 하고,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오면 수정해야 한다.


레시피에 없는 일이 생겨도 해결해야 한다.
그러니 실패를 무서워해서는 오래 가기 어렵다.


실패를 분석하고 다음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교실에서부터 그 연습을 하면 좋겠다.
나 역시 다시 꿈을 시작했던 사람이다.


늦었다고 생각했고,
자신감이 부족했고,
실수하는 것이 두려웠다.


그런 내가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잘한 날만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실패해도 다시 해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생들에게도 그 경험을 전하고 싶다.
완성된 접시는 언젠가 치워진다.


하지만 접시를 만들며 배운 태도는 오래 남을 수 있다.
왜 실패했는지 바라보는 습관.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마음.


다시 시도하는 용기.
모르는 것을 질문하는 태도.
나는 그것이 학생에게 남았으면 좋겠다.


수업이 끝난 뒤 한 학생이 찾아와 말했다.
“교수님, 예전에는 실수하면 너무 무서웠는데 이제는 이유부터 생각하게 돼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참 기뻤다.


아마 그 학생은 내 수업에서 꽤 중요한 것을 가져간 것 같다.
요리 하나보다 더 오래 쓸 수 있는 것을.
나는 앞으로도 학생의 실패한 접시를 많이 볼 것이다.


모양이 무너진 음식.
간이 맞지 않는 음식.
생각했던 플레이팅과 다른 접시.


그 모든 순간에 완벽한 말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기억하고 싶다.


접시의 실패를 사람의 실패로 만들지 않는 것.
학생에게는 아직 다음 접시가 있다.


다음 수업이 있고,
다음 연습이 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전혀 다른 모습이 나올 수도 있다.


내 역할은 그 가능성을 너무 빨리 닫지 않는 것이다.
틀렸다고 하지 않는 수업.


정확히 말하면 틀린 것을 없는 척하는 수업은 아니다.
틀렸다는 말에서 끝나지 않는 수업이다.


왜 틀렸는지 보고, 무엇을 배웠는지 찾고, 다시 해보게 하는 수업.
나는 그런 수업을 하고 싶다.


오늘도 학생의 접시 앞에 선다.
조금 아쉬운 부분이 보인다.
나는 바로 손대지 않는다.


학생을 바라보고 묻는다.
“어디가 제일 마음에 걸려?”
학생이 접시를 본다.


그리고 잠시 뒤 자신의 손으로 하나를 고친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본다.
아마 그 순간에도 학생은 요리만 배우고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자기 판단을 믿는 법.
실패를 다시 바라보는 법.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법을 함께 배우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면 좋은 수업이다.


경은의 한마디
“실패한 접시를 보고 ‘틀렸어’라고 끝내기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를 함께 찾아가는 것, 나는 그 과정이 진짜 배움이라고 믿는다.”


오늘의 핑크 한스푼
오늘 무언가 잘되지 않았다면 바로
‘나는 못해.’
라고 결론 내리지 말아보세요.


대신 질문을 하나 바꿔보세요.
“어디에서 달라졌을까?”
그리고 고칠 수 있는 것 한 가지만 찾아보세요.


모든 실패를 한 번에 해결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를 이해하고,
하나를 고치고,
다시 한번 해보면 됩니다.


나 자신에게 다시 시도할 기회를 주는 마음을 한스푼 더해보세요.
오늘의 실수가 내일의 실력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작성 2026.10.06 21:10 수정 2026.10.06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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