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경은 교수의 요리에세이 『오늘도 핑크 한스픈』 26화. 처음 교수님이라 불린 날

다시 학생이 되어 앞치마를 묶었던 경은이가 어느 날 누군가의 배움을 책임지는 자리에 서다

“교수님”이라는 낯선 호칭 앞에서 설렘보다 먼저 떠오른 것은 내가 처음 배움을 시작했던 순간들이었다

잘하는 법만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이 자기 가능성을 발견하도록 기다려주는 스승이 되고 싶었다

 

 

 

26화. 처음 교수님이라 불린 날

 

처음 누군가가 나를 향해 말했다.
“교수님.”
순간 뒤를 돌아볼 뻔했다.


분명 나를 보고 하는 말인데도 그 호칭이 바로 내 것처럼 들리지 않았다.
교수님.


참 많이 들어본 말이었다. 내가 학생일 때 누군가를 부르던 말이었고, 배움을 주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붙이던 이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말이 내 이름 앞에 붙었다.


“심경은 교수님.”
조금 낯설었고, 조금 쑥스러웠으며, 이상할 만큼 가슴이 뛰었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지만 마음속에서는 오래전의 장면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다시 공부를 시작해도 될까 망설이던 날.
처음 학생의 자리에 앉았던 날.


칼을 다시 잡았던 순간.
실습이 마음처럼 되지 않아 속상했던 날.
모르는 것을 질문하기가 괜히 부끄러웠던 순간.


그 모든 시간을 지나 내가 이제 누군가의 질문을 받는 자리에 서 있었다.
인생은 참 신기했다.


나는 다시 학생이 되었던 시간을 잊지 않는다.
그 시절의 나는 자신감보다 걱정이 더 많았다.


‘내가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다른 사람보다 배우는 속도가 느리면 어떡하지.’


‘모르는 것을 물어봐도 괜찮을까.’
교실에 앉아 있으면서도 마음속으로 수많은 질문을 했다.


그래서 학생들의 얼굴을 보면 그때의 내가 보일 때가 있다.
처음 칼을 잡고 잔뜩 긴장한 학생.


설명을 들었지만 이해하지 못해 주변 눈치를 보는 학생.
옆 사람은 잘하는데 자신만 뒤처지는 것 같아 점점 말이 없어지는 학생.


그 모습을 보면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나도 그런 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강의실 앞에 섰을 때는 생각보다 많이 긴장했다.
요리를 하는 것과 요리를 가르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내 손이 할 수 있는 것을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했다.
나는 이미 익숙해서 생각하지 않고 하는 동작도 학생에게는 처음이었다.


칼을 잡는 방법부터 설명해야 했고, 왜 그렇게 잡아야 하는지 알려줘야 했다.
재료를 어떻게 써는지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왜 그 크기로 써는지,
왜 이 순서로 넣는지,
왜 지금 불을 줄여야 하는지,


왜 한 번 더 맛을 확인해야 하는지.
내가 알고 있던 것을 말로 풀어내야 했다.


그 순간 알았다.
가르친다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 아니라, 상대가 이해할 수 있도록 다시 생각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설명을 많이 하면 잘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빠짐없이 이야기하고 싶었다.


재료 이야기,
칼질 이야기,
불 조절,


조리 순서,
플레이팅까지.
하지만 학생들의 표정을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꺼번에 하면 오히려 아무것도 남지 않을 수 있었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보다 학생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먼저 살펴야 했다.


그때부터 수업에서도 사람을 보기 시작했다.
요리를 만들 때 먹는 사람의 얼굴을 보았던 것처럼, 이제는 가르칠 때 배우는 사람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학생의 눈은 참 솔직하다.
이해했을 때의 눈빛이 있고,
모르고 있지만 아는 척할 때의 표정도 있다.


불안한 손도 보이고,
자신감이 생긴 손도 보인다.


처음에는 칼을 잡은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어깨도 올라가 있고,
동작 하나를 할 때마다 주변을 살핀다.


그러다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손에서 힘이 빠진다.
칼 소리도 조금씩 일정해진다.


그 작은 변화를 보면 참 기쁘다.
아마 학생은 자신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옆에서 처음부터 지켜본 사람은 안다.
그래서 가르치는 일에는 기다림이 필요했다.


