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분 1초가 생사를 가르는 응급 의료 현장. 환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골든타임' 사수는 모든 의료진과 지자체의 숙원이다. 이러한 가운데 경기도가 국내 최초로 응급의료와 외상 분야의 칸막이를 걷어내고, 도민의 생명 안전망을 촘촘하게 엮기 위한 대대적인 혁신에 나섰다.
12월 3일, 수원 이비스 앰배서더 호텔에서 열린 ‘2025년 경기도 응급의료·외상체계 발전대회’는 단순한 학술 대회를 넘어선, 생명을 지키기 위한 치열한 고민의 장이었다. 국립중앙의료원,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 외상센터, 119구급대, 보건소 등 현장을 지키는 200여 명의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별도의 트랙으로 운영되던 응급의료와 외상 체계가 하나의 테이블에서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료계 안팎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칸막이 없는 '통합 거버넌스', 생존율 향상의 열쇠
이번 대회의 가장 큰 특징은 '통합'과 '공유'였다. 기존에는 응급 환자와 중증 외상 환자의 이송 및 처치 체계가 미묘하게 분리되어 있어, 현장에서의 혼선이나 데이터의 불일치가 발생하곤 했다. 경기도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 분야의 정책과 데이터, 그리고 현장의 생생한 경험을 통합하는 시도를 감행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올 한 해 재난 및 응급 의료 현장에서 헌신한 유공자 10명(기관 포함)에게 도지사 표창이 수여되며 그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하지만 분위기는 이내 진지한 토론으로 이어졌다.
첫 번째 세션의 포문을 연 민영기 경기도 응급의료지원단장은 경기도의 현주소를 냉철하게 진단했다. 민 단장은 "도내 인구 규모는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이에 비해 응급의료 자원은 여전히 구조적 부족함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하며, "단순한 자원 확충을 넘어 응급의료지원단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거버넌스 구축만이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한정된 의료 자원을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결하느냐가 생존율을 결정한다는 핵심을 찌른 것이다.
적절한 환자를, 적절한 곳에, 적절한 때에
이어 마이크를 잡은 정경원 경기도 외상체계지원단장은 외상 사망률 '제로(Zero)화'라는 담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정 단장이 강조한 원칙은 \\'Right Patient to Right Place at Right Time(적절한 환자에게 적절한 장소와 시기에 조치)'\\이었다. 이는 중증 외상 환자가 발생했을 때, 119 구급대가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판단하고 수용 가능한 최적의 병원으로 지체 없이 이송하는 시스템의 완결성을 의미한다. 정 단장은 이를 위해 지원단이 추진 중인 다양한 사업들을 소개하며, 예방 가능한 외상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낮추겠다고 공언했다.
소아·고위험 산모 등 필수의료 사각지대 해법 모색
두 번째 세션에서는 최근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어졌다. 특히 소아 응급 환자와 고위험 산모·신생아 등 의료 취약 계층이 겪는 응급실 수용 지연 문제는 현장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
토론자들은 "병원 간의 전원 절차가 복잡하고, 실시간 병상 정보 공유가 원활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병원 중심의 전원-연계-수용 역량 강화'가 제시되었다. 즉, 환자를 보낸 병원과 받는 병원, 그리고 이송을 담당하는 소방 간의 핫라인을 강화하고, 책임을 명확히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지막 세션에서는 선진국형 모델 도입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다. 독일의 병원 전(Pre-hospital) 의료 시스템을 벤치마킹하여 국내 실정에 맞게 적용하는 방안과 함께, 경기도의 예방가능 외상사망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구체적인 개선 목표가 설정되었다. 이는 경기도의 응급 의료 수준을 글로벌 스탠다드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내년은 지역 완결적 대응 체계 완성의 원년
유영철 경기도 보건건강국장은 폐회사를 통해 "2025년은 응급과 외상 분야가 처음으로 손을 맞잡고 현장을 되돌아본 역사적인 해로 기록될 것"이라며, "오늘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내년에는 지역 내에서 모든 응급 상황이 해결되는 '지역 완결적 응급·외상 대응 체계'를 구축하는 데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경기도의 이번 발전대회는 단순한 행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도민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정, 의료, 소방이 '원팀(One Team)'으로 뭉쳤다는 신호탄이기 때문이다. 1,410만 도민의 생명 안전망이 이번 대회를 기점으로 얼마나 더 단단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응급의료와 외상 체계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이번 경기도의 통합 발전대회는 분절되어 있던 의료 자원을 하나로 묶어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논의된 정책들이 현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한다면, 경기도는 대한민국 응급의료의 새로운 표준(New Normal)을 제시하는 선도적인 지자체가 될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꾸준한 실행과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지속적인 피드백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