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태풍 치던 밤 부군수실의 불빛, 현장이 답이다

글 : 박우식 (산청행복연구소장 / 前 경상남도 건설방재국장)


[박우식의 산청 안전 리포트 5부작]

제3편: 현장 경험 (교훈)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밤이면, 퇴직한 지금도 가끔 잠에서 깬다. 40여 년 공직 생활 중 절반 이상을 재난 현장에서 보낸 탓에 생긴, 떼려야 뗄 수 없는 습관이다.

경상남도 함안군 부군수로 재직하던 시절, 대형 태풍이 경남을 강타했던 어느 여름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도내 전역에서 침수 피해 보고가 빗발치고 상황실 전화통은 불이 났다. 밤새 배수장가동상태를 점검하며 뼈저리게 느낀 것은 ‘현장의 외로움’과 ‘판단의 무게’였다.

당시 한 시골 마을의 제방 붕괴 위험이 감지되었다. 매뉴얼 상 수위는 아직 ‘경계’ 단계였지만, 현장의 읍면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느낌이 다르다. 흙빛이 변했다”고 보고했다. 나는 즉시 매뉴얼을 넘어선 ‘선제적 전원 대피’를 지시했다. “오버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주민들이 대피한 직후 제방 일부가 유실되었다. 만약 그때 “규정상 아직 아니니 기다리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등골이 서늘하다.

재난 행정은 책상 위 서류가 아니다. 흙탕물 튀기는 현장이고, 주민의 절박한 목소리다. 그때 배운 교훈은 명확하다. “재난 대응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선제적이어야 하며, 현장의 직관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고향 산청의 현실을 돌아본다. 작년 수해 때, 우리 군민들은 “군청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 “이장님이 안 계셔서 대피를 못 했다”고 호소했다. 컨트롤타워가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재난 현장에는 책임을 지는 리더가 있어야 한다. 비가 오면 다리가 튼튼한지, 눈이 오면 고갯길 염수 분사장치는 작동하는지, 내 집 문단속하듯 챙기는 ‘현장형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본 기고문은 필자의 개인적 견해와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된 글로, 특정 정책·행정 판단·제도 개선에 대한 제안은 참고 의견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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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5.12.20 18:56 수정 2025.12.20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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