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잿빛 먼지 너머, 멈추지 않는 포성의 심연을 들여다보며
지금, 이 시간에도 가자 지구에서 피어오르는 잿빛 먼지가 전 세계의 시야를 가리고 있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참혹한 영상들은 인류의 보편적 양심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세계 각국의 수도에서, 유엔의 회의장에서, 그리고, 수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서 규탄과 비판의 목소리가 들불처럼 번져나간다. "이제 제발 멈추라"라는 절규가 지구촌을 뒤덮고 있다.
그러나, 이토록 거센 전 세계적인 압박과 비난의 폭풍 속에서도 이스라엘의 진격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결기는 더욱 단단해지는 듯하다.
도대체 왜인가.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세상의 모든 목소리에 귀를 닫게 하고, 오직 눈앞의 적을 향한 방아쇠를 당기게 만드는 것인가. 이 질문 앞에 서면, 우리는 단순히 국제정치의 냉혹한 논리나 군사 전략의 타당성만을 따지는 건조한 분석을 넘어서야 한다. 그들의 깊은 내면, 그 영혼의 밑바닥에 깔린 거대한 두려움과 비장한 각오를 마주해야만 이 불가해한 폭주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역사적 트라우마'라는 거대한 유령이다.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는 평범한 건국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2천 년이라는 억겁의 시간 동안 나라 없이 떠돌아야 했던 디아스포라의 설움, 그리고, 그 방랑의 끝에서 마주한 홀로코스트라는 인류 최악의 대학살. 600만 명의 동족이 가스실에서 재로 변하는 것을 목격한 생존자들의 처절한 기억 위에 세워진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이다.
그들에게 '국가'는 단순한 행정 구역이나 영토의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마지막 보루이자, 다시는 그 지옥 같은 무력감 속으로 끌려들어 가지 않겠다는 피의 맹세와도 같다.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Never Again)"라는 구호는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다. 모든 이스라엘인의 DNA 속에 각인된, 생존을 위한 절대적인 명령이다.
외부 세계가 가자 지구의 참상에 가슴 아파할 때, 많은 이스라엘인은 그 너머에서 또 다른 악몽을 본다. 하마스의 공격에서 그들은 단순히 테러 집단의 도발을 보는 것이 아니라, 수천 년간 자신들을 괴롭혀온 '존재 자체에 대한 위협'의 재림을 본다. 그들에게 하마스는 나치의 망령이자, 자신들을 지도에서 지워버리겠다고 공언하는 실체적 공포다. 이 공격을 멈춘다는 것은 곧 방어벽을 내리는 것이며, 이는 곧 과거의 그 무력했던 시절로 돌아가 다시금 학살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원초적인 공포와 직결된다. 세계의 비난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나를 지켜줄 힘이 사라진다는 공포,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 중동이라는 지정학적 특수성이 더해진다. 이스라엘은 사방이 적대적이거나 잠재적 위협이 되는 세력들로 둘러싸인 섬과 같은 존재다. 이 거칠고 냉혹한 동네에서 '약함'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는 믿음이 지배적이다. 그들이 신봉하는 '억지력(Deterrence)'은 단순히 상대를 겁주는 수준이 아니다. 감히 우리를 건드리면 상상할 수 없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각인시켜야만 생존이 담보된다는 처절한 생존 논리다.
지난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은 이스라엘이 자랑하던 '안보 신화'를 산산조각 냈다.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던 집 안방에서 가족이 살해당하고 납치당하는 모습은 국가의 존재 이유 자체를 뒤흔들었다. 무너진 억지력을 복원하기 위해, 그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잔혹하고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다. 어설픈 휴전이나 타협은 주변의 다른 적대 세력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두려움이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비장한 민족적 각오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우리는 현실 정치의 추악한 이면도 직시해야 한다. 현재 이스라엘 내부의 복잡한 정치 상황, 특히,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정치적 생존 문제가 이 전쟁과 깊숙이 얽혀 있다. 전쟁 전부터 사법 리스크와 정치적 위기에 몰려 있던 그에게, 이 전쟁은 역설적으로 권력을 유지하게 해주는 동력이 되고 있다. 전쟁이 계속되는 한, 책임 추궁은 유예되고 정권은 유지된다. 강경한 극우 세력과의 연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그는 멈출 수 없는 폭주 기관차 위에 올라탄 형국이다.
결국,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 공격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의 단순한 원인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그것은 수천 년간 이어져 온 박해의 역사적 트라우마가 만들어낸 '절대 안보'에 대한 강박,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중동 질서 속에서의 생존 본능, 그리고 내부 정치의 복잡한 셈법이 뒤엉켜 만들어낸 비극적인 결과물이다.
세계의 비난이 그들의 귀에 닿지 않는 것은, 그들의 귀가 먹어서가 아니다. 그들의 내면 깊은 곳에서 울리는 과거의 비명과 미래의 공포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다시는 나라 없는 설움을 겪지 않겠다는, 그래서 내가 살기 위해선 상대를 철저히 짓밟아야 한다는 그 처절하고도 비정한 다짐이, 오늘도 가자 지구의 하늘을 잿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이 비극의 연쇄를 끊어낼 지혜가 과연 인류에게 남아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참담한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