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을 따라 내려오는 7번 국도는 한때 여행의 상징이었다. 사람들은 화진휴게소에서 콩나물라면을 먹고, 바로 뒤편으로 펼쳐진 푸른 바다를 보며 설레는 마음으로 여정을 시작하곤 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화진해수욕장은 천천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졌다.
오래된 휴게소는 철거되었고, 백사장엔 바람 소리만 남았다. 더 이상 이곳을 찾는 발걸음이 없다는 말을 지역 주민들은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 고요를 깨뜨린 것은 거대한 개발도, 대규모 자본도 아니었다. 바다를 정면으로 마주한 작은 숙소, 슬로우오션 이었다.
2019년, 이 바다에 슬로우오션이 등장했다. 특별한 상권도, 주변 관광지도 없던 시기였다. “사람 없는 곳에 무슨 숙소냐”는 우려가 뒤따랐지만, 오히려 그 적막함이 이 공간의 출발점이 되었다. 운영진은 화려함 대신 하나의 전략을 선택했다. 슬로우오션 풀빌라를 단순한 숙소가 아니라 ‘파도처럼 천천히 회복되는 경험’을 주는 공간으로 만든 것이다.
객실 정면에 통창을 내어 바다를 온전히 받아들이도록 하고, 차갑고 고요한 동해의 밤에도 쉬어갈 수 있도록 24시간 온수풀을 유지했다. 슬로우오션 풀빌라를 찾은 여행자는 대부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휴식이 되는 장소”라는 후기를 남기기 시작했다.
초창기엔 손님을 모으기 위해 직접 이벤트를 기획하기도 했다. 잔잔한 바다 마을에서 열렸던 작은 풀파티, 음악 공연, 가족 참여 프로그램은 예상 밖의 반응을 얻었다. SNS에 퍼진 후기 한 줄은 또 다른 방문객을 불러왔고, 적막하던 해변에 다시 사람의 소리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슬로우오션 풀빌라 운영진은 그 과정을 두고 “손님이 오길 기다린 게 아니라, 우리가 먼저 바다를 다시 소개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물론 모든 길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태풍 피해로 영업을 중단해야 했던 날, 예기치 못한 시설 점검, 누수와 보수 문제 등은 반복적 부담이었다. 그럼에도 슬로우오션 풀빌라는 가능한 한 매일 문을 열었다. 휴게소가 사라진 뒤 불이 꺼진 바다에서, ‘항상 켜져 있는 한 곳’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이 작은 집념이 지역의 변화를 조금씩 만들어냈다.
7년이 흐른 지금 화진해수욕장의 풍경은 처음과 다르다. 주변엔 새로운 카페와 숙소가 들어서고, 가족 단위 방문객도 꾸준히 늘었다. 최근 대형 오션뷰 카페가 문을 연 뒤 주말마다 만차가 이어지고, 해변은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주민들 역시 바다 주변을 정리하고 쓰레기를 치우며 “손님을 맞이하는 마을”을 스스로 만들어갔다. 이 변화의 첫 불씨가 슬로우오션 이였다는 사실을 지역 사람들도 잘 알고 있다.
숙소의 대표는 “동해안의 전성기는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다시 올 것”이라고 말했다. 관광버스가 줄을 서던 과거의 전성기가 아니라, 각자의 이야기를 가진 여행자가 조용히 찾아와 회복을 얻고 돌아가는 새로운 전성기다. 슬로우오션은 앞으로도 매일 불을 밝힐 계획이다. 단지 숙소 운영이 아니라, 이 바다의 시간을 다시 돌려놓기 위한 작은 실천처럼.
그리고 그 실천이 모여, 잊힌 해변이 다시 사람을 부르는 지금의 풍경을 만들었다. 결국 지역을 바꾸는 힘은 거대한 계획이 아니라, 사라진 자리에서 포기하지 않고 불을 켜두는 누군가의 꾸준함일지도 모른다. 이 바다에서 그 역할을 맡은 이름은 분명하다. 슬로우오션 풀빌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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