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쇄의 도미노 - 이란이 그리는 '완전한 파멸'의 지도

"완전한 파멸" vs "한 문명이 사라진다" - 평화 직전의 종말 화법

유전을 직접 친다? 이란이 꺼낸 '나도 너도 못 가진다'의 논리

AI 드론·초음속·위성 교란 - 전쟁이 재개되면 벌어질 일들

▲ AI 이미지,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제공

한쪽은 오늘 밤 한 문명이 사라질 것이라 했고, 다른 쪽은 '완전한 파멸'로 응수했다. 트럼프와 이란이 주고받은 말이다. 협상 테이블에서는 합의가 무르익는다는 신호가 흐르는데, 정작 두 적국의 입에서는 종말의 어휘가 번갈아 쏟아진다. 평화를 코앞에 둔 순간에 가장 무서운 말들이 오가는 이 역설을, 우리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이란의 셈법을 이해하려면 한 가지 전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재래식 전력으로는 미국과 이스라엘을 이길 수 없다는 냉정한 자각이다. 정면으로 맞붙어 이길 수 없다면, 상대가 가장 아파하는 곳을 거머쥐는 수밖에 없다. 그 급소가 바로 세계 경제의 동맥, 곧 좁은 바닷길이다. 호르무즈해협을 걸어 잠가 세계에 고통을 안기는 데 이미 '성공'을 맛본 테헤란은, 이제 그 손을 더 멀리 뻗으려 한다. 한 곳의 빗장으로 세계를 흔들 수 있다면, 두 곳, 세 곳은 어떻겠는가.

 

그 두 번째 표적이 바브 알 만데브 해협이다. 홍해와 아덴만을 잇는 이 길목은 유럽과 아시아, 아랍 세계를 묶는 또 하나의 대동맥이다. 이란은 예멘의 후티 반군이라는 대리 세력을 통해 이곳을 옥죌 수 있다. 숫자가 그 위력을 말해 준다. 2023년 세계 해상 석유 교역의 10퍼센트 이상이 이 해협을 지났으나, 2024년 후티의 위협이 본격화되자 그 양은 절반 가까이 꺾였고 액화천연가스는 거의 0으로 주저앉았다고 미 에너지정보청은 전한다.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은 호르무즈에서 바브 알 만데브까지 '저항의 새로운 안보 벨트'를 두르겠다고 공언했다. 두 해협이 같은 시각 막힌다면, 홍해 무역과 페르시아만 에너지가 동시에 멈춰 유가와 운임, 물가가 한꺼번에 치솟을 수 있다고 에너지 전략가 우무드 쇼크리는 경고한다. 다만 그는 단서를 단다. 바브 알 만데브는 이란이 직접 쥔 해협이 아니어서 완전 봉쇄는 강력한 국제 해군의 반격을 부를 것이며, 더 현실적인 그림은 상선 운항을 위험하고 값비싸게 만드는 장기 안보 위기라는 것이다.

 

위협의 수위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만약 미국이 이란의 정유 시설과 발전소를 때린다면, 이란은 걸프 아랍국들의 '유전' 자체를 겨누겠다고 한다. 이란 국가안보위원회 위원 아흐마드 바크샤예시 아르데스타니의 말은 서늘하다. 송유관을 때리는 데 그쳤던 40일 전쟁과 달리, 이번에는 유정을 직접 쳐 상대도 석유를 얻지 못하게 하고 세계 연료값을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나도 못 가지면 너도 못 가진다'는 파멸의 논리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란이 과시한 '거리'다. 지난 3월, 이란은 인도양의 미·영 공동 기지 디에고 가르시아를 향해 중거리 탄도미사일 두 발을 쏜 것으로 알려졌다. 본토에서 약 3,800킬로미터 떨어진 그곳까지, 비록 명중엔 실패했으나 손이 닿는다는 사실 자체를 증명한 셈이다. 시선은 유럽으로도 향한다. 이달 초 혁명수비대와 연계된 것으로 추정되는 텔레그램에 그리스 크레타섬 차니아 공항의 미군 항공기를 담은 위성사진이 올라왔다. 

 

워싱턴연구소의 파르진 나디미는 이란이 극단적 악화 국면에서 영국의 페어포드·레이크히스 기지나 독일 람슈타인 허브까지 노릴 수 있다고 본다. 파리 정치대학의 니콜 그라예프스키는 지중해가 이란의 사거리를 완전히 벗어난 곳은 아니라며, 관건은 결국 정확도라고 짚는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란의 '기습 신무기' 위협을 일축한다. 2천 킬로미터를 넘는 사거리는 이미 알려진 것이지 새로운 무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이란이 새 카드를 만지작거린다는 분석도 있다. 나디미는 서로 교신하며 비행경로와 속도를 조절해 전파방해와 방공망을 피하는, 인공지능 기반의 조직화된 드론 편대를 띄울 가능성을 거론한다. 아직 입증된 적은 없으나 과거에 논의된 기술이라는 것이다. 순항미사일을 초음속으로 끌어올려 요격을 따돌리거나, 군사 통신·감시 위성을 교란하려는 시도도 배제할 수 없다고 그는 덧붙인다. 휴전이 무색하게, 4월 8일 이후에도 아부다비 원전과 사우디가 이라크發 드론의 표적이 됐다는 비난이 이어졌다. 그래도 눈에 띄는 절제가 하나 있다. 전쟁 내내 이란은 호텔과 공항 같은 민간 시설엔 미사일을 쏘면서도, 수백만 명에게 식수를 대는 담수화 시설이나 학교는 거의 건드리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 모든 으름장의 상당 부분이 추가 공격을 막으려는 억지의 언어라고 본다. 외무장관 아바스 아라그치는 다음 보복이 훨씬 더 많은 놀라움을 안길 것이라 했고, 협상 수장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는 군이 휴전 동안 전력을 최고 수준으로 재건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같은 전문가들은 경고도 잊지 않는다. 협상이 깨지는 순간, 테헤란의 손에는 여전히 세계를 흔들 카드가 쥐어져 있다는 것이다. 말이 곧 무기인 시대, 으름장과 실제 능력 사이의 그 회색지대가 가장 위험하다.

 

호르무즈에서 바브 알 만데브로, 인도양에서 지중해로 뻗어 나가는 그 지도 위 어디에도 사람의 얼굴은 없었다. 그러나 그 좁은 물길마다, 그 먼 섬마다, 누군가의 일터와 식탁과 잠든 아이가 있다. 강대국들이 '완전한 파멸'과 '사라질 문명'을 주고받을 때, 정작 그 말의 무게를 짊어지는 것은 이름조차 불리지 않는 보통 사람들이다. 

작성 2026.06.13 00:22 수정 2026.06.13 00:23

RSS피드 기사제공처 : 중동 디스커버리 / 등록기자: 김요셉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해당기사의 문의는 기사제공처에게 문의

댓글 0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