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웃으며 저항한 아이, 창남이
— 『만년샤쓰』 개정판으로 다시 만나는 한국 아동문학의 뿌리
“씩씩하고 참된 소년이 됩시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며 도와 갑시다.”
방정환이 『어린이』 잡지를 통해 외쳤던 이 구절은 단순한 도덕 구호가 아니다. 그것은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살아가던 한 지식인의 신념이자, 미래 세대에게 건네는 혁명적 선언이었다.
그 정신은 1927년 발표된 동화 『만년샤쓰』 속 주인공 ‘창남이’를 통해 가장 생생하게 드러난다.
창남이는 해어진 옷과 낡은 구두, 심지어는 맨몸으로 학교에 나타나는 소년이다. 그러나 그 맨몸은 부끄러움의 상징이 아니라, 고통을 웃음으로 이겨내는 인간의 당당함을 의미한다.
길벗어린이가 2019년 내놓은 그림책 개정판 『만년샤쓰』는 이 불멸의 메시지를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해석한다. 20년 전 출간된 초판이 전해준 따뜻한 감동에, 시대적 해석과 미학적 완성도를 더해 성숙한 독자에게 다가온다.
창남이는 웃음을 잃지 않는 아이이다. 해어진 바지를 조각조각 기워 입고, 샤쓰 대신 ‘만년샤쓰’라 부르며 맨몸으로 체조 시간에 서 있는 소년.
그 웃음은 현실을 부정하는 가면이 아니라, 불행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정이다.
창남이는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에게 옷을 내어주며 “이 정도면 괜찮다”고 말한다.
그 모습 속에는 식민지 조선의 가난, 그리고 이를 극복하려는 ‘어린이 정신’이 녹아 있다.
방정환은 아이의 시선을 빌려 부조리한 세상을 고발했고,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향한 염원을 담았다.
창남이는 그 자체로 시대를 초월한 인간의 초상이다.
『만년샤쓰』가 발표된 1927년은 조선이 일본 제국의 통제 속에 있던 시기였다.
검열과 탄압 속에서도 방정환은 아이들의 순수한 목소리로 저항을 표현했다.
창남이의 맨몸은 곧 식민지 조선의 맨몸이며, 그 웃음은 억압된 민중의 해방을 향한 희망의 상징이다.
슬픔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그 시대의 절망이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의 유머와 순수는 단순한 ‘아동문학’이 아니라, ‘민족문학의 씨앗’이었다.
방정환이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의 펜은 폭력이 아닌 사랑으로, 절망이 아닌 희망으로 저항했다.
이번 개정판의 가장 큰 미덕은 그림이다.
김세현 작가는 수묵담채 기법으로 창남이의 내면을 시각화했다.
그림 속의 창남이는 해님처럼 환하게 웃지만, 눈동자 속에는 시대의 어둠이 스며 있다.
빛바랜 골목길, 낡은 양복, 교실의 풍경 하나하나가 1920년대의 현실을 정교하게 복원한다.
그림책이라는 형식을 통해 독자는 단어보다 깊은 감정을 마주한다.
아이에게는 따뜻한 이야기로, 어른에게는 슬픔을 깨닫게 하는 미학적 체험이 된다.
그림은 단순한 삽화가 아니라, 문학과 역사의 대화를 잇는 매개체다.
방정환의 ‘어린이 정신’이 오늘에 남긴 메시지
『만년샤쓰』가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사람답게 살자.”
하지만 그 단순함은 100년의 세월을 지나도 여전히 가장 어려운 과제다.
오늘 우리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타인의 고통에 웃음으로 응답하는 용기는 점점 사라져 간다.
방정환이 창조한 ‘창남이’는 가난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인간의 품격을 상기시킨다.
길벗어린이의 이번 개정판은 단순한 복간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양심’을 다시 꺼내 드는 행위다.
『만년샤쓰』는 여전히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사람답게 살고 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