어느 날 한 학생이 말했다.
“교수님, 저는 손이 너무 느려요.”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예전의 내가 떠올랐다.
나도 남의 속도를 보며 불안해했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말했다.
“오늘은 어제보다 나아졌잖아요.”
학생은 잠시 자기 손을 바라봤다.


나는 덧붙였다.
“빠른 것보다 정확한 게 먼저예요. 속도는 나중에 따라와요.”


그 말을 학생에게 해주면서 동시에 과거의 나에게도 말해주는 것 같았다.
교수가 되고 나서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잘하는 학생’에 대한 기준이었다.


처음부터 손이 빠른 학생도 있다.
한 번 설명하면 금방 따라 하는 학생도 있다.


모양을 예쁘게 만드는 감각이 뛰어난 학생도 있다.
물론 그런 재능은 눈에 잘 띈다.


하지만 수업을 오래 하다 보면 다른 학생들도 보인다.
처음에는 서툴지만 매시간 조금씩 달라지는 학생.


틀렸던 부분을 다음 시간에는 고쳐오는 학생.
수업이 끝난 뒤에도 질문하는 학생.
한 번 실패한 음식을 집에서 다시 만들어보는 학생.


나는 그런 학생에게 자꾸 마음이 간다.
왜냐하면 성장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게 배웠다.
처음부터 뛰어난 사람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생활 속에서 요리를 해왔지만 전문적인 기술은 다시 배워야 했다.
잘되지 않는 것을 여러 번 반복했고, 이해되지 않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그래서 학생이 한번 실패했다고 해서 쉽게 판단하고 싶지 않다.
한 번의 접시가 그 학생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의 실패가 내일의 실력이 될 수도 있다.
처음 교수님이라고 불렸을 때는 ‘내가 무엇을 알려줘야 할까’를 많이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질문이 조금 달라졌다.
‘학생들이 내 수업에서 무엇을 가져가면 좋을까.’


레시피 하나?
칼질 기술?
예쁜 플레이팅?


물론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었으면 했다.


요리를 실패해도 다시 해볼 수 있다는 마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는 즐거움.
사람에게 음식을 만드는 책임.


재료를 함부로 다루지 않는 태도.
그리고 자신도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
그런 것까지 함께 가져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학생들에게 완벽한 접시만 보여주고 싶지는 않다.
가끔은 내가 실수했던 이야기도 한다.


처음 배울 때 어려웠던 부분도 말한다.
잘되지 않아 여러 번 반복했던 경험도 들려준다.

왜냐하면 전문가가 처음부터 전문가였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처음이 있다.

교수에게도 있었고,
한식대가에게도 있었다.


그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학생의 마음이 조금 가벼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수업 중 음식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울상이 된 학생을 본 적도 있다.


접시를 바라보며 말했다.
“망했어요.”
나는 그 말이 조금 아쉬웠다.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디가 마음에 안 들어요?”
하나씩 살폈다.


간은 어떤지,
식감은 어떤지,
모양은 왜 달라졌는지.


문제를 나누어보면 고칠 수 있는 부분이 보인다.
완전히 다시 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실패 안에 배울 것이 남아 있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망한 게 아니라 오늘 하나 배운 거예요.”


학생이 웃으면 나도 좋다.
‘교수님’이라는 호칭보다 그런 순간이 훨씬 크게 남는다.


처음에는 자신 없어 하던 학생이 자기 접시를 들고 웃는 순간.
“교수님, 저 오늘은 잘된 것 같아요.”

하면서 보여주는 얼굴.


나는 그 표정을 참 좋아한다.
음식을 맛있게 먹는 사람의 얼굴을 좋아했던 내가 이제는 배움을 즐기는 학생의 얼굴까지 좋아하게 된 것이다.


가르치는 자리에 서니 나도 더 많이 공부하게 되었다.
학생에게 설명하려면 내가 정확히 알아야 했다.


‘그냥 이렇게 하는 거예요.’
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싶었다.


학생이
“왜요?”
라고 물었을 때 답할 수 있어야 했다.


모르면 다시 찾아봤다.
자료를 보고,
책을 읽고,
직접 비교해보기도 했다.

 

 


 

교수가 된 뒤 배움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많아졌다.
그게 좋았다.


예전에는 나 자신을 위해 배웠다.
이제는 나를 믿고 듣는 학생이 있기 때문에 더 배우게 되었다.


