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상력은 어떻게 한 아이를 구원했는가
― 어른의 눈으로 다시 읽는 《괴물들이 사는 나라》
1964년 칼데콧 상을 수상한 그림책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오랫동안 ‘어린이를 위한 책’이라는 범주에 묶여 있었다. 그러나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이 작품이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논의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 책은 아이의 상상력을 빌려, 사실상 ‘어른의 감정’과 ‘인간의 내면’을 다루는 보기 드문 그림책이기 때문이다. 저자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모리스 샌닥은 이 짧은 이야기 안에 분노, 욕망, 통제, 그리고 귀환이라는 인간 보편의 서사를 압축해 넣었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늑대 옷을 입고 장난을 치던 소년 맥스는 엄마에게 벌을 받아 방에 갇힌다. 여기까지는 흔한 훈육의 장면이다. 그러나 이 책이 특별해지는 순간은 바로 그 ‘방’이 변하기 시작할 때다. 벽은 숲이 되고, 바닥은 강이 되며, 현실은 서서히 환상으로 치환된다. 맥스는 배를 타고 괴물들이 사는 나라로 떠난다.
이 장면은 단순한 공상이나 도피가 아니다. 성인의 시선으로 읽을 때, 이는 억압된 감정이 만들어내는 내적 공간에 가깝다. 벌을 받은 아이는 풀이 죽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분노와 공격성을 온전히 받아줄 세계를 상상해낸다. 괴물들의 나라는 맥스의 감정이 외부 세계의 규칙에서 해방된 장소다.
괴물들은 무섭게 생겼지만, 맥스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그는 단숨에 괴물들을 제압하고 왕이 된다. 여기에는 흥미로운 권력의 전도가 있다. 현실에서 가장 약자인 아이는 상상 속에서 절대 권력자가 된다. 괴물들은 어른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통제와 규율을 상징하지 않는다. 오히려 맥스의 분노를 함께 소리 지르고 춤추며 소비해주는 존재들이다.
이 대목에서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기존의 도덕 교훈형 아동서사와 완전히 결별한다. 맥스는 자신의 공격성 때문에 벌을 받았지만, 그 공격성 자체가 ‘교정’되지는 않는다. 그는 괴물들과 함께 소란을 벌이고, 마음껏 소리 지른다. 감정은 억압되지 않고 충분히 발산된다.
이 책의 가장 성숙한 지점은 결말에 있다. 맥스는 왕의 자리를 내려놓고 괴물들의 나라를 떠난다. 이유는 단순하다. “맛있는 음식 냄새” 때문이다. 여기에는 강력한 상징이 숨어 있다. 현실은 여전히 따뜻하고, 안전하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맥스는 알고 있다. 그는 추방당하지 않는다. 스스로 돌아가기로 ‘선택’한다.
어른 독자에게 이 장면은 유독 깊게 다가온다. 우리는 종종 분노와 환상 속에 오래 머물고 싶어 하지만, 결국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맥스의 귀환은 패배가 아니라 성장이다. 감정을 충분히 경험한 뒤,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능력. 이것이 이 책이 말하는 성숙이다.
이 작품이 현대 그림책의 교과서로 불리는 이유는 서사뿐 아니라 형식에 있다. 현실 장면에서는 여백이 넓고 그림이 작다. 그러나 환상의 세계로 들어갈수록 여백은 점점 사라지고, 마침내 페이지 전체를 그림이 채운다. 이는 독자에게 ‘세계가 확장되고 있다’는 감각을 시각적으로 각인시킨다.
특히 글이 완전히 사라지고 그림만 남는 괴물들의 놀이 장면은, 언어 이전의 감정 상태를 떠올리게 한다. 설명되지 않는 기쁨과 분출되는 에너지. 이는 아이뿐 아니라 언어로 감정을 정리하는 데 익숙해진 어른에게도 강렬한 체험으로 남는다.
1963년 출간 당시, 이 책은 “어린이를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묘사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로 이듬해 칼데콧 상을 수상했다. 샌닥은 아이를 미성숙한 존재가 아니라, 감정을 가진 독립된 인간으로 그렸다. 그의 수상 소감에서 드러나듯, 그는 어린이의 고통과 분노를 지우는 세계를 거부했다.
오늘날 이 책은 아동심리, 예술교육, 심리치료 영역에서도 자주 언급된다.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상상이라는 안전한 공간에서 소화한 뒤,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과정은 매우 현대적인 치유의 모델이기도 하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어른에게 묻는다.
우리는 언제 마지막으로 분노를 마음껏 상상해 보았는가.
언제 마지막으로 안전하게 소리 지를 공간을 허락받았는가.
그리고 우리는 과연, 돌아올 집이 있다는 확신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가.
짧은 분량, 단순한 문장, 기괴한 그림. 그러나 이 책이 남기는 질문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아이의 이야기로 포장된 이 작품은 사실상 인간 내면에 대한 가장 정직한 보고서에 가깝다. 그래서 이 책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읽힌다. 아이에게는 상상의 자유를, 어른에게는 잊고 지낸 감정의 복원을 선물하는 그림책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