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아남은 자의 무게를 견디는 법” — 백온유 『유원』이 던지는 진짜 용기
사람들은 흔히 비극적인 사건의 생존자에게 ‘기적’이라는 말을 붙인다.
하지만 그 말 뒤에는 보이지 않는 무거운 그림자가 있다.
백온유의 장편소설 『유원』은 그늘진 그 영역, 즉 ‘살아남은 이후의 삶’을 섬세하게 비춘다.
열여덟 살 주인공 유원은 어린 시절 화재에서 혼자 살아남았다.
언니는 동생을 감싸 안은 채 세상을 떠났고, 유원을 구해준 이웃 아저씨는 다리를 잃었다.
세상은 그 사건을 ‘기적의 생존’이라 불렀지만, 유원에게 그것은 끝나지 않은 속죄의 서사였다.
『유원』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피하지 않는다.
대신 그 안에서 인간이 얼마나 복잡한 감정의 생명체인지,
그리고 그 복잡함을 안고도 여전히 하루를 살아낼 수 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묻는다.
이는 단지 청소년 성장소설이 아니라, 상처를 경험한 모든 성인을 위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유원은 세상 사람들에게 ‘이불 아기’, ‘희망의 아이’로 기억된다.
하지만 그 이름이 주는 찬사는 곧 감당해야 할 짐으로 변한다.
사람들은 여전히 ‘불 속에서 살아남은 아이’를 떠올리며,
유원은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언니 몫까지 행복해야 한다”고 자신을 다그친다.
백온유는 이 단순한 설정을 통해 사회가 피해자에게 부여하는 도덕적 의무감의 폭력성을 포착한다.
언니를 잃은 아픔보다 더 무거운 건 ‘살아남은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삶’이다.
소설은 이러한 무거운 윤리적 구조 속에서, 인간이 스스로를 용서하기까지의 시간을 차분히 그려낸다.
유원의 고통은 특별한 트라우마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언젠가 마주할 “살아남은 자의 불편한 감정”이다.
유원의 성장은 거창한 사건이나 외부의 구원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을 구한 아저씨를 향한 연민과 혐오, 그리고 부모의 기대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그 과정에서 만난 친구 수현은 ‘공감의 시작이 곧 치유의 시작’임을 일깨워준다.
소설은 “치유란 좋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발견하는 것”이라는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의 말처럼, 감정의 진실을 마주하는 용기를 보여준다.
유원은 죄책감을 떨쳐내려 애쓰지 않는다. 오히려 그 감정을 껴안음으로써 성장한다.
이는 성인 독자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누구나 마음속에 자신만의 ‘사건’을 품고 살아가며, 그 상처를 드러내는 일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용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유원의 이야기는 ‘타인이 붙여준 이름’을 벗겨내는 과정이다.
‘생존자’, ‘기적의 아이’, ‘불쌍한 소녀’라는 세상의 시선을 뒤로하고
자신의 이름 ‘유원(柔願)’—‘부드럽게 원하다, 희망하다’—을 다시 의미화하는 여정이다.
백온유는 인물의 내면을 과도하게 해석하거나 감상적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대신 차분한 문장, 세밀한 감정 묘사, 절제된 서사로 인간 내면의 결을 포착한다.
그래서 『유원』은 단순한 성장서사가 아니라 자기 인식의 서사다.
그것은 “누구나 언젠가 스스로를 구원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유원』을 덮고 나면, 우리는 비로소 안다.
“용기란 높은 곳에 서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줄 알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것”이라는 사실을.
유원은 더 이상 과거의 ‘사건’에 갇힌 인물이 아니다.
그녀는 살아남은 자의 무게를 스스로의 이름으로 감당하며, 그 무게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간다.
이 작품은 우리 모두에게 말한다.
삶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상처는 쉽게 사라지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일이야말로 진짜 용기라고.
『유원』은 성장을 잃어버린 어른들에게 다시금 묻는다.
“당신은 지금, 살아내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