배움에 또 다른 책임이 생겼다.
학생 앞에 서면서 한식에 대한 생각도 더 깊어졌다.
조리법만 전한다고 한식을 가르치는 것은 아니었다.


왜 이런 재료를 사용하는지,
계절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지역마다 어떻게 다른지,


어떤 식문화 속에서 이어져왔는지.
음식에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 이야기까지 함께 전하고 싶었다.


한식을 외워서 만드는 음식이 아니라 이해하면서 만드는 음식으로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나는 엄마에게 배운 이야기도 자주 떠올린다.


엄마는 내게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재료를 아끼는 법,
가족의 입맛을 살피는 법,


계절에 맞는 음식을 만드는 법을 자연스럽게 보여주었다.
그런 생활의 지혜를 교실에서도 잃고 싶지 않았다.


이론과 기술은 정확하게 가르치되 음식이 사람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도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
한 학생이 물었다.


“교수님은 어떤 요리를 제일 좋아하세요?”
나는 잠시 생각했다.


좋아하는 메뉴를 묻는 질문이었겠지만 나는 다른 답이 먼저 떠올랐다.
“사람이 맛있게 먹는 요리.”
학생들이 웃었다.


조금 뻔한 대답처럼 들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그랬다.


아무리 화려한 음식이어도 먹는 사람이 불편하면 아쉽다.
아무리 전문적인 기술을 사용해도 사람의 입맛과 상황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좋은 요리라고 말하기 어렵다.


나는 수업에서도 그것을 전하고 싶었다.
플레이팅을 지도할 때도 마찬가지다.


“더 올려보세요.”
라고 말하기보다


“왜 여기에 올렸어요?”
라고 묻는다.


학생이 이유를 생각하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색 때문인지,
식감 때문인지,
시선의 흐름 때문인지.


이유가 없다면 없어도 되는 장식일 수 있다.
그렇게 하나씩 생각하다 보면 자신만의 기준이 생긴다.


나는 정답을 모두 알려주는 교수보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질문하는 교수가 되고 싶다.
물론 교수라고 불리는 것이 여전히 조금 쑥스러운 순간도 있다.


가끔은 이름을 부르는 것보다 먼저 그 호칭이 들린다.
“교수님!”


처음보다 자연스러워졌지만 마음 한쪽에서는 여전히 생각한다.
‘이 이름에 어울리는 사람이어야 할 텐데.’


그 마음은 한식대가라는 이름을 처음 받았을 때와도 비슷하다.
호칭은 사람에게서 받지만 그 의미는 매일 내가 채워야 한다.
 

교수가 되었다고 해서 학생 시절의 마음을 잊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가장 오래 기억하고 싶다.


질문이 있지만 손을 들지 못했던 마음.
틀릴까 봐 조심스러웠던 순간.
다른 사람보다 늦은 것 같아 불안했던 시간.


그 마음을 기억하면 학생에게 조금 더 천천히 설명할 수 있다.
조금 더 기다릴 수 있다.
가르치는 일은 음식과 참 닮았다.


모든 학생에게 똑같은 방법을 사용한다고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설명을 듣고 이해한다.
누군가는 직접 해봐야 이해한다.
누군가는 여러 번 반복해야 한다.


먹는 사람의 입맛이 모두 다른 것처럼 배우는 사람의 속도도 모두 다르다.
그래서 학생을 살피는 일이 중요했다.


처음 교수님이라고 불린 날에는 내가 많이 변한 것 같았다.
학생에서 교수가 되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해보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은 아니었다.
세 딸 중 둘째로 사람의 표정을 보던 아이.
가족이 밥을 먹는 모습을 살피던 엄마.


학생들의 손과 얼굴을 바라보는 교수.
결국 같은 사람이었다.


사람을 살피는 내 오래된 습관이 자리만 바꾸어 계속되고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이 참 좋다.


삶의 시간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하나씩 이어져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어릴 때 배운 마음이 지금의 수업에 쓰이고,
가족을 돌본 경험이 학생을 기다리는 힘이 되고,


늦게 다시 공부했던 경험이 자신 없는 학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돌아온 것 같았던 시간들이 하나도 버려지지 않았다.
교수가 되고 나니 잘해야 한다는 부담도 생겼다.


