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냥 농담이었는데요” “경찰관님, 저 정말 억울해요. 그냥 농담으로 한 말인데 왜 이렇게 큰 문제가 되는 건가요?” 5년 전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사건을 조사하던 중 만난 40대 과장의 말이었다. 그는 신입사원에게 "너는 지방대 출신이라 머리 회전이 좀 느리지?"라고 말했고, 그 신입사원은 결국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가해자는 진심으로 '농담'이라고 생각했지만, 피해자에게는 매일 출근길을 괴롭게 만드는 고통이었다.
35년간 경찰로, 그리고 인권교육자로 활동하며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선량한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모습이었다. 대부분은 악의가 없었다. 단지 '무심함'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 무심함이 누군가에게는 깊은 상처가 되고, 때로는 인생을 바꿔버리는 큰 사건이 되기도 한다.
◆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고 죽인다
"아, 이 아줌마가 또 왔네"
동네 편의점에서 들었던 20대 알바생의 말이다. 그 '아줌마'는 60대 청소 일을 하시는 분이었는데, 매일 새벽 일을 마치고 삼각김밥 하나를 사가시는 단골손님이었다. 알바생에게는 그냥 습관적으로 나온 말이었지만, 그 할머니의 표정이 순간 굳어지는 것을 목격했다.
나중에 그 할머니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손님이라고 불러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런데 '아줌마'라고 하면... 제가 그냥 귀찮은 존재인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파요." 같은 상황에서 다른 편의점 직원은 "어머니,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라고 인사했다. 똑같은 손님, 똑같은 상황이지만 받는 느낌은 천지차이였다.
◆ “외국인이 한국말을 참 잘하네요”
한 기업 인권교육에서 만난 베트남 출신 직원의 이야기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한국인이었지만, 외모 때문에 끊임없이 이런 말을 들어야 했다. "칭찬하려고 하신 말씀인 건 알아요. 하지만 저에게는 '너는 영원히 외국인이야'라는 뜻으로 들려요. 저도 이 나라에서 태어난 한국인인데 말이에요." 선의로 한 말이지만, 상대방에게는 소속감을 박탈당하는 느낌을 주었던 것이다.
◆ 외모와 관련된 무심한 말들
"살 좀 빼야겠네", "키가 작아서 불편하겠다", "피부가 왜 이렇게 거칠어?"
이런 말들은 상대방의 외모를 평가하고 판단하는 차별적 언행이다. 한 여고생은 친구의 무심한 한마디 때문에 6개월간 등교를 거부했다. "너는 뚱뚱해서 교복이 안 어울려." 말한 친구는 금세 잊었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평생 기억에 남는 상처가 되었다.
최근 한 기업 교육에서 참가자가 소감을 나누었다. "저는 지금까지 차별을 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오늘 교육을 듣고 보니, 무의식중에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는 정말 조심하겠습니다." 그렇다. 우리 대부분은 악의 없이 살아간다. 하지만 악의가 없다고 해서 상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깨닫는 것이고, 변화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한 워크숍에서 만난 70대 할아버지의 말씀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나이 들어서도 배울 게 이렇게 많구나. 우리 손자한테 '남자가 왜 이렇게 우냐'고 말하지 말아야겠어. 그 애도 하나의 사람인데, 내가 함부로 판단할 권리가 없지.“
35년간 현장에서 보고 느낀 것은 이것이다. 인권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일상 속 작은 배려에서 시작된다. 오늘부터 우리의 말 한마디, 시선 하나가 누군가에게 상처가 아닌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작은 차별을 멈추는 것, 그것이 큰 변화의 시작이다.
[칼럼니스트 프로필]

전준석 칼럼니스트는 경찰학 박사를 취득하고 35년간 경찰관으로 근무한 뒤 총경으로 퇴직해 한국인권성장진흥원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인사혁신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등에서 전문강사로 활동하며 성인지 감수성, 4대 폭력 예방, 양성평등, 리더십과 코칭, 인권 예방, 자살예방, 장애인 인식 개선, 학교폭력 예방 등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범죄심리학』, 『다시 태어나도 경찰』, 『그대 사랑처럼, 그대 향기처럼』, 『4월 어느 멋진 날에』가 있다.
경찰관으로 35년간 근무하면서 많은 사람이 인권 침해를 당하는 것을 보고 문제가 있음을 몸소 깨달았다. 우리 국민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차별이라는 것이 없어지고 인권이 성장할 것이다. 그런 생각에서 [삼시세끼 인권, 전준석 칼럼]을 연재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