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에게 갈게’라는 한 문장이 만든 기적
이꽃님 작가의 장편소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는 청소년문학상 대상작이라는 수식어를 넘어, 성인 독자들에게 더욱 깊은 울림을 준 작품으로 자리한다. 소설의 형식은 단순하다. 편지. 그러나 이 편지는 한 해를 살아가는 2016년의 은유와, 무려 20년을 뛰어넘으며 세월을 겪는 1982년의 은유를 잇는다. 서로 다른 시간대, 다른 감정의 밀도, 다른 성장의 속도를 가진 두 인물이 시공간을 넘어 편지를 주고받으며 비밀과 상실, 관계의 단절을 마주하는 과정은 독자에게 오래 잊고 있던 감정의 움직임을 되살린다.
성인이 이 이야기에 특히 크게 공명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편지는 단지 과거의 소통 방식이 아니라, 말하지 못했던 마음의 속도를 그대로 담아내는 매개이기 때문이다. 바쁘고 빠른 시대, 관계가 빠르게 소모되는 시대에 ‘편지’는 결코 단순한 장치가 아니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지점을 정교하게 파고든다.
소설은 놀랄 만큼 독창적인 구조로 시작된다. ‘미래의 나에게 쓰는 편지’라는 평범한 과제가 뜻밖에도 34년 전 과거로 도착한다. 이 작은 기적이 두 은유에게는 삶을 바꾸는 시간이 되고, 독자에게는 ‘시간의 간극이 감정의 간극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주는 드라마가 된다.
과거의 은유는 하루하루를 빠르게 지나치며 성인이 되어 간다. 반면 2016년의 은유는 딱 1년의 시간만 흘린다. 서로 다른 속도는 두 사람의 편지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과거 은유는 삶의 폭풍을 겪으며 마음의 결을 다져가고, 현재의 은유는 미묘하고 복잡한 사춘기의 변화 속에서 ‘진짜 나’의 방향을 찾으려 한다.
이 느리고 빠른 시간의 교차는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라, 독자 자신의 삶을 비춰 보는 프리즘이 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속도의 문제이며, 감정은 늘 시간보다 뒤늦게 도착한다는 사실을 절묘하게 상기시킨다.
소설의 핵심은 ‘엄마의 비밀’을 찾는 여정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과정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과거의 은유는 2016년의 은유를 위해 ‘엄마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현재의 은유는 과거의 은유에게 미래를 살아낼 힘을 전한다. 이 교차적 구조는 결국 ‘내가 나를 치유하는 과정’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특히 성인 독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대목은 ‘상실을 마주하는 방식’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결국, 설명되지 않는 상실을 견디는 일이기 때문이다.
작품은 이 상실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 말한다.
“잃어버린 관계는 되찾을 수 없지만, 그 관계가 남긴 사랑은 계속된다.”
청소년을 위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성인 독자층에서 더 폭발적인 호응을 얻은 이유는 ‘화해하지 못한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가족과의 오해, 부모에 대한 그리움, 선택하지 못한 과거에 대한 후회를 품고 있는 성인들은 이 소설에서 자기 자신의 그림자를 발견한다.
두 은유의 편지가 점차 희미해지는 장면은 어른 독자들에게 더욱 먹먹하게 다가온다.
연락의 끈이 닿지 않게 되는 순간,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꺼지는 감각을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일본, 대만, 태국, 러시아 등으로 판권이 수출되고, 드라마·영화 제작이 진행되는 이유는 단순히 ‘재미’ 때문이 아니다.
상실, 가족, 성장, 시간, 그리고 이해.
이 감정의 구조는 언어와 문화를 넘어서 누구에게나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작품은, 독자에게 잊고 있던 사실 하나를 조용히 일깨운다.
“우리는 누군가의 편지 한 장으로도 구원받을 수 있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는 청소년 소설이라는 장르를 넘어, 성인의 마음에 오래 머무는 작품이다. 읽기 전에는 단순히 시간 여행 판타지로 보이지만,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독자는 깨닫는다.
이 소설은 우리가 지나온 시간, 잃어버린 사람, 다시 묻고 싶은 질문들에 대한 답을 건네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편지는 현실에서는 닿을 수 없는 마음을 보내는 행위이고, 이 작품은 바로 그 ‘전달되지 못한 마음’을 기적처럼 연결해 준다.
그리고 성인 독자들은 이 소설을 통해 자신에게도 ‘건너가고 싶은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