사람 앞에서 설명해야 하고,
정확해야 하고,
학생의 질문에 책임 있게 답해야 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 부담을 나쁘게만 생각하지 않는다.
그만큼 더 준비하게 하기 때문이다.


수업 전날 자료를 다시 보고,
한 번 더 확인하고,


어떻게 설명하면 이해하기 쉬울지 생각한다.
그 시간이 나 역시 성장하게 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멋있어 보이는 교수보다 가까이 질문할 수 있는 교수가 되고 싶다.
“이것도 물어봐도 되나?”
고민하지 않았으면 한다.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니까.
나도 몰랐고,
나도 배웠고,
지금도 배우고 있다.


그 사실을 숨길 이유가 없다.
그리고 한 가지는 꼭 전하고 싶다.
요리에는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할 때가 있다는 것.


처음부터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좋아한다면 조금 더 해봐도 된다는 것.
늦었다고 생각되는 순간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그건 내가 직접 살아오며 배운 이야기다.
나는 아마 그래서 학생의 작은 변화에 더 기뻐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칼질 하나가 어려웠던 학생이 어느 날 자연스럽게 재료를 손질한다.


플레이팅을 어려워하던 학생이 자신만의 접시를 만들어낸다.
그런 모습을 보면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참 많이 늘었네.’
그때의 기쁨은 내가 좋은 음식을 하나 완성했을 때와 또 다른 종류의 기쁨이다.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학생이 스스로 만들어낸 변화이기 때문이다.
교수의 자리는 앞에서 빛나는 자리가 아니라 학생이 성장할 수 있도록 옆에서 오래 지켜보는 자리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그 의미를 계속 배우는 중이다.
좋은 요리인이 되는 것도 끝이 없었지만 좋은 교수가 되는 일도 끝이 없는 공부였다.


처음 교수님이라 불린 날.
나는 내가 높은 곳에 올라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조리대 앞에 처음 선 기분이었다.
이번에는 음식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 배우는 조리대였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나누고,
학생에게 배우고,
함께 실패하고,


함께 성장하는 자리.
그것이 생각보다 따뜻했다.


나는 지금도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학생들의 얼굴을 한번 바라본다.
오늘 기분은 어떤지,
긴장하고 있는지,


재미있어 보이는지.
그리고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오늘 한 가지라도 가져가면 좋겠다.’


거창할 필요는 없다.
칼을 조금 더 편하게 잡게 되는 것.
처음 먹어보는 재료를 알게 되는 것.


접시를 보는 눈이 조금 달라지는 것.
‘나도 할 수 있겠다.’
라는 마음 하나를 얻는 것.


그 정도면 좋은 수업일 수 있다.
교수라는 호칭은 이제 처음처럼 낯설지는 않다.


하지만 완전히 익숙해지고 싶지도 않다.
조금은 설레고,
조금은 긴장되는 이름으로 남아 있으면 좋겠다.


그래야 내가 처음 그 말을 들었던 순간을 기억할 수 있을 테니까.
그날의 나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교수님.”
그리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대답했다.
‘그래. 이제 내가 누군가에게 배움을 건네는 사람이 되었구나.’


하지만 한 가지는 잊지 않았다.
가르치는 사람이 된 날에도 나는 여전히 배우는 사람이었다.
아마 좋은 교수로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마음도 그것일 것이다.


경은의 한마디
“교수님이라는 이름은 내가 많이 안다는 뜻이 아니라, 누군가가 배우는 시간을 더 책임 있게 지켜봐야 한다는 약속처럼 느껴졌다.”


오늘의 핑크 한스푼
오늘은 내가 누군가에게 알려줄 수 있는 작은 경험 하나를 떠올려보세요.
거창한 전문지식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잘하는 요리 하나,
오랫동안 해온 생활의 지혜,
실수하면서 배운 작은 방법 하나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알려줄 때 정답부터 말하기보다 이렇게 한번 물어보세요.
“어디가 가장 어려워?”


사람을 먼저 살피고 그 사람의 속도에 맞춰 기다려주는 것.
배움을 나누는 따뜻한 마음을 한스푼 더해보세요.


누군가에게는 그 작은 기다림이 새로운 자신감을 만드는 시작이 될지도 모릅니다.

 

 

 

작성 2026.10.04 23:10 수정 2026.10.04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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