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함 없는 아침의 불편함
“과장님, 국장님”이라는 호칭이 사라진 첫 아침은 생각보다 낯설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보다, 더 이상 불리지 않는 이름이 먼저 떠오른다. 은퇴한 공직자 다수가 공통으로 겪는 감정이다. 오랜 시간 국가와 조직을 위해 일하며 쌓아 온 경력과 권한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 문제는 그 권한이 제도 안에서는 효율이었지만, 제도 밖에서는 오히려 마찰이 된다는 점이다. 은퇴 이후에도 예전처럼 말하고, 판단하고, 지시하려는 습관은 자신도 모르게 일상에 스며든다. 이 습관 하나가 새로운 삶의 출발을 가로막는다. 은퇴 공직자가 가장 먼저 버려야 할 습관, 바로 ‘지시하고 결론부터 말하는 태도’다.
공직 문화가 만든 말의 구조
공직 사회는 구조적으로 명확한 위계와 책임 체계를 전제로 한다. 보고는 요약돼야 하고, 판단은 빠를수록 좋다. 질문보다 결론이 먼저 나오는 이유다. 이러한 문화는 업무 효율을 높였지만, 동시에 개인의 말과 태도를 규격화했다. 문제는 이 규격이 은퇴와 함께 자동으로 해제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공직 생활 수십 년 동안 몸에 밴 말투와 사고방식은 퇴직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된다. 가족 모임에서도, 동호회에서도, 지역사회 활동에서도 ‘정리해 주는 사람’이 되려 한다. 하지만 이제 그 자리는 조직이 아니라 관계의 공간이다. 관계의 공간에서 지시는 대화가 아니라 부담으로 받아들여진다. 은퇴 공직자가 사회와 다시 연결되기 위해서는 이 맥락의 전환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
경험은 존중받지만 방식은 선택받는다
은퇴 공직자의 경험은 분명 사회적 자산이다. 행정 경험, 정책 이해, 위기 관리 능력은 여전히 가치가 있다. 다만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민간 영역에서는 ‘누가 맞느냐’보다 ‘함께 결정했느냐’가 중요하다. 전문가들 역시 은퇴 이후 적응의 핵심으로 소통 방식을 꼽는다. 과거에는 말의 무게가 직급에서 나왔지만, 이제는 신뢰에서 나온다. 신뢰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상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판단을 유보하는 태도는 공직 문화와는 다소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은퇴 이후의 삶에서는 이 태도가 관계를 확장하는 열쇠가 된다. 경험을 내려놓으라는 말이 아니다. 경험을 앞세우지 말라는 조언이다.
지시형 태도가 만드는 보이지 않는 장벽
지시형 태도는 빠르고 명확하다. 그러나 그만큼 대화를 닫는다. 은퇴 공직자가 새로운 공동체에서 고립감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본인은 도와준다고 생각하지만, 주변에서는 ‘피곤함’을 느낀다. 이는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습관의 문제다. 습관은 바뀔 수 있다. 먼저 결론을 말하는 대신 질문을 던지고, 평가 대신 공감을 선택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말의 속도를 늦추는 것만으로도 관계의 온도는 달라진다. 공직에서 익힌 판단력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것을 바로 꺼내지 않는 절제가 중요하다. 은퇴 이후의 사회는 성과보다 과정, 효율보다 공존을 중시한다. 이 전환을 받아들이는 순간, 은퇴는 끝이 아니라 확장이 된다.

내려놓을수록 넓어지는 삶
은퇴는 역할의 종료가 아니라 태도의 전환이다. 직함을 내려놓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은 습관을 내려놓는 일이다. 특히 지시하고 결론부터 말하던 습관은 공직자에게 가장 익숙하면서도 가장 먼저 버려야 할 습관이다. 내려놓을수록 관계는 넓어지고, 말이 줄어들수록 삶의 소리가 커진다. 이제 묻는 사람이 되는 연습이 필요하다. “내가 정리해 줄까?”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나?”라고 말하는 것. 그 한 문장이 은퇴 이후의 삶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 은퇴 공직자의 진짜 경쟁력은 과거의 권한이 아니라, 지금의 태도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