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을 편집할 때 완성되는 인생의 예술, '안식'의 창조

마침표가 아닌 창조의 완성 - 안식은 '하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

번아웃 시대의 해독제, 뇌가 요구하는 능동적 정지의 과학

비움으로써 채워지는 여백의 미학

AI 이미지 (제공: 미디어 울림)

 

신은 왜 일곱 번째 날에 '일'을 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보통 창조를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빛을 만들고, 바다를 가르고, 동물을 빚는 일련의 역동적인 과정들이 창조의 전부라고 믿는다. 하지만 성경의 창조 기사는 우리의 상식을 뒤엎는 반전을 선사한다. 하나님이 모든 사역을 마치신 후, 일곱 번째 날에 하신 일은 다름 아닌 '안식(שַׁבָּת, Shabbat)'이었다. 

 

유대 신학자 아브라함 여호수아 헤셸(Abraham J. Heschel, 1907~1972)은 이를 두고 "하나님은 안식을 창조하셨다"고 표현한다. 안식은 단순히 노동이 멈춘 상태(Passive rest)가 아니라, 우주에 질서와 의미를 부여하는 마지막 퍼즐 조각으로서 의도적으로 설계된 '능동적 창조'였다. 마침표가 찍히지 않은 문장은 미완성이듯, 안식이 없는 인생은 아무리 화려한 성취를 쌓아도 결국 미완의 상태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는 '쉼'을 게으름의 변명이 아닌, 인생이라는 예술 작품을 완성하는 가장 세련된 '편집 기술'로 재정의해야 한다.

 

 

멈춤을 통해 거룩을 구별하는 기술
 

히브리어 '샤바트(שַׁבָּת, Shabbat)'는 '그치다', '중단하다'라는 뜻을 가진다. 흥미로운 점은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이 안식하신 날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다'는 기록이다. 이는 성경에서 '거룩함'이라는 형용사가 장소가 아닌 시간에 최초로 부여된 순간이다.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은 공간적 제약(성전)이 사라진 디아스포라 상황에서도 그들의 정체성을 지켜준 '시간 위의 성전'이었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이는 '맥락의 편집'이다. 엿새 동안의 노동이 '생존과 확장'이라는 맥락 속에 있다면, 일곱 번째 날의 안식은 '존재와 감사'라는 전혀 다른 맥락으로 인생을 전환시킨다. 김정운 박사의 에디톨로지 개념을 빌리자면, 안식은 쉼 없이 나열된 일상의 정보들 사이에 의도적인 '여백'을 삽입하여 전체 문장의 의미를 명확하게 만드는 편집자의 결단과 같다.

 

 

뇌과학이 증명하는 'Default Mode Network'
 

쉼의 중요성은 신학적 통찰을 넘어 과학적 사실로도 입증되고 있다. 뇌과학자들은 인간의 뇌가 아무런 집중을 하지 않고 쉴 때 활성화되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에 주목한다. 이 영역은 창의성의 용광로 역할을 하여 뇌가 쉴 때 비로소 파편화된 기억들을 연결하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단서를 찾게 해주며, 결과적으로 정보를 편집하고 정리하는 귀중한 시간을 제공한다. 또한 DMN은 자아 성찰과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에 깊이 관여하기에, 멈춤이 없다면 우리는 '나'를 잃어버리고 단순한 '기능'으로만 남게 될 위험이 크다. 

 

아울러 이러한 휴식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를 낮추고 신경계를 안정시켜 다음 단계의 도약을 위한 신체적 회복력을 비축하게 한다. 사회적으로는 이를 '전략적 중단'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구글이나 3M 같은 혁신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업무와 무관한 시간을 허용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안식의 창조적 가치를 비즈니스 모델에 이식한 현대판 샤바트의 실천이라 할 수 있다.

 

 

인생의 완성도는 여백에서 결정된다
 

우리는 흔히 '더 많이 하는 것'이 창조적이라고 믿는 오류에 빠진다. 하지만 진정한 거장은 무엇을 넣을지가 아니라 무엇을 '뺄지'를 고민한다. 조각가가 돌덩이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내어 형상을 찾아내듯, 우리 인생도 무의미한 분주함을 깎아낼 때 비로소 본연의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이 과정에서 안식은 우리에게 두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인생을 재구성한다. 먼저 우리의 노동 없이도 세상이 돌아간다는 사실을 신뢰하는지 묻는 '교만의 편집'을 요청하며, 이어 성취가 아닌 존재 자체로 사랑받을 자격이 있음을 확인하는 '강박의 편집'을 제안한다. 

 

결국 안식을 지키는 행위는 내가 우주의 주인이 아니라는 겸손한 인정인 동시에, 내가 기계가 아닌 존엄한 인간임을 선포하는 혁명적 행위다. 안식을 창조한다는 것은 단순히 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을 끄고, 성과 지표를 잊으며,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맞추고,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능동적인 거부'다. 이 거부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인생이라는 텍스트의 주도권을 되찾아온다.

 

 

당신의 일곱 번째 날을 편집하라
 

번아웃(Burnout)은 우리가 너무 열심히 일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멈춰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찾아온다. 안식은 창조의 부록이 아니라 본문이다. 신이 세상을 다 만드시고 마지막에 안식을 두신 이유는, 그 멈춤이 있어야만 앞선 엿새간의 수고가 비로소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찬사로 연결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당신의 일정표를 펼쳐보라. 그곳에 당신의 영혼이 숨 쉴 수 있는 '거룩한 여백'이 있는가? 만약 없다면, 당신은 지금 인생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소모하고 있는 중이다. 이제 당신만의 '샤바트'를 편집하라. 억지로라도 멈추고, 의도적으로 비워라. 그 텅 빈 시간 속에서 당신은 당신이 만든 어떤 결과물보다 귀한 '진정한 당신 자신'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안식의 창조야말로 당신이 남길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인생의 예술이다.

 

 

 

 

작성 2026.01.03 00:11 수정 2026.01.03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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