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곁의 세상으로” — 탈시설 장애인 11명의 진짜 일상과 사회의 민낯
“가난하고,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왜 시설에서 살아야만 하는가?”
서중원의 《나, 함께 산다》는 이 단순하지만 불편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 책은 한국 사회의 깊은 그림자 속에서 오랫동안 ‘비정상’으로 규정된 채 살아온 장애인들이 자신만의 목소리로 세상에 말을 걸기 시작한 기록이다.
11명의 장애인들이 시설을 떠나 ‘자립’이라는 낯선 세상에 발을 딛는 과정은 결코 낭만적인 해방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차가운 현실과 싸우며, 여전히 사회가 부여한 벽을 넘어서는 투쟁이다. 책은 그들의 투쟁이 단지 제도와의 싸움이 아니라 “존엄을 회복하고, 인간으로서 관계를 맺는 법을 다시 배우는 여정”임을 보여준다.
시설에서 나와 ‘함께 산다’는 것은 단지 물리적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삶의 방식 전체를 다시 세우는 일이었다.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자립은 혼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는 점이다.
책 속의 인물들이 공통으로 털어놓는 첫 번째 기억은 ‘시설’이라는 이름의 감옥이다.
그곳은 씻을 자유, 외출의 자유, 심지어 사랑할 자유조차 허락되지 않는 곳이었다. ‘장애인 보호시설’이라는 이름 아래, 인간의 존엄이 규율과 관리로 대체된 공간이었다.
시설에서의 삶은 철저히 타인의 결정에 의해 운영됐다. “무엇을 먹을지, 언제 잘지, 누구와 대화할지”조차 스스로 정할 수 없는 곳. 그 속에서 장애인은 인간이 아닌 ‘관리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이 책은 그러한 공간이 어떻게 사회적 합리성의 이름으로 유지되어 왔는지를 집요하게 묻는다.
더 큰 문제는, 시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단지 행정의 문제가 아니라 ‘정상’에 대한 사회의 편견 때문이라는 것이다. 비장애 중심의 사회는 장애인을 여전히 ‘돌봄의 대상’으로만 인식하며,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상상하지 않는다. 이 책은 그 오래된 상식에 균열을 낸다.
시설 밖으로 나온 이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관계 맺기’다.
이상분과 유정우 부부는 시설에서 만나 사랑을 키워왔고, 탈시설 이후 부부로 살아가며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김범순은 자신의 하루를 “먹고 자는 것 이상의, 사람 간의 관계로 이루어진 시간”이라 표현한다.
《나, 함께 산다》는 이들이 겪는 일상의 변화 — 이웃과의 대화, 시장에서의 장보기, 버스 타기, 친구와의 저녁 약속 같은 일상적 행위 — 가 얼마나 인간다운 삶의 증거인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 일상은 결코 쉽지 않다. 장애인을 위한 교통, 의료, 주거, 활동보조 제도가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이다. 탈시설은 사회 제도의 개선 없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 책은 “자립은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 선택이다”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책의 마지막 장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 몸으로 어떻게 살아가겠냐”는 의심이 아니라, “당신에게는 무엇이 필요합니까?”라는 질문으로 사회의 시선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한 문장은 장애인 인권운동의 핵심이자, 진정한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다.
탈시설 운동은 ‘장애인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사는 사회를 위한 운동’이다. 사회가 장애인에게 필요한 환경을 묻고, 그것을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 바로 시민적 연대의 출발이기 때문이다.
서중원은 인터뷰를 통해, “자립은 연습이 아니라 지금, 함께 살아보는 일”이라 말한다.
그 말 속에는, 완벽한 준비보다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용기가 담겨 있다.
《나, 함께 산다》는 단순한 인터뷰집이 아니다.
이 책은 탈시설 장애인들의 삶을 통해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공존의 감각’을 되묻는다.
장애인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동정이나 시혜가 아니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다.
이 책의 11명은 단지 시설을 떠난 사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새로운 시민으로 거듭난 사람들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초대장을 보낸다. “이제 당신이 들을 차례”라고.
그 초대에 응답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함께 살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묻는 일이다.
《나, 함께 산다》는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자유란 혼자가 되는 게 아니라, 함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