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한 사이에 주고받은 메시지였다.”
직장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늦은 밤 반복적으로 사적인 메시지를 보내고 개인 사진까지 요구했다면 이 설명만으로 성희롱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수원시 인권센터가 최근 발간한 ‘2023-2025 수원시 인권센터 결정례집’에는 이처럼 공공영역에서 실제 발생한 성희롱과 직장 내 괴롭힘, 갑질, 스토킹, 연령차별 등을 어떻게 판단했는지 보여주는 주요 결정례 10건이 담겼다.
“친한 사이였다”는 해명이 성희롱 판단을 바꾸지는 않았다
공개된 사례 가운데 하나는 수원시 소속 팀장이 같은 팀 부하 직원에게 보낸 사적인 카카오톡 메시지와 관련된 사건이다.
연합뉴스가 결정례집을 토대로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해당 팀장은 늦은 밤 부하 직원에게 외모와 호감을 표현하는 메시지를 수십 차례 보내고 개인 사진도 요구했다. 당사자는 친한 사이에서 주고받은 메시지라는 취지로 해명했지만, 수원시 인권센터는 해당 행위를 직장 내 성희롱으로 판단했다.
이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성희롱 여부를 행위자의 친밀감이나 의도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점이다.
직장이라는 관계, 상급자와 하급자 사이의 지위, 발언과 메시지의 내용, 반복성, 상대방이 처한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
“70세 이상은 어렵다”…나이가 업무능력의 기준이 될 수 있나
또 다른 결정례는 통장 재위촉 과정에서 발생한 연령차별 문제다.
70대 지원자는 단독으로 재위촉에 지원했지만 선정되지 않았다. 공개된 결정례에 따르면 모집 공고에는 연령 제한이 없었지만 심사 과정에서 나이가 고려됐다.
수원시 인권센터는 표면적으로 종합점수 미달을 이유로 했더라도 연령을 기준으로 지원자를 구별하고 심사에 영향을 미쳤다면 평등권 침해에 해당하는 차별행위로 판단했다.
앞서 국가인권위원회가 노인의 날 성명에서 ‘연령주의’를 경계한 것과도 맞닿는 사례다.
나이가 있다는 사실과 특정 업무를 수행할 능력이 없다는 판단은 같은 말이 아니다. 연령 자체가 아니라 실제 직무수행 능력과 객관적인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사건보다 중요한 것은 ‘왜 그렇게 판단했는가’
이번 결정례집의 가치는 단순히 인권침해 사건 10건을 공개했다는 데만 있지 않다.
수원시 인권센터는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처리한 사건 가운데 인권침해 결정례 9건과 ‘수원시 지방 공공기관 직장 내 괴롭힘 대응시스템 개선을 위한 권고’ 1건을 선정했다.
각 사례에는 결정 내용과 이유, 신청 요지, 신청인과 피신청인의 주장, 인정 사실, 판단과 결론 등이 담겼다. 공무원·공무직·임기제공무원·사회복무요원·공공기관 종사자·민원인 등 공공행정 현장에서 실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관계도 포함됐다.
따라서 “이 행동이 기분 나빴는가”에 머무르지 않고 어떤 사실을 확인하고 어떤 기준을 적용해 인권침해 여부를 판단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인권교육도 이제 ‘하지 마세요’에서 판단기준으로
공공기관의 인권교육과 성희롱·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에서도 실제 결정례의 활용 가치는 크다.
“성희롱하지 마십시오”, “갑질하지 마십시오”라는 당위적인 교육만으로는 막상 사건이 발생했을 때 판단하기 어렵다.
친밀한 관계였다는 주장이 나오면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나이를 이유로 업무기회를 제한하면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상급자의 행위와 조직의 책임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처럼 구체적인 판단기준을 학습할 필요가 있다.
수원시 인권센터도 이번 결정례집을 전국 공공기관과 인권 관계 기관 등에 배부해 인권침해 예방과 인권 연구의 참고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결정례집은 수원시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다.
인권침해를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건이 발생한 뒤 처벌 수위를 외우는 것만이 아니다.
비슷한 상황이 생겼을 때 조직 구성원이 스스로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그럴 의도가 없었다”가 아니라 “상대방의 권리와 관계의 힘까지 고려했는가.”
실제 결정례가 조직에 필요한 이유는 바로 그 판단의 기준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