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아랍에미리트(UAE) 정부가 예멘의 치안 회복과 정치적 안정을 도모하려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외교적 행보에 공식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예멘 내부는 현재 남부전환위원회(STC)의 세력 확장과 주요 석유 시설 점거로 인해 군사적 긴장감과 경제적 손실이 심화되는 복잡한 상황에 놓여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외교부는 예멘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모든 정파가 참여하는 포괄적인 대화와 정치적 합의가 필수적임을 강조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는 이러한 평화 정착 노력이 지역 전체의 번영과 안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 확신하며 긴밀한 협력 의지를 밝혔다.
석유가 흐르는 하드라마우트의 비극, 평화라는 이름의 난제(難題)
중동의 거친 사막 바람이 몰아치는 예멘 동부, 하드라마우트(Hadhramaut)의 지평선에는 차가운 금속성의 석유 시설들이 우뚝 서 있다. 이곳은 누군가에게는 국가의 생명줄이고, 누군가에게는 독립의 발판이며, 또 다른 이에게는 생존을 위한 마지막 보루다. 하지만 지금 이 땅은 평화라는 이름의 조각들이 서로의 날카로운 단면을 들이대며 상처를 입히는 '자원 쟁탈전'의 주전장이 되었다. 단순히 정부군과 반군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욕망과 지역의 자존심, 그리고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예멘 동부의 속살을 깊숙이 들여다본다.
왜 하드라마우트인가?
예멘 내전이 십수 년째 이어지며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질 때쯤, 동부의 하드라마우트와 엘-메흐라(Al-Mahra)는 새로운 화약고로 부상했다. 이유는 명확하다. 이곳은 예멘의 경제적 심장부이자 외화벌이의 핵심인 석유가 매장된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페트로마실라(PetroMasila)'로 불리는 석유 시설은 하루 1만 배럴의 원유를 쏟아내고 75메가와트의 전력을 공급하는, 예멘에는 혈액과도 같은 존재다. 이 혈액을 누가 통제하느냐에 따라 예멘의 미래 지도가 그려진다. 2025년 12월, 평화 정착을 위한 국제사회의 중재가 한창인 가운데 발생한 이번 사태는 '부서진 그릇을 붙이려는데, 조각들이 서로 더 큰 자리를 차지하려고 다투는 형국'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총성 없는 전쟁의 주역들
현재 예멘 동부는 세 세력의 기묘한 '3파전' 양상을 띠고 있다.
1) 남부 과도 위원회(GGK): 아랍에미리트(UAE)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이들은 남부 예멘의 분리 독립을 꿈꾼다. 지난 12월 4일 하드라마우트의 주요 유전 지대를 장악한 데 이어, 12월 9일에는 엘-메흐라 주까지 영향권을 넓혔다고 선언했다. 이들에게 석유는 독립 국가 건설을 위한 '종잣돈'이다.
2) 하드라마우트 부족 연합: 이들은 정부도, 분리주의자도 믿지 않는다. 오직 이 땅의 주인은 자신들이라는 자부심으로 뭉친 토착 무장 세력이다. 지난 12월 1일, 이들은 페트로마실라 시설을 점거해 생산을 중단시키는 강수를 두었다. "우리 땅의 자원을 중앙 정부나 외부 세력이 독점하게 두지 않겠다"는 처절한 외침이다.
3) 예멘 대통령 지도 위원회(공식 정부): 레샤드 알-알리미 의장이 이끄는 정부는 국가 통합을 위해 GGK의 철수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인 군사적 통제력이 미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정부의 목소리는 공허한 메아리로 남을 위기에 처해 있다.
현장의 목소리: 외교적 수사와 현장의 괴리
하드라마우트의 주민들은 밤마다 깜빡이는 전등을 보며 한숨을 쉰다. 석유 시설 점거로 전력 공급이 차질을 빚으면서 일상의 평화는 깨진 지 오래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외부 후원국들의 태도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포괄적 대화'를 강조하며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고, UAE 역시 공식적으로는 사우디의 노력을 지지한다고 밝힌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UAE의 지원을 받는 GGK가 군사적 확장을 멈추지 않는다. 겉으로는 웃으며 평화를 말하지만, 물밑에서는 대리인을 통해 자원의 통제권을 쥐려는 치열한 '체스 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슬람권에서 평생을 보낸 이들의 시선으로 볼 때, 이것은 단순한 정치적 갈등을 넘어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영적 파산의 현장과 다름없다.
우리에게 남은 질문
예멘 동부의 자원 쟁탈전은 단순히 기름을 누가 가져가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수백 년간 이어져 온 부족의 명예, 억눌려온 자치에 대한 갈망, 그리고 국가라는 그늘에서 소외되었던 이들의 분노가 폭발한 결과다. 평화는 단순히 총성을 멈추는 게 아니라, 밥상 위에 놓인 빵을 공평하게 나누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지금 예멘에 필요한 것은 날카로운 칼날이 아니라, 부서진 그릇의 조각들을 정성스레 이어 붙일 '신뢰'라는 아교다. 과연 그들은 탐욕의 손을 거두고, 형제의 눈을 바라볼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