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랍에미리트(UAE), 알 칼리즈(Al Khaleej) 신문 보도에 따르면, 최근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 후 마크롱 대통령이 강조한 "대화"는 유럽 여러 수도에 조심스럽거나 심지어 우려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어쨌든 많은 지도자가 푸틴과 만나고 있다"라는 말로 자신의 접근 방식을 방어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외교적 대화 재개를 촉구하며 유럽 내부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독자적인 협상 행보에 맞서 유럽의 소외를 방지하고자 이러한 결정을 내렸으나, 독일과 우크라이나 등 주요 동맹국들은 깊은 우려와 반감을 표명하고 있다. 러시아 측은 대화 가능성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상호 존중을 전제로 내세웠으며, 프랑스 정부는 모든 과정이 투명하게 공유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번 행보는 유럽 연합 내부의 정치적 갈등을 심화시켰으며, 서방 국가들 사이에서 러시아 고립 정책의 균열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벼랑 끝 유럽, ‘트럼프라는 태풍’ 앞의 프랑스가 던진 위험한 주도권: 차가운 평화의 서막
2025년 12월의 파리는 유난히 시렸다. 센강의 바람은 외투 깃을 파고들었고, 우크라이나의 대지는 여전히 포성으로 얼어붙어 있었다. 그동안 우리는 믿어왔다. 자유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서방이 세운 성벽은 단단하며, 그 성벽을 지키는 가장 날 선 검 중 하나가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그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푸틴과 대화해야 한다"라는 그의 한마디는 유럽이라는 거대한 유기체에 치명적인 경련을 일으켰다. 어제의 강경파가 오늘의 대화론자로 변신한 이 기막힌 반전 앞에서, 우리는 단순히 외교적 전술의 변화만을 보아서는 안 된다. 그 이면에는 한 국가의 수장이 느끼는 고독한 공포와, 다가올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처절한 계산이 숨어 있다. 이 글은 그 차가운 계산기와 뜨거운 영혼의 갈등 사이를 파헤친 한 기자의 기록이다.
강철의 외교관, 유연한 평화주의자로 탈바꿈하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마크롱은 우크라이나의 수호자였다. 프랑스의 자존심인 라팔(Rafale) 전투기 지원을 결정하고, 푸틴의 야욕을 꺾기 위해 가장 앞장서서 경제 제재의 채찍을 휘둘렀던 그였다. 하지만 2025년 12월 EU 정상회의가 끝난 뒤, 카메라 앞에 선 마크롱의 눈빛은 달라져 있었다. 그는 돌연 푸틴 대통령과의 직접적인 대화 재개를 촉구했다. 이는 국제사회에 커다란 파문을 던졌다. 사람들은 묻는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급격하게 변화시켰는가? 한 인간의 신념이 이토록 쉽게 바뀔 수 있는가? 하지만 외교의 세계에서 신념은 종종 '생존'이라는 이름 앞에 무릎을 꿇는다. 마크롱의 변심은 단순한 변덕이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의 공기를 누구보다 빨리 읽어낸 포식자의 직관에 가깝다.
동맹의 균열, '프랑스적 예외주의'라는 낙인
마크롱의 이 돌발 행동은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왔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은 배신감에 섞인 분노를 숨기지 않았으며, 독일을 비롯한 EU 회원국들 사이에서는 '패닉'에 가까운 우려가 쏟아졌다. 동맹국들이 가장 분노하는 지점은 '과정'의 실종이다. 유럽이 지난 3년간 쌓아온 대러시아 단일대오는 철저한 공조를 바탕으로 했다. 그런데 마크롱은 파트너들과의 충분한 사전 협의 없이 독단적으로 '대화의 문'을 열어젖혔다. 이를 두고 유럽 외교가에서는 프랑스가 자국의 영광을 위해 동맹을 희생시킨다는 '프랑스적 예외주의(French exceptionalism)'의 전형이라는 비판이 비등하고 있다. 엘리제궁은 뒤늦게 "투명한 소통"을 약속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한번 금이 간 신뢰의 유리잔은 이전처럼 맑은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진짜 공포의 실체, '트럼프'라는 그림자
그렇다면 마크롱은 왜 비난의 화살을 자초하며 푸틴에게 손을 내민 것일까? 그 답은 엘리제궁의 화려한 조명 아래가 아니라, 대서양 건너 워싱턴의 기류에서 찾을 수 있다. 마크롱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가장 큰 변수는 바로 '도널드 트럼프'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백악관의 주인이 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유럽은 실존적 위협을 느끼고 있다. 만약 트럼프가 유럽을 배제한 채 푸틴과 단독으로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에 나선다면? 유럽의 운명이 유럽인의 손이 아닌, 미국과 러시아의 밀실 야합으로 결정된다면? 마크롱은 바로 이 시나리오, 즉 '유럽 소외'를 막기 위해 스스로 악역을 자처하며 판을 흔들고 있다. 그는 유럽이 구경꾼으로 전락하기 전에, 프랑스가 먼저 대화의 물꼬를 터 주도권을 쥐겠다는 위험한 도박을 감행하고 있다.
크렘린의 미소, 독이 든 성배인가
마크롱의 제안에 대해 크렘린궁의 반응은 묘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변인은 "상대방에게 교훈을 주려 하지 말고 처지를 이해하라"라며 짐짓 훈계조의 반응을 보였지만, 푸틴 대통령은 이내 긍정적으로 화답했다. 러시아로서는 마크롱의 제안이 서방의 분열을 공식화하는 절호의 기회다. 고립을 자처하던 적장이 먼저 손을 내미는 상황은 푸틴에게 외교적 숨통을 틔워주는 꼴이 된다. 마크롱이 내민 손이 평화로 가는 징검다리가 될지, 아니면 푸틴의 영향력만 키워주는 '독이 든 성배'가 될지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대화의 시작이 우크라이나의 전선보다 더 치열한 외교적 전쟁터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영혼의 울림과 주도권 사이에서
마크롱의 선택은 영리한 외교술인가, 아니면 비겁한 타협인가? 누군가는 그를 유럽의 미래를 내다본 선구자라 부를 것이고, 누군가는 동맹의 가슴에 비수를 꽂은 배신자라 부를 것이다. 하지만 기자의 눈에 비친 마크롱은, 거대한 역사의 파도 앞에서 자국과 유럽이라는 배가 침몰하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노를 젓고 있는 외로운 선장에 가깝다.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그러나, 그 평화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진 위태로운 침묵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마크롱이 푸틴에게 내민 손이 정말로 전쟁의 종식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기 위한 허세인지 국제사회는 지켜볼 것이다. 차가운 겨울 파리의 밤은 깊어만 가고, 그가 던진 질문은 이제 우리 모두의 숙제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