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 중 누군가 아프면 집안이 기운다는 옛말이 있다. 하지만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대한민국에서 이는 더 이상 옛말이 아닌 참혹한 현실이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감당하기 힘든 간병비 부담으로 인해 가족 전체가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른바 '간병 파산'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경기도가 추진 중인 선제적 복지 정책이 저소득층 노인 가구에 단비가 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경기도는 지난 2월부터 전국 광역자치단체 최초로 시행한 ‘간병 SOS 프로젝트’의 수혜자가 시행 10개월 만에 1,000명을 돌파했다고 8일 공식 밝혔다. 도에 따르면 12월 3일 기준, 해당 프로젝트를 통해 간병비 지원을 받은 도민은 총 1,079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단순한 수치적 달성을 넘어,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천여 가구가 위기 상황을 넘겼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광역지자체 최초 ‘직접 지원’, 간병비 부담의 둑을 막다
‘간병 SOS 프로젝트’는 경기도 내 거주하는 저소득층 노인(65세 이상)이 상해나 질병으로 급성기 병원급 의료기관에 입원했을 때 발생하는 간병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기획됐다. 핵심은 ‘직접 지원’이다. 기존의 바우처 형식이나 복잡한 절차를 간소화하고, 환자 본인에게 연간 최대 120만 원의 간병비를 실비로 지원한다.
사실상 하루 간병비가 15만 원을 웃도는 현실에서 저소득층에게 입원은 곧 생존의 위협이다. 경기도의 이번 프로젝트는 이러한 현실적 고통을 분담하겠다는 지자체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물이다. 지원 대상은 중위소득 120% 이하의 취약계층으로 설정하여, 꼭 필요한 곳에 예산이 흐르도록 설계했다.
현장의 목소리, “단순한 돈이 아닌 생명줄이었다”
정책의 효과는 수혜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입증되고 있다. 지원을 받은 보호자들은 한결같이 경제적 부담 완화뿐만 아니라 심리적 안정감을 가장 큰 효과로 꼽았다.
여주시에 거주하며 알코올 의존증을 앓는 남동생을 37년째 홀로 돌봐온 70대 A씨의 사연은 주위를 숙연하게 했다. A씨는 "동생이 인지기능 저하로 걷는 것조차 힘겨워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상황이었다"며 "피붙이가 없어 나 혼자 끙끙 앓으며 버텨왔는데, 간병비 지원 덕분에 며칠이라도 전문 간병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 며칠이 나에게는 숨을 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고 정신적으로 큰 위로가 됐다"고 털어놓았다.
남양주에 거주하는 직장인 B씨의 사례는 일과 간병을 병행해야 하는 현대인의 고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다발성 골수종으로 쓰러진 시어머니를 모셔야 했던 B씨는 "어머님이 한 달 가까이 입원하셔야 했는데, 자식들이 생업을 포기하고 병실을 지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며 "간병 SOS 프로젝트 덕분에 간병인을 고용할 수 있었고, 가족 모두가 직장을 잃지 않고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또한 뇌출혈과 뇌경색이라는 중증 질환으로 쓰러진 남편을 2년 반 동안 수발해 온 의왕시의 60대 C씨는 "병원비와 약값으로 통장 잔고가 늘 바닥을 보여 불안감에 시달렸다"면서 "생각지도 못한 120만 원이라는 지원금이 들어왔을 때, 단순히 돈이 생긴 것이 아니라 우리 부부가 사회로부터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15개 시군서 우선 시행, 신청 문턱 낮춰 접근성 강화
현재 이 사업은 경기도 내 모든 지역이 아닌, 수요조사를 통해 선정된 15개 시군에서 시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해당 지역은 화성, 남양주, 평택, 시흥, 광주, 광명, 이천, 안성, 양평, 여주, 동두천, 가평, 연천, 과천, 의왕 등이다. 도농복합도시가 다수 포함되어 있어 의료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지역의 노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경기도는 신청 절차의 간소화에도 공을 들였다. 복잡한 서류 제출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을 위해 거주지 읍면동 행정복지센터를 통한 방문 신청은 물론, ‘경기민원24’ 웹사이트를 통한 온라인 신청 창구도 열어두었다. 또한 경기도 내 서민금융복지지원센터에서도 상담과 신청이 가능하도록 하여 접점 채널을 다각화했다.
초고령화 시대, ‘사회적 간병’의 필요성 입증
전문가들은 이번 경기도의 성과가 중앙정부 차원의 간병비 급여화 논의에도 긍정적인 데이터를 제공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적 간병에 의존하던 기존 시스템이 한계에 봉착한 상황에서, 지자체의 재정을 투입해 공적 돌봄의 영역을 확장한 성공적인 모델이기 때문이다.
경기도 관계자는 "1천 명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실적을 넘어 도민들의 간절한 필요가 반영된 결과"라며 "앞으로도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지원 대상을 확대하고 절차를 더욱 편리하게 개선하여, 돈이 없어 치료와 간병을 포기하는 도민이 없도록 촘촘한 복지 안전망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간병 문제는 더 이상 개인의 효심에만 맡길 수 없는 사회적 재난이다. 경기도의 '간병 SOS 프로젝트'가 던진 작은 돌멩이가 대한민국 복지 정책의 호수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1,079명의 도민이 느낀 안도감이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정책의 지속적인 보완과 확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요약 및 기대효과]
요약: 경기도가 지난 2월부터 시행한 '간병 SOS 프로젝트'가 10개월 만에 수혜자 1천 명을 돌파했다. 65세 이상 저소득층에게 연간 최대 120만 원의 간병비를 지원하는 이 사업은 보호자들의 경제적 부담과 심리적 고통을 크게 줄여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도내 15개 시군에서 시행 중이며, 온·오프라인을 통해 간편하게 신청할 수 있다.
경기도의 '간병 SOS 프로젝트'는 초고령화 사회의 뇌관인 간병비 문제를 지자체가 선제적으로 해결하려 한 모범 사례다. 수혜자 1천 명 돌파는 이 정책의 실효성을 입증하는 지표이며, 향후 지원 지역 확대와 예산 증액을 통해 '간병 걱정 없는 사회'를 만드는 초석이 되어야 한다. 단순한 비용 지원을 넘어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복지 정책으로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