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궁궐을 다시 읽다
— 사적인 시선이 열어주는 K-궁궐의 새로운 문법
도시의 한복판에서 언제나 묵묵한 채 서 있는 궁궐들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잘 보이지 않는다.
교과서의 삽화 속에서, 수학여행의 단체사진 속에서, 혹은 드라마 세트처럼 소비되며 우리는 ‘조선의 궁궐’을 기억한다.
하지만 그것은 ‘살아 있는 공간’이 아닌, 박제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김서울의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놀, 2021)은 이 기억의 문을 사뿐히 열어젖힌다.
그녀는 궁궐을 해설하지 않는다. 대신 ‘냄새를 맡고’, ‘소리를 듣고’, ‘감각으로 해석한다’.
마치 오래된 집의 숨결을 더듬듯, 돌과 나무, 기와와 그림자 속에 남은 인간의 흔적을 복원해낸다.
김서울은 문화재 보존처리 전문가 출신이다.
그러나 그의 글은 학자의 설명이 아니라 생활자의 상상력으로 움직인다.
그는 해치를 “마약 방석 위에 앉은 강아지”로, 월대를 “조선의 베란다”로 부른다.
박물관에서 흔히 듣던 단어들이 그의 손끝에서 살결 있는 언어로 바뀐다.
그의 표현은 유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그 언어의 유희는 역사를 낮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역사를 사람의 높이로 끌어내리기 위한 시도다.
역사는 왕의 전유물이 아니라, 한 시대를 살아간 인간들의 생활감각이기 때문이다.
“궁궐을 모델하우스처럼, 인테리어숍처럼 구경해도 좋다.”
이 선언은 ‘국사 공부’의 부담에서 벗어난 감각의 해방이다.
궁궐을 보는 방식이 ‘암기’에서 ‘감상’으로,
‘설명’에서 ‘공감’으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의 매력은 제목 그대로 ‘사적인’ 데 있다.
공적 문화재를 다루면서도, 그녀는 늘 “내가 느낀 궁궐”을 말한다.
그 주관적 언어는 문화 향유의 문턱을 낮추고, 문화의 민주화를 가능하게 한다.
우리가 궁궐을 ‘국가의 역사’로만 볼 때, 그것은 박물관의 유리벽 안에 갇힌다.
그러나 김서울은 그 벽에 작은 손자국 하나를 남긴다.
“조선의 돌은 따뜻했다”고 말하는 그의 문장은,
오랜 시간 속에 눌린 공간의 체온을 되살린다.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은 단순한 여행서도, 전통미학서도 아니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 공예와 일상, 역사와 감성 사이의 ‘감각적 연결선’이다.
정멜멜 작가의 사진이 그 감각을 시각으로 확장한다.
고즈넉한 전각과 푸른 기와, 돌기단 위의 그림자는
모두 “시간이 만든 예술”처럼 빛난다.
“조선의 유물은 친오빠 같다. 늘 곁에 있지만, 잘 보지 않는다.”
그의 말은 우리 시대의 문화 감각을 정확히 짚는다.
우리는 너무 가까운 것들을 낡은 것으로, 너무 오래된 것들을 불편한 것으로 치부해왔다.
그러나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은 말없이 속삭인다.
“그 낡음 속에 너의 취향이 있다.”
이 책은 궁궐을 통해 ‘기억의 미학’을 복원한다.
돌 하나, 나무 한 그루, 기와 한 장에 담긴 시간의 결을 읽어내며,
그것이 얼마나 인간적이고, 감각적이며, 결국 우리 자신의 역사인지를 보여준다.
결국 ‘사적인 산책’은 단지 개인적 취향의 여행이 아니다.
그것은 공공의 기억을 되살리는 사회적 행위다.
김서울의 사적 산책은,
궁궐을 ‘국가의 상징’에서 ‘생활의 풍경’으로 되돌려놓는 첫 걸음이 된다.
“궁궐은 여전히 거기에 있다. 그런데, 당신은 언제 마지막으로 그곳을 걸어봤는가?”
이 질문은 곧 우리 시대의 문화감수성에 대한 질문이다.
역사와 인간, 전통과 감각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일 —
그것이 김서울의 글이 지닌 진짜 힘이다.
사적인 감각으로 역사를 다시 읽는 일,
그것이야말로 지금 이 도시에서 가능한 가장 품격 있는 산책일지 모른다.








