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의 차가운 바람이 코끝을 스칠 때면, 어김없이 거리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캐럴과 반짝이는 조명들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크리스마스다.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이 축제의 중심에는 두 가지 상징적인 존재가 있다. 바로 구유에 누운 아기 예수와 붉은 옷을 입고 선물을 나눠주는 산타클로스다. 이 둘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크리스마스라는 하나의 절기를 구성하고 있지만, 그 기원과 의미는 사뭇 다르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크리스마스의 풍경 속에서, 이 두 존재가 어떻게 만나고 섞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지,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성탄의 본질: 마구간의 기적과 인류 구원의 서곡
크리스마스(Christmas)라는 단어는 '그리스도(Christ)'와 '미사(Mass)'의 합성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예배라는 뜻을 담고 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성육신(Incarnation), 즉 신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사건을 기리는 날이다.
성경은 예수의 탄생을 아주 소박하고 겸손하게 묘사한다. 화려한 왕궁이 아닌 초라한 마구간, 부드러운 요람 대신 딱딱한 구유가 그의 첫 자리였다. 이는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신 신의 사랑과 희생을 상징한다. 동방 박사들이 별을 따라 찾아와 황금과 유향, 몰약을 바치며 경배했던 것도, 이 아기가 온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임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초기 기독교 교회는 예수의 탄생보다는 죽음과 부활에 더 큰 의미를 두었다. 따라서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풍습은 4세기경에 이르러서야 로마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로마에서는 동지(冬至) 무렵 태양신의 탄생을 축하하는 이교도들의 축제가 성행했는데, 교회는 이를 예수 탄생일로 정함으로써 이교도 문화를 기독교적으로 수용하고 변화시키고자 했다. 어둠이 가장 깊은 날, 참 빛으로 오신 예수를 기념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더해졌다.
이처럼 크리스마스의 본질은 인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데 있다. 화려한 장식과 선물 교환, 즐거운 파티는 그 기쁨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 결코 크리스마스의 전부가 아니다.
산타클로스의 탄생: 자선과 나눔의 성자, 성 니콜라오
그렇다면 산타클로스는 어디서 왔을까? 그의 기원은 3~4세기경 소아시아(지금의 튀르키예) 지역의 주교였던 성 니콜라오(Saint Nicholas)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니콜라오는 어린 시절부터 신앙심이 깊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앞장섰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그는 이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아낌없이 베풀었다. 그의 자선 활동에 관한 수많은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세 딸을 둔 가난한 아버지 이야기다.
지참금이 없어 세 딸을 결혼시키지 못하고 사창가로 팔아넘겨야 할 처지에 놓인 아버지가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니콜라오는 밤중에 몰래 그 집을 찾아가 금이 든 주머니를 창문 안으로 던져 넣었다. 덕분에 첫째 딸은 무사히 결혼할 수 있었다. 니콜라오는 둘째 딸과 셋째 딸을 위해서도 똑같이 금 주머니를 던져 주었고, 세 자매는 모두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니콜라오가 몰래 선물을 주는 존재로 인식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세 번째 금 주머니가 우연히 벽난로에 걸어둔 양말 속으로 들어갔다는 전설은, 산타클로스가 굴뚝을 통해 들어와 양말에 선물을 넣어준다는 이야기의 원형이 되었다.
성 니콜라오는 사후에 성인으로 추대되었고, 그의 기일인 12월 6일은 가난한 사람들과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날로 기념되었다. 이 전통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으며, 특히, 네덜란드에서는 '신터클라스(Sinterklaas)'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큰 사랑을 받았다.
산타클로스의 변신: 미국 문화와 상업주의의 결합
17세기, 네덜란드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신터클라스 전통도 함께 전해졌다. '신터클라스'는 영어 발음인 '산타클로스(Santa Claus)'로 바뀌었고, 그의 모습과 역할도 미국 문화에 맞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19세기 초, 미국의 작가 워싱턴 어빙은 자신의 책에서 산타클로스를 뚱뚱하고 담배 파이프를 문 유쾌한 네덜란드 선원의 모습으로 묘사했다. 이후 1822년, 클레멘트 클라크 무어의 시, '성 니콜라오의 방문(A Visit from St. Nicholas)'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산타클로스의 이미지를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무어는 시에서 산타클로스를 붉은 옷을 입고 썰매를 타며, 굴뚝을 통해 들어와 선물을 주는 뚱뚱하고 유쾌한 할아버지로 묘사했다. 여덟 마리의 순록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명시하며, 산타클로스의 환상적인 이미지를 완성했다. 이 시는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고, 산타클로스는 크리스마스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산타클로스의 이미지가 더욱 구체화되고, 상업적으로 활용된 것은 1930년대 코카콜라 광고 덕분이다. 코카콜라는 겨울철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산타클로스를 광고 모델로 기용했다. 광고 속 산타클로스는 코카콜라의 상징색인 붉은색 옷을 입고 흰 수염을 휘날리며, 아이들에게 콜라를 나눠주는 인자하고 유쾌한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이 광고는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붉은 옷을 입은 산타클로스의 이미지는 전 세계인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다.
크리스마스와 산타클로스: 공존과 갈등
오늘날 크리스마스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종교적인 의미와 산타클로스가 선물을 주는 세속적인 축제의 의미가 혼재되어 있다. 교회에서는 산타클로스가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주인공인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고 상업주의를 부추긴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산타클로스가 가진 나눔과 사랑의 정신은 크리스마스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성 니콜라오의 삶에서 보듯, 산타클로스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게 조건 없는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존재다. 이는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 중에 평화로다"라는 성탄의 메시지와 일맥상통한다.
산타클로스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어른들에게는 잊고 지냈던 동심과 나눔의 기쁨을 일깨워준다. 그의 존재는 크리스마스를 더욱 풍성하고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요소임이 틀림없다.
크리스마스의 참된 의미를 찾아서
크리스마스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는 날이자, 산타클로스의 나눔 정신을 실천하는 날이다. 두 존재는 서로 다른 기원과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크리스마스라는 하나의 축제 안에서 조화롭게 공존하며 우리에게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화려한 조명과 선물 상자 속에 파묻혀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를 잊지 말자. 마구간 구유에 오신 아기 예수의 겸손과 사랑을 기억하고, 성 니콜라오처럼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며 나눔을 실천하는 것, 그것이 바로 크리스마스를 가장 아름답게 보내는 방법일 것이다.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기다리기보다, 내가 먼저 누군가의 산타클로스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따뜻한 말 한마디, 작은 정성이 담긴 선물이 누군가에게는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될 수도 있다. 아기 예수의 사랑과 산타클로스의 나눔 정신이 함께하는 풍성하고 따뜻한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