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공부를 대신하는 시대, 인간은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이 질문은 최근 국내 주요 명문대에서 발생한 ‘AI 부정행위 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진 뼈아픈 물음이다. 일부 학생들은 인공지능을 활용해 논문과 과제를 대필했고, 시험 문제를 실시간으로 AI에게 풀이시켜 제출하기도 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 부정행위가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제도적 감시의 공백과 대학이 이를 묵인한 구조 속에서 벌어졌다는 점이다.
성실하게 공부한 이들이 오히려 손해를 보는 구조는 대학이 가장 경계해야 할 불신의 씨앗이다. 그러나 지금의 명문대는 그 불신을 방조했다. AI가 만들어낸 완벽한 문장, 정교하게 분석된 답안, 깔끔한 논리 구조는 더 이상 ‘지식의 증거’가 아니라 ‘윤리의 부재’를 드러내는 지표가 되었다.

명문대는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다. 사회적 신뢰를 상징하는 이름이지만, 이번 사태는 그 이름 뒤에 숨어 있던 도덕적 침묵과 제도적 무기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AI는 단지 도구일 뿐이다. 진짜 문제는 그 도구를 사용한 인간의 양심이었다.
최근 생성형 인공지능의 등장은 대학 교육의 틀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GPT 기반 인공지능은 몇 초 만에 논문을 요약하고, 리포트를 작성하며, 복잡한 데이터 분석까지 수행한다. 대학은 이를 ‘학습 도구’로 활용하겠다고 말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감시보다 편의가 우선되는 상황이다.
교수들은 AI를 감별할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고, 학생들은 “AI 사용이 금지된 것이 아니므로 괜찮다”는 논리로 스스로를 정당화했다. 명문대조차도 AI 검증 체계와 윤리 기준을 세우는 일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결국 이번 사태는 일부의 비양심적 행동이 아니라, 감시 부재와 도덕적 회피가 낳은 구조적 문제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기술의 문제’로만 축소하려는 사회적 시각은 더 심각하다.
AI는 도구일 뿐이며, 도구를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그 윤리성은 결정된다. 대학이 이를 통제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관리 실패가 아니라, 교육이 본래 지녀야 할 목적과 책임을 상실한 증거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의 본질이 기술이 아니라 윤리 교육의 부재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 S대 윤리교육과의 한 교수는 “AI는 인간의 사고를 대체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양심이 기능을 멈출 때, 기술은 얼마든지 부정을 합리화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일부 대학은 ‘AI 활용 윤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방어 논리를 폈지만, 그 기준은 모호했다. 어떤 과제는 허용되고, 어떤 시험은 금지된다는 식의 불명확한 지침은 학생들에게 스스로를 정당화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이처럼 회색지대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AI를 잘 활용하는 것이 곧 능력이라는 인식마저 퍼지고 있다. 성실한 학습자의 노력이 평가절하되고, 공정한 경쟁이 작동하지 않는 구조 속에서 교육의 기반은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명문대는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사회의 윤리적 나침반이자 공정한 경쟁의 상징이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AI가 만든 리포트와 인간이 쓴 리포트를 구분하지 못하는 대학이 과연 어떤 인재를 길러낼 수 있을까.
AI 부정행위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무책임이다. 대학은 “AI 사용을 금지하기 어렵다”는 현실론에 기대고 있지만, 윤리 기준을 세우지 않는 그 자체가 곧 부정의 시작이다.
더욱이 명문대가 갖는 사회적 영향력은 크다. 그곳에서 배출된 인재들이 사회 각계각층으로 진출하게 될 때, 그들의 성공이 인공지능에 의해 뒷받침된 것이라면, 우리는 그 결과를 신뢰할 수 있을까. 공정의 붕괴는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사회 전체를 좀먹는다. 대학이 그 출발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성은 진보했지만, 양심은 퇴보했다. 이 문장은 오늘날 한국 대학의 민낯을 가장 정확히 드러낸다. AI가 발전할수록 인간의 도덕적 근육은 점점 약화되고 있다. 기술은 우리를 더 똑똑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더 교묘한 변명거리를 제공했다.
이제 대학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AI를 학습 도구로 활용하되, 새로운 윤리 교육의 체계를 세울 것인가, 아니면 침묵 속에서 공정의 붕괴를 또 하나의 관행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AI 부정행위는 ‘미래 교육의 그림자’가 아니라, 이미 ‘현재의 위기’다. 대학이 침묵한다면, 사회는 그 침묵의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명문대의 이름으로 지켜야 할 것은 지식이 아니라, 바로 양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