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세계 요리 여행은 붉은 사막과 고대도시 페트라로 유명한 요르단으로 향한다.
오늘의 주인공은 커다란 쟁반 위에 얇은 빵을 깔고 쌀을 수북하게 올린 뒤 큼직한 양고기를 얹어 내는만사프(Mansaf)다.
처음 보면 양고기 덮밥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만사프에서 가장 중요한 맛은 고기도 쌀도 아니다.
바로자미드(Jameed)다.
자미드는 양이나 염소의 발효 유제품을 소금과 함께 농축한 뒤 단단하게 말려 만든 전통 식재료다. 건조된 자미드는 단단한 덩어리 형태로 오래 보관할 수 있어 과거 이동이 잦았던 베두인들의 생활에 특히 적합했다. 물에 다시 불리면 진하고 새콤하면서 짭조름한 소스가 되며, 이 소스가 만사프 특유의 맛을 만든다.
사막에서는 ‘우유를 말린다’
만사프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먼저 사막의 생활환경을 떠올려야 한다.
오늘날처럼 냉장시설이 없던 시대, 양과 염소에서 얻은 우유를 그대로 오래 보관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유를 발효시키고 소금을 더한 뒤 수분을 제거했다.
부드러운 유제품이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는 단단한 자미드로 변한 것이다.
필요할 때 물에 불려 소스로 만들 수 있었으니 이동생활을 하던 사람들에게 매우 실용적인 저장식이었다.
한식에서 장이나 젓갈처럼 시간이 식재료의 맛과 보존성을 바꾸었다면, 사막에서는 우유를 말리는 지혜가 한 나라의 대표 음식으로 이어진 셈이다.
만사프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양고기나 염소고기를 향신료와 함께 부드럽게 익힌 뒤 자미드를 물에 풀어 만든 요구르트 소스에서 다시 끓인다.
커다란 둥근 쟁반에는 아주 얇은 전통 빵을 먼저 깐다.
그 위에 쌀이나 지역에 따라 불구르를 올리고, 큼직하게 익힌 고기를 얹는다. 마지막에는 아몬드나 잣 같은 견과류를 뿌리기도 한다.
유네스코는 만사프를 양·염소고기와 유제품이 풍부한 농목축 생활양식과 연결된 음식으로 설명한다. 유네스코 무형유산 기구
그런데 이 음식의 진짜 특별함은 조리법보다 먹는 방식에 있다.
식탁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
전통적인 만사프는 한 사람씩 접시에 담아 먹기보다 커다란 쟁반 하나를 여러 사람이 둘러싸고 먹는다.
유네스코 자료에서는 한 쟁반 주변에 대략 다섯 명에서 일곱 명이 앉기도 하며, 전통적으로 오른손을 이용해 먹는 문화가 있다고 소개한다. 오늘날에는 접시와 숟가락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오른손으로 밥과 고기를 조금 모은 뒤 손가락을 이용해 한입 크기로 만들어 먹는다.
처음 보면 단순한 식사법처럼 보이지만, 같은 쟁반을 함께 나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당신은 우리와 같은 식탁에 앉은 사람이다.’
그 자체가 환대의 표현이 된다.

결혼식에도, 귀한 손님이 올 때도 만사프
요르단에서 만사프는 일상식으로도 먹지만 특히 결혼식과 명절, 가족 행사와 같은 큰 모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손님에게 만사프를 대접하는 것은 단순히 음식을 많이 차려주는 일이 아니다.
고기와 쌀을 넉넉하게 준비해 커다란 쟁반을 내놓는 것은 손님을 존중하고 환영한다는 뜻을 담는다.
때문에 만사프는 요르단 사람들에게 음식과 동시에 사회적 관계를 표현하는 수단이 됐다.
유네스코 역시 만사프의 준비 과정 자체가 하나의 사회적 행사라고 설명한다. 사람들이 음식을 만들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소식을 공유하며 공동체 관계를 이어간다는 것이다.
‘누가 처음 만들었을까?’
만사프 역시 정확한 발명자나 탄생 연도를 특정하기 어렵다.
어느 유명 요리사가 새로운 메뉴로 개발했다기보다 사막과 목축생활 속에서 고기와 유제품을 저장하고 나누어 먹던 방식이 세대를 거치며 발전한 음식으로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또 오늘날 익숙한 쌀을 풍성하게 사용하는 형태도 오랜 세월 주변 지역의 음식문화와 교류하면서 변화해온 모습이다.
그래서 만사프를 한 시점에서 갑자기 태어난 음식이라고 설명하기보다는 베두인 생활문화와 요르단 사회가 함께 만들어온 음식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자미드의 강한 향이 만드는 독특한 맛
만사프를 처음 먹는 사람에게 가장 낯선 것은 자미드 소스일 수 있다.
진한 발효 향과 짭조름한 맛, 은근한 산미가 느껴진다.
하지만 부드럽게 익힌 양고기와 담백한 쌀, 얇은 빵이 이 강한 소스를 받아내면서 균형이 만들어진다.
쟁반 아래에 깔린 빵은 고기와 자미드 소스를 흡수한다.
마지막에는 진한 육즙과 유제품의 풍미가 밴 빵까지 먹게 된다.
요리의 어느 한 부분도 버려지지 않는 것이다.
2022년, 세계가 인정한 만사프 문화
2022년 유네스코는‘요르단의 알 만사프, 축제 연회와 그 사회·문화적 의미’를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특정 레시피 하나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만사프를 준비하고 손님에게 대접하며, 함께 먹고, 그 조리 지식과 풍습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문화 전체가 인정받았다.
조리법은 특히 가족 안에서 세대를 통해 전승되고, 오늘날에는 요리학교와 대학도 그 전통을 이어가는 데 참여한다고 유네스코는 설명한다.
결국 만사프의 가치는 비싼 재료에 있지 않다.
우유를 오래 보존해야 했던 사막 사람들의 지혜가 자미드를 만들었고, 그 자미드가 양고기와 만나 한 솥의 음식이 됐다.
그리고 그 음식이 커다란 쟁반에 담기면서 사람들을 하나의 자리로 불러 모았다.
만사프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는 어쩌면 자미드도 양고기도 아닐지 모른다. 한 쟁반을 둘러싸고 함께 음식을 나누는 ‘사람’이 마지막 재료다.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든 저장식품이 오늘날 요르단의 환대와 공동체를 상징하는 음식이 되었다는 점에서, 만사프는 음식이 어떻게 한 사회의 문화가 되는지를 보여주는 특별한 한 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