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벼랑 끝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우리는 일상 속에서 많은 사람들을 스치듯 지나친다. 밝아 보이지만 사실은 한계에 가까운 삶을 견디는 이들도, 도움을 요청하고 싶지만 말로 꺼낼 힘조차 없는 이들도 존재한다. 『누구도 벼랑 끝에 서지 않도록』은 그런 이들의 목소리가 외면되지 않도록 기록된 책이다.
저자인 이문수 신부는 천주교 사제로서 사회복지 현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는 문제를 ‘특별한 이야기’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현실로 바라보며, 삶의 균열이 얼마나 쉽게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사회의 변두리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의 친구이자 이웃이며 때로는 바로 우리 자신일 수도 있다.
이문수 신부의 시선은 연민이나 동정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누군가의 위기를 ‘개인의 불운’이나 ‘노력 부족’으로 설명하는 대신, 사회 구조와 관계망 속에서 발생하는 문제로 바라본다. 이 관점은 독자가 ‘타인의 문제’라고 거리를 두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위기는 특정한 조건의 사람에게만 닥치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선은 독자가 스스로의 삶까지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지닌다.
위기 앞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회복력과 연대
책은 누군가의 손길이 절박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조용히 보여준다. 작은 관심, 한 번의 방문, 한마디의 격려가 누군가에게는 추락을 멈추는 결정적 순간이 되기도 한다. 이문수 신부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 ‘연대의 힘’을 강조한다. 연대는 거창한 정의 실현의 움직임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행동에서 시작된다. 사회적 고립이 심화되는 오늘날, 누군가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는 일조차 서로를 지켜내는 중요한 행위가 된다.
특히 노인 고독사, 아동 방임, 갑작스러운 가족 해체와 같은 문제들은 단순히 복지 제도로만 해결되기 어렵다. 제도의 도움 이전에 가장 먼저 닿는 것은 ‘사람의 손’이다. 지역 사회의 관심, 이웃 간의 관계, 위기를 감지하는 민감한 시선 등이 결합될 때 비로소 위험은 완만해지고 삶은 다시 균형을 찾기 시작한다.
이문수 신부가 전하는 사례들은 이러한 메시지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위기의 순간에 누군가의 작은 행동이 어떤 가능성을 열어주는지, 그리고 한 사람의 변화가 또 다른 사람에게 어떤 희망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독자는 책 속 이야기를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된다. “나는 누군가의 벼랑 끝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우리가 서로를 지켜야 하는 이유
『누구도 벼랑 끝에 서지 않도록』의 중심에는 결국 하나의 메시지가 있다. 사람을 지키는 힘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이는 단순한 감정적 호소가 아니라 현실적 요구이다. 사회적 위험이 다양해지고 고립이 깊어지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서로에게 더욱 필요한 존재가 된다. 돌봄은 특정 직업군이나 제도의 역할만이 아니다. 이웃의 안부를 살피는 일, 주변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 작은 실천을 지속하려는 마음이 모두 돌봄의 한 형태가 된다.
또한 책은 ‘지속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일시적 도움은 순간을 넘길 수 있지만, 반복적으로 무너지는 삶을 다시 세우기에는 부족하다. 이문수 신부는 사람과 사람의 연결이 지속될 때 공동체가 회복력을 갖게 되고, 비슷한 위기가 반복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리가 서로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그래서 더욱 단단해진다. 타인을 돕는 일은 곧 우리 자신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이 책은 거창한 구호를 앞세우지 않지만, 독자는 읽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림을 경험한다. 누군가의 위기 앞에서 손을 내밀 수 있는 용기와 준비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는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책을 덮고 난 후에도 “나는 누구의 벼랑 끝에 손을 내밀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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