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흙으로 600명의 역사를 빚었다. 겨울이면 눈을 깎아 세계 정상에 올랐다. 조각가 홍순태의 지난 25년은 ‘인물을 남기는 일’에 바쳐졌다.
홍 작가는 2000년 무렵부터 세계 역사 속 인물과 위인들을 테라코타로 형상화해왔다. 처음에는 50점가량을 만들어 국내외 박물관에 기증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한 점, 두 점 늘어나던 작품은 어느새 600여 점의 대형 컬렉션이 됐다.
“작가로서 작품을 남기는 것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역사에 남는 작업을 해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그가 재현하는 인물은 이미 세상을 떠난 역사적 인물이 대부분이다. 직접 만나 고증할 수 없기에 공개된 사진과 기록을 찾아 얼굴과 특징을 복원한다. 한 사람을 빚는 일이 곧 역사 자료를 다시 들여다보는 작업인 셈이다.

홍 작가의 이력에는 또 하나의 독특한 기록이 있다. 눈조각이다. 1991년 일본 삿포로 세계눈조각 경연대회에서 1위에 오른 데 이어 2019년 중국 하얼빈 국제눈조각 경연대회, 2025년 미국 브레켄리지 국제눈조각 선수권대회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특히 브레켄리지에서는 한국 대표팀 캡틴으로 참가해 시민투표로 선정하는 ‘피플스 초이스’ 그랑프리를 받았다. 주요 보도에서는 세 대회를 세계 3대 눈조각 경연대회로 소개하며 그의 기록을 ‘그랜드슬램’으로 전했다.
“눈도 조각가에게는 하나의 재료입니다. 겨울에는 테라코타 작업이 어려워 눈조각을 합니다.” 2026년 러시아 시베리아 국제 눈·얼음 조각대회에서도 3위를 기록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홍 작가가 이제 바라보는 곳은 개인 작업실보다 크다. 600여 점에 이어 약 3400점의 역사 인물을 더 제작하고, 이를 한곳에 모아 보존·전시하는 ‘세계 역사 인물관’을 세우겠다는 구상이다. “이 작품들은 특정 지역이나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 인류를 위한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역사 속 인물을 작품으로 만나고 배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국내 건립을 우선 희망하지만 유럽과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등 해외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별도의 지자체 지원 없이 25년째 작업을 이어온 그에게 박물관은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다.
“언제까지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인물 작업에 몰두해 미술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작업을 남기고 싶습니다.” 흙은 역사를 기억하고, 눈은 순간을 기록한다. 홍순태는 그 두 재료 사이에서 자신의 조각 인생을 이어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